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화 Aug 23. 2024

당근이세요?

너희들만 보고 있으면 참 좋겠다 싶은 91일

# “오! 한글 재미있는데?”


봄이는 요즘 한글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다. 읽는다는 것이 즐겁고 신기하다는 것을 알고,

이제 막 눈을 뜬 아이처럼 더듬더듬 글을 읽기 시작했다.

반갑고 감사한 변화다.

1학기 동안 아이의 무기력함을 끊어보고자 마음을 많이 주었다.

넓어지는 등만큼이나 늘어지는 몸의 무기력함을 끊으려고 했던 것은 마음의 움직이었다.

그 마음을 봄이에게도 조금 전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름 방학 중 봄이에게 조금 더 괜찮은 교수법이 무엇일까 찾아 서울을 다녀왔다.

우리 지역 교육청에서 강의를 해주셨던 언어치료 교수님을 찾았던 나의 발걸음을 움직인 것은 간절함이었다.

한글만 읽으면 우리 봄이는 얼마든지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그려갈 수 있을 것이라는 애달픔이 있었다.

교수법을 배우기보다는 내가 하던 것들에 확신을 갖고자 하는 내 스스로의 위로 혹은 격려를 받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덕에 봄이 보다, 내가 더 신이 나서 만나는 수업시간이다.


쉬는 시간이 되어도 봄이는 이것저것 눈에 넣고 싶은 글자들이 많다.

소리 내어 더듬더듬 읽어가는 목소리에 힘이 있다.

“봄아, 한글 공부 어때? 너무 힘들지? 어려운데도 봄이가 열심히 해서 선생님이 정말 고마워.”

“히잉…” 봄이 특유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

“힘들어?”

“히잉… 아니요. 재미있어요.”

“정말? 한글 공부 재미있어?”

“네에~” 하고는 부끄러운 웃음을 짓는다.

“봄아, 선생님이랑 올해 끝날 때까지 봄이 한글 다 읽게 해 줄게. 충분히 잘할 수 있으니까 지금처럼 재미있게만 해. 너무 열심히 안 해도 괜찮으니까 재미있게. 알겠지?”

“네 엥.”


배움이 즐겁다는 말만큼이나 고마운 말이 있을까?

올해 말까지 봄이 와 나의 목표가 생겼으니 더 즐겁게 국어 시간을 기다려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겨울이도, 힘찬이도 아주 열심히다. 봄이가 열심히 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는지 나머지 아이들도 모두 눈이 반짝인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타조도 만날 텐데, 이미 알밤처럼 탄탄한 모습으로 2학기를 시작했으니 타조도 건강하게 함께 할 것이라 생각한다.


세 아이들과 함께 하는 국어 수업 시간.

‘당근’이라는 단어를 함께 읽었다.

“얘들아. 당근 알지? 당근이 뭐야?”

힘찬이는 “채소”라고 이야기했다.  봄이는 무엇인가를 알았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당근이세요?” 한다.


세상에… 난 야채 당근만 열심히 설명하고 생각했지, ‘당근 하세요?‘는 생각도 못했다.

유튜브에서 봤다는 그 말이 재미있는지, 아이들 모두 따라 한다.

‘당근이세요?’


그런데 이 아이들 정작 당근앱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는 모른다.

간단히 설명해 주고 시범도 보여주며 ‘당근이세요?’의 상황 표현도 해보았다.

살짝 옆길로 나갔지만  삶을 위한 배움이라고 해두자.


수업을 끝내고 우리는 급식실에서 마주했다.

이미 한 번의 급식을 마치고 추가 배식을 위해 나온 봄이가 나와 마주쳤다.


봄이가 재빠르게 말한다.

“당근이세요?”


하하하하하.


센스도 만점이다.


때마침 나의 핸드폰에서 당근 알림이 뜬다.

그럼 나도 한번 가볼까?

‘당근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어디 돈 찍는 기계 파는 곳 없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