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이의 되어가는 시간을 응원해
우리 반 JH. 나는 이 아이를 힘찬이라고 부른다.
늘 힘찬 아이.
캄보디아 어머니를 둔 힘찬이는
누구보다 나의 정성이 많이 필요한 아이다.
그래서인지,
내 육아가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되어 가는 이 시기에
다시 말문을 틔우듯,
행동 하나하나 옳고 그름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다양한 세상을 열어주며
또 다른 육아의 길로 들어서게 해 주었다.
공교롭게 우리 테오랑 생일도 같은 힘찬이.
1년 중 제일 마지막 달에 태어난 테오와 힘찬이.
내가 테오를 12월에 낳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 반에서 가장 느린 아이
그것이 인지적 발달이든, 신체적, 또는 정서적 발달이든… 가장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와 그 부모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앞에 서서 걷는 사람으로
나를 잘 따라오면 된다고,
잘 따라오는지 확인만 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 내가
테오와 생일이 같은 힘찬이를 만나며
이 아이의 늦음이
버겁기보다는,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면 반갑고 고맙기도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때는
답답함 보다는 지금의 나와 힘찬이의 관계를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도 해 주었다.
친구들보다 인지적으로는 많이 늦지만
참 밝고 예쁜 힘찬이에게는
더 밝고 예쁜 보린 엄마가 있다.
캄보디아에서 우리나라에 온 어머니,
내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삶이기에
감히 그 삶을 다 이해할 순 없지만
나는 아이를 키우는 같은 엄마의 마음으로
응원의 말과 격려를 보낸다.
“힘찬이 잘하고 있어요. 더 잘할 거예요. 믿고 기다려 주세요.”
지난 금요일,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8시가 다되어 문자가 왔다.
문자로 이야기하기엔 길어질 것 같아
전화를 했더니
내가 학교 근처에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시고는
오늘 잡아온 조개를 주고 싶다고 하신다.
“어머니, 저 집 멀어요. 너무 멀어요.
저 조개 받은 걸로 할게요. 생각해 줘서 고마워요 어머니. 제 몫까지 맛있게 드세요.”
당연히 학교 근처에 살 거라고 생각하는
어머니의 순수함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고
직접 잡아온 조개를 주고 싶다며
나를 생각해 준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오늘 퇴근길,
집에 도착했을 무렵
전화가 온다.
“선생님, 어디예요? 나 선생님 추석이라 선물 주고 싶어서 지금 왔어요. 어디예요?”
“저 지금 집에 왔어요. 우리 아기도 어려서 어린이집에 있어서. 일찍 데리러 와야 해요.”
“나 선물 주고 싶어서 왔는데 그럼 어떡해요?”
“어머니, 저 선물 받으면 안돼요. 어머니 마음으로 너무
감사해요.”
“왜 안돼요. 나 선물 주고 싶어요. “
“저 선물 받으면 감옥가요.
저 오래오래 만나고 싶으면 선물 주면 안돼요. 알았죠?”
그렇게 몇 번을 실랑이하듯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내 의지가 강함을 느꼈는지 아쉽지만 알겠다고 하신다.
“어머니, 힘찬이 스무 살 돼서 학교 졸업하고 첫 월급 받으면 그때 저 커피 사주세요. 그럼 그때는 제가 꼭 커피 마실게요.”
“알았어요.”
집에 돌아와 내내 우리의 대화가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그리고 따뜻했다.
화장실 갈 틈도 주지 않는
내 손길이 많이 필요한 아이지만
그로 인해 아직도 내가 하는 일이
참 따뜻하다고 느끼게 해 준다.
멈추고 싶지만
멈추지 말라고 해준다.
늘 내가 더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그 정성과 사랑이 아직은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지금은
너는 독립적인 인격체로, 나는 교사로, 보린 엄마는 엄마로 그렇게 서로 되어가는 시간이려니
그저 그 시간에 마음을 온전히 내어주자.
너무 열심히도 하지 말고
그냥 지금 이 시간들을 즐겨보자.
차근차근 너의 속도로 자랄 그 시간들을
언제나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