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절이와 수육
인생은 아무래도 하얀 쌀밥에 빨간 김치를 얹어 먹는 맛이라고, 지금 봉구는 생각하고 있다. 거기에 야들하게 삶은 수육까지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닐까. 따수운 쌀밥에 매콤달큰한 양념으로 무친 겉절이를 얹고 그 위로 구수하게 삶은 고기를 얹는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한 입에 와앙, 하고 넣으면, 이 조화로움을 대신할 음식이 있을까. 봉구는 이 가을이, 이 저녁이 좋기만 하다.
어제 저녁 푸짐한 삼계탕 한 상을 해치우고 난 뒤, 김장 준비는 계속 되었다. 장모님이 까다 만 쪽파와 갓을 지연이 마저 손질했고 봉구는 무채를 썰었다. 이모님은 주방에서 풀을 쑤고 육수를 우렸다. 그 일까지 모두 끝난 건 저녁 10시가 다 되어서였다.
“일단 여기까지. 오늘 푹 자고, 내일 2차전 시작하자구!”
뒤척일 새도 없이 모두가 잠에 곯아 떨어졌다. 정말이지 눈만 잠깐 감았다 뜬 것 같았는데 어느 새 창 밖에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구 서방, 아침 먹게나.”
그 소리에 봉구는 부랴부랴 일어났다.
“죄송해요, 이모님. 제가 차렸어야 하는데.”
“나는 내 주방 아무한테나 안 맡기네. 어여 다들 앉아서 밥 먹어. 오늘도 바빠.”
이모님은 대체 언제 일어나신 건지, 밥상에는 구수한 된장국에 두부구이와 생선까지 올라와 있었다. 봉구가 밥을 두 그릇 째 비우던 순간, 마당에 차 소리가 났다.
“어? 이모랑 삼촌이다!”
그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니 현경과 학규가 트렁크에서 짐을 내리고 있었다. 봉구가 지연을 바라보자 지연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맞다, 봉구 씨한테는 말을 안했구나. 어제 전화 왔었어. 김장 도우러 오고 싶다고. 그래서 이모한테 물어봤더니 일손은 많을수록 좋다고 하셔서.”
“안녕하세요!”
현경이의 밝은 목소리가 시골집에 울린다.
“어머,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요? 이모님, 저 배고파요, 저도 밥 좀 주세요!”
애교 섞인 목소리로 활짝 웃으며 들어오던 현경은 곧바로 주방에서 손을 씻고 이모님에게서 밥그릇을 받아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일손 필요하다고 하셔서 왔습니다. 봉구 친구, 김학규입니다.”
뒤 이어 들어온 학규는 두 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이모님, 이거 이따 삶아 먹을 수육 거리에요. 냉장고에 자리 있을까요?”
“아이고, 이 총각 센스 있네. 내가 이따 나가서 사오려고 했는데. 이리 줘요. 내가 넣어 둘게.”
갑작스러운 소란함에 봉구는 어벙벙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현경과 학규는 밥상에 밀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구봉구, 다 먹었으면 좀 비켜. 설거지도 좀 하고.”
학규가 엉덩이로 봉구를 밀어내며 말했다.
“이모님, 이 된장, 이거 직접 담그신 거예요? 구수함이 남다른데요?”
“그럼 우리는 다 담가 먹지. 이따 갈 때 좀 가져가요.”
봉구는 하는 수 없이 엉덩이를 들고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는 조용히 설거지를 시작했다.
“학규 씨는 일요일인데 장사 안 해도 되요?”
“김장하러 간다고 문 앞에 크게 써 붙이고 왔어요. SNS에도 오늘 휴무로 바꿔 놓고.”
“이태리 식당 셰프가 김장하러 간다고 하면 다들 갸우뚱 하겠는데.”
“어~ 그 총각은 셰프야?”
이모님이 학규를 보며 물었다.
“네. 작은 파스타 가게 합니다. 언제 한 번 서울 오시면 드시러 오세요.”
“그럼 저기 아가씨는?”
“전 유치원 선생님이에요. 요기 예쁜 서린이가 제 학생이고요.”
“참으로 선남선녀네. 그래서, 결혼날짜는 언제야?”
“네?”
이모님의 말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어우, 이모님, 아니에요. 저희는 그냥 오빠 동생 사이에요. 어릴 때부터 같이 커서, 볼 거 못 볼 거 다 본 사이.”
“그래? 내가 실수했네. 나는 두 사람이 너무 잘 어울려 보여서.”
“이모님! 제가 아깝죠!!!”
역시, 현경이가 오면 한층 더 소란스러워진다. 그 수다스러움을 뒤로 한 채 봉구는 부지런히 설거지를 했다.
아침식사가 끝이 나고 본격적인 김장 2차전이 시작되었다. 거실에 김장매트를 넓게 펴고 그 위로 무채와 쪽파, 갓을 쏟은 후, 이모님이 미리 만들어두신 김장 양념을 부었다. 봉구와 학규가 양쪽에서 부지런히 버무리자 어느 새 고운 물이 들며 조금씩 숨이 죽었다.
