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슬기로운 집 없는 생활 - 2
한 캠핑장에 일주일 이상 지내다 보면 주변 이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우리 캠핑카 왼쪽에는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자기를 닮은 핏불테리어 한 마리와 함께 산다. 혼자 살기 딱 좋은 18피트 정도의 트레블 트레일러이고 며칠씩 차가 없는 걸로 봐서는 여행이나 출장을 자주 다니는 것 같다.
오른쪽에는 27피트 정도 되어 보이는 꽤 큰 트레일러에 3인 가족과 개 두 마리가 함께 산다. 우리 집과 비슷하게 어린아이가 있는데 낮동안은 개 두 마리만 집을 지키고 있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엄마와 아이가 함께 들어오는 걸로 봐서는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엄마, 아빠 모두 일을 하는 걸로 보인다.
뒷 집에는 노부부가 40피트가 넘는 Fifth Wheel 트레일러에 산다. 아침이면 두 분이 야외테이블 앉아 오붓하게 차를 한잔 하기도 하고, 트레일러 주변으로 꽃화분을 가꾸기도 한다. 연못이 세 개나 있는 우리 캠핑장의 터줏대감 오리들의 밥을 챙기는 것은 절대 빠뜨리지 않는 그분들만의 모닝 루틴이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넘치시는 이분들은 은퇴를 하신 시간 부자 어르신들로 추정된다. 참, 귀여운 닥스훈트도 한 마리 키우신다.
애는 없어도 개는 반드시 있는 미국인의 못 말리는 개사랑은 캠핑장에서 한층 더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우리의 33피트짜리 Toy Hauler 트레일러가 있다.
우리 이웃들이 우리를 조금만 눈여겨봤다면, RV PARK에서 보기 흔치 않은 아시안 가족, 아빠는 일을 하는지 자주 보이지 않고 엄마와 딸아이 둘이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 같음. 종종 뒤에 데크를 열어두고 온 가족이 의자가 아닌 바닥에 앉아서 놀고 있음. 특이사항, 개가 없음. 이 정도 정보를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 캠핑카 생활을 시작한 뒤 나는 아이와 24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남편은 일이라도 하러 나가는 데다 직업 특성상 한 번 나가면 두 세발씩 자고 돌아오지만, 나는 딱히 갈 곳이 없다.
캠핑카 생활을 시작하며, 유치원을 그만둔 아이와 일을 때려치운 엄마는 아무도 아는 곳 없는 새로운 곳에서 단 둘만의 세계를 단단히 구축하고 있었다.
결은 다르지만 생애 처음 누군가에게 내 모든 시간을 내어주고 내 모든 삶의 방향을 상대에게 맞추는 경험이었던 '아이와의 첫 1년'이 떠올랐다.
아이는 그때보다 많이 자라서, 내 도움 없이도 웬만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아주 가끔씩은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친구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때와 지금은 분명히 달랐다.
하지만 묘하게 자꾸 그 지독한 행복과 괴로움이 공존하던 우리의 첫 1년이 자꾸 오버랩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렇다. 아이와 내가 만들어가는 길 위의 세계는 어느새 우리 둘만의 외로운 무인도가 되고 있었다. 그때처럼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건 분명 내가 자초한, 아니 선택한 일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사회로 다시 나가고 싶어 아등바등거렸던 과거의 나는 아이가 만 두 살이 조금 지나자마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일을 시작했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내는 동안, 아이의 얼굴을 가득 채웠던 아기 티는 매일매일 조금씩 허물을 벗어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어느 날 문득 자세히 들여다본 아이의 얼굴은 수백 가지 감정을 담아내는 커다란 그릇이 되어 있었다. 아이는 나의 도움 없이도 혼자서 옷을 입고 세수를 하고 가방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무섭게 커가고 있었고 머지않아 우리 둘이 함께 일군 이 세계의 문을 닫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 자신만의 세계를 단단히 만들어나갈 것이었다.
나에게 이 아이와 온전히 함께 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번뜩 깨달았다.
오소희 작가는 자신의 아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 쓴 책 <엄마의 20년>에서 아이의 네 살부터 일곱 살을 이렇게 표현했다.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 일곱 살
이 4년은 너와 함께 하는 순간마다 뛰고 웃고 노래하는데 쓰마,
봄의 꽃나무 아래를 함께 걸을 것이다.
가을 낙엽 위를 함께 뒹굴 것이다.
너는 시인의 어휘로 꽃과 낙엽을 낭송할 것이고
나는 그것을 오롯이 음미하는 영광스러운 청중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하루하루가
엄마와 자식 사이의 황금기임을 알 것이다.
알기에 제대로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
오소희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엄마와 자식으로 함께 할 수 있는 황금기를 시작했다.
그 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선택한 이사, 여행, 홈스쿨링 그리고 전업주부로의 복귀 그 모든 것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감사로만 충만할 것 같았던, '우리 둘이 무엇이든 함께 할 수 있는 자유'라는 선물은 왜인지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던 육아 최초의 1년 시절의 트라우마를 자꾸만 끄집어냈다.
넘치는 자유 앞에 우리에겐 '루틴'이 필요했다.
아이를 먹이고 재우고 그저 건강히 키우는데만 내 모든 우선순위를 쏟아부었던 아이의 한 살 두 살 세 살 그 시절에 나는 부단히 도 루틴을 만드려고 애썼다.
일을 하고 가정을 돌보다 보면 하루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모든 일이 끝나고 고요한 밤이 오기만을 잠시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만을 온종일 기다린 것이 무색하게도 매일 아이를 재우다 함께 곯아떨어졌다.
