나 퇴사해도 돼?
"나 다른 일이 하고 싶어."
또로(또로 = 그의 애칭, 또또 = 나의 애칭)와의 연애는 참 순조로웠다. 싸울 일도 없었고 기분이 상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뜻밖에 난관이 찾아왔다. 그가 회사 다니면서 미래를 위해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일하면서 틈틈이 자격증 공부를 했고 나중에 어떤 일을 하려고 준비 중 인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내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엄청난(?) 계획이었다.
-"또또야 내가 하고 싶다고 했던 일이 세 가지 안이 있는데. 일단 첫 번째는 나중엔 내 사업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출장도 많이 다니면서 많이 배워야 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날이 많아질 수도 있어. 그리고 두 번째는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되고 벌이도 괜찮은데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성취감이 들지 모르겠어. 그리고 세 번째는..."
-"일단 첫 번째는 안돼. 내 직업이 그래도 여기저기 옮겨 다닐 수 있어서 상관없지만 출장 때문에 떨어져 있을 날이 많다면 힘들 거 같아."
-"그건 나도 또또 의견과 일치해. 행복하려고 결혼하는 건데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나도 기러기 아빠는 싫거든."
-"그래서 세 번째는 뭐야?"
-"소방관이야."
-"소방관? 위험하지 않아..?"
-"응.. 아무래도 위험할 수 있지."
-"근데 오빠가 지금 여기서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 지금 얘기하는 거 보니까 소방관 같은데"
-"응 소방관... 내가 제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그게 제일 하고 싶어?... 오빠 하고 싶으면 그거 해야지. 사람이 어떻게 하기 싫은 일 하면서 평생 살겠어."
-"정말?! 진짜?!"
-"대신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보고."
또로는 자동차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다. 나는 처음부터 그의 직업이 멋있다고 생각했었고 심지어 회사에서도 또로는 일 잘하는 유망주였다. 그런 그가 직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소방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그 마음이 이미 얼마나 굳어진 마음인지 대략 짐작이 갔다. 그리고 소방관이 하고 싶으면 하라는 내 말에 뛸 듯이 기뻐하며 소방관에 대해 알아보는 또로를 보니 허락해 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이날 내가 좋아하는 망원동티라미수에 데려가서 케이크를 세 개를 사주더라니...
그 길로 또로는 퇴사를 결심했다. 소방관 준비가 생각보다 힘들어서 회사를 다니면서 준비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또로는 회사를 그만두고 1년 뒤에 있을 시험에 무조건 합격하겠다며 합격하면 바로 결혼하자는 말도 했다. 나는 30대에 공시생 여자친구가 됐다. 만약 또로가 한 번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이 시기를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도 됐지만 그는 공부하면서도 항상 우리를 1순위에 놓겠다고 약속했다. 번지르르하게 빈 말만 늘어놓는 그가 아니기에 나는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우리는 아직 결혼한 사이도 아니고 고작 연애한 지 3개월 됐을 뿐인데 나에게 미래 계획을 들려주며 의견을 묻는 것 자체가 너무 예뻤다. 그냥 결정하고 통보해도 아직 내가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미래에 내가 있기에 나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리라 생각하니 고마웠다. 그래서 더욱더 기꺼이 그의 꿈을 응원해 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