“자, 이제 두 장정들은 밖에 있는 배추를 날라주시면 되겠습니다.”
이모님의 지령이 떨어지자, 봉구와 학규가 배추를 나르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모님과 지연, 현경이 배추 잎을 하나 씩 들어가며 양념을 채워 넣는 것이다.
“나 이거 진짜 해보고 싶었잖아. TV에서 볼 때마다 너무 궁금하더라고.”
“저도요.”
지연의 말에 현경이 맞장구를 쳤다.
“그게 왜 하고 싶어. 여기저기 고춧가루 묻고 맵기만 하지. 젊은 애들이 고생을 몰라서 그런가 별 소리를 다해.”
거실 한쪽에 누워 허리에 찜질을 하던 장모님이 대꾸를 했다.
“요새 애들이 왜 고생을 몰라? 일자리 없지, 집값 비싸지, 어른들은 잔소리만 해대지, 그게 얼마나 힘든데. 너는 지연이가 알아서 잘 하니까 요새 애들이 힘든 줄 모르지?”
이모님이 장모님을 다그쳤다.
“안 힘든 삶이 어디 있어. 아마 요 조그마한 서린이도 고민이 있을 걸? 그렇지, 서린아?”
“네.”
그림을 그리던 서린이가 선뜻 대답을 하자 지연이 깜짝 놀랐다.
“정말? 우리 서린이, 고민이 있었어? 왜 엄마한테 말 안했어. 무슨 고민인데?”
“해영이보다 그림 잘 그리고 싶은데 잘 안 돼.”
서린이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해영이는 곰돌이랑 강아지랑 고양이랑 다 잘 그린단 말이야. 친구들도 다 해영이한테만 그림 그려달라고 하고 나한테는 그려달라는 말 안 해.”
“아...”
지연이 심각한 얼굴로 현경을 돌아봤다. 구원 요청을 하는 것이다.
“서린아. 이모가 선생님일 때 말했었지? 그림에는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게 없는 거라고. 해영이는 고양이를 잘 그리지만 우리 서린이는 산이랑 바다를 잘 그리잖아.”
“그런데 재현이는 자꾸 해영이한테만 부탁하잖아요.”
“아, 재현이....”
현경의 표정을 보아하니 이건 답이 없는 문제 인 것 같다. 배추를 나르던 봉구도 ‘재현’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그 때 그 재현이인가. 서린이랑 제일 친하다던 남자아이? 그런데 감히 우리 서린이를 속상하게 했단 말이지.
“거 봐라. 애들도 다 고민이 있지. 서린이 고민이 우리 고민보다 가소롭다고, 감히 누가 말할 수 있겠누.”
이모님이 귀엽다는 듯, 대견하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대화가 이어지고, 끊길 때마다 커다란 김치 통이 하나 둘 씩 쌓여 갔다. 그러면 봉구와 학규는 그 통을 시원한 바깥으로 다시 내다 놓았다.
“김학규.”
“어?”
김치 통을 내다 놓고 잠시 허리를 펴던 학규가 봉구를 바라봤다.
“너 진짜 안 할 거냐?”
“뭘?”
“결혼.”
“뭐?”
학규는 지금 이 상황이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과묵함을 넘어 묵언수행 하듯 살던 친구 봉구가 자신에게 질문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 사생활이라 할 수 있는 결혼계획을 묻는다.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아니면 이 자식이 뭘 잘 못 먹었나.”
“결혼, 해.”
“....”
학규가 미간을 좁히더니 가슴 앞으로 팔짱을 꼈다.
“왜 결혼해야 하는데?”
“행복하니까.”
“미치겠다, 진짜.”
학규가 어이없다는 듯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구봉구가 지금 행복하다고 했냐? 내 수 많은 특제 라면과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먹을 때도 맛있다는 말 한 마디 없던 새끼가, 결혼해서 행복하다고?”
그러더니 갑자기 봉구 여기저기를 더듬기 시작했다.
“너 누구야. 너 구봉구 아니지. 너 봉구 손톱 먹고 변신한 쥐새끼지?”
“현경이는 어때?”
봉구의 입에서 나온 말에 학규의 움직임이 멈췄다.
“난 괜찮은 것 같아. 너희 둘.”
그러자 학규가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 안에는 커다란 김장 매트 앞에서 얼굴과 옷에 고춧가루를 잔뜩 묻혀 가며 배추를 버무리고 있는 현경이 보였다.
“저 꼬맹이랑 내가 뭘 하냐? 아무리 외로워도 그건 아니지.”
“그냥 생각해보라구.”
봉구는 그 말만 남기고 다시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차라리 말이 없을 때가 더 난 것 같아, 넌.”
봉구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서 학규는 투덜거렸다. 그때 함께 김치를 버무리던 이모님이 막 일어서려던 참이었다.
“장정 넷이 달라붙으니까 금방 끝나네. 그럼 나는 점심 차려야겠다.”
“이모님! 제가 할게요!”
학규가 얼른 주방으로 향했다.
“나는 내 주방 아무한테나 안 맡겨.”