맑은 정신으로 기도를 하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과 같이 철저하게 나의 몸과 마음을 건강히 가꾸기 위한 일들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하루를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남들보다 일찍'의 기준은 상대적인지라, 내가 새벽 6시 반 에 일어나서 모닝 루틴을 실천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친구는 그 시간은 남들보다 일찍이 아니라 남들 다 일어나는 시간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열성적으로 읽어보았던 모닝 루틴 관련된 책에서는 성공하려면 새벽 5시에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그냥, 남들이 아닌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삼기로 했다.
'평생을 저녁형 인간으로 살아온 나',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들어서 알람은 기본으로 10개는 맞춰야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나'를 기준으로 삼으니 아침 6시 반 기상만 해도 기특하기 그지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6시 반부터 아이가 잠에서 깨기 전까지 모닝 루틴이 시작되었다.
평생 저녁형 인간으로 살아온 세월의 관성을 거슬러 아침형 인간이 되는 과정은 괴로웠고, 그래서 자꾸 이전으로 되돌아가길 수 백번 반복했다. 잘될 때도,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2년쯤을 버티자 아침 6시 반이면 눈이 번쩍 떠지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사를 준비하고 길을 떠나며 모닝 루틴을 지키지 않은 몇 달 동안도 여전히 같은 시간이 되면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하지만 매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아침을 힘차게 시작하기보다는 따뜻한 침대에서 꼬물거리기를 택했다.
새로운 환경이 주는 긴장감 때문인지, 밖에서(?) 살며 해를 많이 봐서 그런지 잠이 많아졌고, 캠핑카에서 눈 뜨는 아침마다 여행 온 기분이 한 스푼 더해져, 이렇게 조금은 늘어져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작은 공간이 주는 불편함은 캠핑카에 살며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들 중 가장 소소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은 옷장도, 작은 화장실도, 작은 부엌도 약간만 나에게 맞게 정돈하고 다듬자 금세 편안하게 느껴졌다. 가끔은 이 작은 공간 덕분에 줄어든 가사노동을 생각하며 고마워지기도 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크게 다가오는 문제는 캠핑카에 살면서 마주하는 '고립감'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였다.
직장에서도, 친구관계에서도 자발적 고독을 지향하는 이 시대에, 더구나 일반적인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 보려고 선택한 캠핑카 생활을 하면서 외롭다고 우는 소리는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신 오지 않을 지금 시간을 가족과 최대한 함께 하기 위해, 새로운 곳을 가능한 한 많이 인생에 담아보고자 시작한 길 위의 삶이지만, '가족 중심의 삶' , '여행하는 삶'이라는 구실을 방패 삼아, 매일매일 열심히 살아내야 마땅한 일상으로부터 고립되는 것에 대한 우려였다.
다시 아침 6시 반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6시 반 눈이 떠지면 이불을 박차고 다섯 발자국 걸어 거실 겸 부엌으로 나간다. 커피를 한잔 내려 두 발쯤 떨어진 식탁 겸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고 글을 쓰는 루틴을 시작한다. 아이가 일어날 때까지 시간이 남으면 캠핑장을 한 바퀴 휘적휘적 산책을 하고 8시 즈음이 되면 간단한 아침을 챙겨 먹은 뒤 9시에는 아이와 홈스쿨링을 한다. 거창할 것 없는 공부인지 놀이인지를 마치면 점심을 먹고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 오전 일정은 대체로 비슷한 루틴이지만 오후에는 어느 날은 태권도장, 어느 날에는 박물관, 도서관, 공원 등등 지금 머무르는 곳에 맞춰 목적지를 바꿔가며 세상을 구경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여행처럼 살지만 실상은 일상을 살아내는 캠핑카의 삶에 일정한 루틴이 없다면 하루하루는 유야무야 흘러가기 십상이고 하루의 끝에 "뭐 한 것도 없는데 저녁이 됐네."라며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사는 것이 얼마나 지겨운가,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고루한가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남다르게, 창의적으로 매일매일 다르게 사는 삶을 동경했고 그게 성공적인 삶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남다르게 사는 게 아니라 묵묵히 하루하루 같은 루틴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에는 내 삶에 발전을 가져다주고 성공을 주기도 한다.
<생활의 달인>이란 프로그램을 보면 제대로 보지도 않고 밀가루 반죽을 툭툭 썰어내는데 모두 오차범위 안에 드는 동일한 무게로 만들어내고 그러지 않는가. 지루할지라도 루틴을 반복하다 보면 이렇게 어떤 면에서는 특별해지기도 한다.
특별해지지 않을지라도, 무엇보다 그저 하루하루 할 일을 단순하게 해내는 삶에는 그 자체가 주는 평안함이 있다. 그래서 그 삶 자체로 참 귀하다.
한때 <생활의 달인> 애청자로서 당연히 '생활의 달인'은 '생활(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특정분야의 전문가'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녔을지도 모르겠다.
'달인'은 사전적으로 '널리 사물의 도리에 정통한 사람'을 뜻하니 '생활의 달인'은 '생활(일상)의 도리에 정통한 사람'을 뜻할지도 모른다.
사실 그게 어떤 뜻으로 쓰인 제목이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프로그램 속 생활의 달인들은 모두 그저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을 반복하며 살다 보니 달인이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주어진 하루를 주어진 일을 하며 잘 살아내는 것이 궁극의 일상을 만들고 있었다.
고독하지만 고립되지는 않은 삶을 지향하며, 오늘도 생활의 달인이 될 날을 기다리며 모닝 루틴으로 하루를 연다.
캠핑카 창 밖으로는 아침 배식을 기다리며 꽉꽉 거리는 오리들과 그들을 살뜰히 먹이시는 할머니의 일상이 오늘도 변함없이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