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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노보노야 Aug 20. 2024

부정적인 K

주변이 사람을 힘들게 만들 때

K는 '좀' 부정적이다.

'그 친구 원래는 안 그랬어'라고들 많이 얘기하는데, 정말 그렇다. 원래는 안 그랬다.


K는 대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벤처를 창업했고 투자도 받았다. 그리고 벤처 거품이 꺼질 때 회사도 같이 사라졌다. 대학은 그때 그만뒀다. 이후 미국으로 떠났고 알바를 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나는 출장으로 미국을 방문했을 때 K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그때 고생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K는 부모님 지원 없이 본인의 힘만으로 학업과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는데, 늦은 밤 이국의 술집에서 자신이 했던 알바를 일일이 얘기하며 웃던 그가 대단해 보였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함께 드럭스토어에 들렀는데, 나는 각종 영양제와 아르바이트하는 고학생이 돈 내고 사기는 힘든 '필요한' 것들을 잔뜩 사주곤 헤어졌다. 그와 헤어질 때 나는 출장 경비로 준비해 갔던 돈 중 100달러를 봉투에 넣어 건넸다. 

K와 나는 미국에서의 만남 이후 좀 더 가까워졌다. 




K는 몇 년 후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미국에서 함께 지내던 사람과 결혼식을 치르고 정식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가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의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K의 삶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일상적인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다만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K는 결혼하기 전부터 자식을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어쩌면 이미 늦었을 수도 있겠다. 

한국으로 돌아와 일을 시작한 지 몇 년 후 K는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옮겼다. 나와 K의 만남은 그때부터 다시 잦아지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그때쯤부터 K에게 심리적으로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글로벌 기업에서 일한 지 3년이 조금 지난 어느 날 K는 점심을 먹던 중 본인이 속한 사업부에서 글로벌 구조조정을 한다는 얘기를 내게 전했다. 그리고 구조조정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회사의 조치와 실력행사 등에 말하며 편치 않은 조직 생활과 조직 내 알력, 구조조정에 따른 개인별 보상 등에 대해 고민을 토로했다. K는 특히 자기 성과만 챙기는 이기적인 직속 보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K는 상사와의 몇 차례 면담과 조정과정을 거친 후 몇 개월 후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후 몇 차례의 면접을 보러 다닐 때 보였던 고민스러운 표정과는 달리 K는 몇 개월 후 다시 국내 대기업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K가 다시 회사를 그만둘 거 같다는 소식을 전해온 건 국내 대기업에서 일한 지 2년이 채 안된 시점이었다. 내가 여태 보아온 K의 스트레스와 고민 수준은 이때가 최악이었는데, 전문경영인으로 온 CEO의 독단과 아집, 자신과 전문경영인 사이에 있던 디렉터의 기회주의와 보신주의 등에 대해 고민이 큰 거 같았다. 특히 디렉터의 무능으로 인해 자신과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그만둔 것에 대해서 회사가 아무런 고민과 성찰이 없다는 점에 큰 좌절을 느꼈다고 했다. 결국 K는 디렉터 및 인사팀과의 몇 차례 협상 후 한두 개의 보상을 받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후 K는 곳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취업을 하진 못했고 기획, 강의, 번역 등의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몇 군데 회사와는 오랜 경험을 살려 프로젝트 단위로 기획서를 쓰고 웹 시스템을 론칭하는 등의 업무 계약을 맺었지만 대부분 중간에 부러지거나 완료 대금을 받지 못했다. 진행하는 회사와 성공에 따른 보수 계약을 맺고 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K가 예전에 비해 좀 더 예민해지고 부정적이 되었다고 느끼게 된 건 그때 이후이다. K와 나는 만날 때마다 진행하고 있거나 진행하면 괜찮을법한 일들에 대해 편하게 얘기하며 아이디어를 펴곤 했는데, 이 시기쯤부터 K는 매사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아졌다. 


일테면 이런 식의 말들이다.

-에이, 그거 안 돼요

-그건 이런 문제 때문에 개발하기 힘들 거 같고, 개발되어도 이런 문제 때문에 시장에서 통하기 힘들 거 같아요

-에이, 그건 딱 들어도 힘들겠네

-돈이 너무 많이 들 거 같아요. 돈이 없어서 안 돼요

-글쎄, 그걸 누가 쓸까

-법적으로 힘들 거 같은데

등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되던 일도 진행이 안될 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가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예전의 K라면, '아, 그거 재밌겠네. 해볼 만하겠다. 이런 문제가 있긴 한데, 그건 이런 식으로 한번 해볼 수도 있고. 일단 돈을 많이 들이지 말고 가볍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이런 게 있으니 이렇게 한번 해보는 게 어때요?'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K가 두 곳의 직장을 다니면서 그리고 조직 없이 세상에 혼자 나와 고초를 겪다 보니 점점 변해가는 거 같아 속이 상한다.


K의 변화는 두 곳의 직장에서 겪은 상사와의 갈등, 업무 충돌 과정에서 생긴 좌절,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한 사람에 대한 불신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또 당장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의 영향이 매우 클 것이다. 당장 쌀통에 쌀이 비었는데, 미래니 기회니 하는 얘기들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다.


... ...


예전엔 어떤 만화에서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불가능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말 아닐까요? 
미래를 사는 사람들은 가능부터 말하던데


나는 K의 지금 현재 상황이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숨막히게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는 오늘 준비해서 내일 어떻게 하자라는 얘기보다 당장 오늘 무엇을 하면 어떤 결과를 내일까지 받을 수 있다라는 얘기가 현실적이고 와닿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은, 시간은 오늘을 살지만 눈은 앞을 보고 마음은 내일을 달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그게 여태껏 나와 K 그리고 많은 사람이 살아온 방식이지 않은가?


나는 K가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고, 나와 함께 가능한 미래를 얘기하는 친구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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