“아이고, 그냥 편하게 부려주십시오!”
학규가 특유의 능글함으로 주방을 파고들자 혼자 남은 봉구가 더욱 바빠졌다. 지연과 현경이 손이 어찌나 빠른지 돌아서면 김치 통이 차 있고 또 돌아서면 김치 통이 차 있었다. 이거 혹시 학규가 복수한 건가, 싶을 즈음에 점심 밥상이 완성 되었다.
“자, 밥 먹고 후딱 마무리해서 올라들 가야지!”
그 말에 모두가 밥상 앞으로 몰려왔다.
“와, 수육이다!”
“이거야 말로 김장의 완성이지. 이모, 잘 먹겠습니다!”
그리하여 봉구는 김장 겉절이에 수육을 먹게 된 것이었다. 푸짐한 어제 저녁 밥에 이어, 구수한 오늘 아침밥상도 물론 훌륭했지만, 지금 먹는 이 식사는 지연의 말대로 김장의 화룡정점이었다. 수육은 부드럽다 못해 녹아내리고 밥은 달달하고 겉절이는 상큼하면서도 간이 딱 좋았다.
“여기 학규 총각이 고기를 잘 사왔어. 역시 셰프라 그런가 고기 볼 줄 아는구만.”
“그럼요. 내년에도 저만 믿으세요.”
“내년에도 오려고?”
“내년에도 와야죠. 이모님 김치 얻어 먹으려면 와야죠.”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들으며, 봉구는 생각했다. 김장의 맛이라는 건 결국 모두 모여 앉아 배추를 씻고 다듬고 절이고, 풀을 쑤어 양념을 만들고, 버무리고 담는 것을 함께 한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지금 이 수육과 겉절이가 어제 그 밥상 보다 조금 더 맛있는 이유도 현경과 학규가 함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서부터는 뒷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매트를 가지고 나가 수돗가에서 박박 씻고 집안 곳곳도 걸레질을 해서 닦았다. 양쪽 차에 김치 통을 나눠 싣고 거실로 들어서자 장모님이 커피를 타 오셨다.
“가다 졸지 말구 커피 먹고 가.”
“우와,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맛인데요?”
커피를 맛본 현경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지도 않아요. 딱 좋아. 싱겁지도 않고 너무 진하지도 않고. 진짜 딱 좋아. 어머님 커피 최고!”
하긴, 어제도 느꼈지만 장모님의 커피는 정말이지 훌륭했다. 상대가 커피를 먹는 타이밍에 맞춰 온도를 조절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믹스커피는 물 조절을 조금만 잘못해도 맛이 확 달라진다.
“내가 또 하면 잘해.”
장모님은 새침한 한 마디만 남긴 채 방으로 들어가셨다.
“맞아. 자네 장모가 마음먹은 건 또 잘해. 마음을 잘 안 먹어서 그렇지.”
이모님의 말에 모두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구 서방, 여기가 자네 고향 집이다, 생각하고 종종 오게나. 나도 애들 아빠 떠나고 적적하니까. 자네 장모가 잔소리 하면 나한테 이르고. 알겠지?”
“네.”
“우리 지연이랑 잘 살아줘서 정말 고맙네.”
이모님이 봉구의 손을 잡았다. 거친 손이었지만 따뜻했고 든든한 힘이 느껴졌다.
“자네들도 언제든지 와. 김치 떨어지면 오고, 시래기 먹고 싶으면 오고. 알았지?”
“네.”
장모님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모두가 차에 올랐다. 그때 이모님이 봉구의 손에 몰래 뭔가를 쥐어줬다. 돈이었다.
“비상금.”
“네?”
“살림하는 사람은 비상금이 있어야 돼.”
“저 돈 있어요. 지연 씨가 넉넉히 줘요.”
하지만 이모님은 막무가내였다.
“현주가 못 온다고 부쳐 준거야. 이걸로 고기 사주려고 했는데 학규 총각이 사왔잖아. 지연이 눈치 보지 말고 사고 싶은 거 사. 알았지? 우리 지연이, 서린이 밥 잘 해주고.”
봉구는 얼른 돈을 돌려주려 했지만 이모님은 어느 새 멀찌감치 떨어져 손을 흔들고 계셨다.
“얼른 올라가. 차 막히겠다. 쉬엄쉬엄 가고. 도착하면 문자하고.”
학규와 현경이 탄 차가 먼저 출발했다. 그 뒤를 이어 봉구도 차를 몰았다.
“여기 참 좋다. 우리도 시골집이 있어서 참 좋네.”
지연이 멀어지는 이모를 보며, 시골집을 보며 말했다.
“응. 좋다.”
일 년치 먹을 김장 김치를 싣고서 서울로 올라간다. 이걸로 지연이와 서린이에게 김치 볶음밥도 해주고 김치찌개도 해주고 김치전도 해줘야지. 봉구의 마음이 든든해졌다. 함께 하는 김장의 맛이란, 이렇게나 멋지고 든든한 것이었다. 그 든든한 마음의 화룡정점은 이모님이 주신 용돈이라는 걸, 봉구는 얼마 뒤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