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꽃을 보셨나요?

대나무 운명 공동체 - 1

by 허영회

대나무에 꽃이 피면 개화병이 들었다고 합니다. 식물의 절정기에 피는 꽃을 질병이라니요. 대꽃이 어떻게 생겼기에? 너무나 파격이고 충격이라 꼭 보고 싶었습니다. 열망에 몇 년 대나무를 살피다가 포기했지요.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꽃이 아님을 알고 연이 닿는 행운이 오거나 못 보겠거니 했는데... 몇 년 후 등산길 주변에서 먼저 조릿대 꽃을 보았고 죽은 조릿대 군락도 만났습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키가 큰 대나무의 꽃은 몇십 년에서 120년 만에 피우는 나무도 있다기에 잊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지난해부터 솜대의 꽃을 여기저기서 봅니다. 숲해설가가 된 지 10년 넘어서야 만나니 좋아할 일인데, 정작 몹쓸 것을 본 양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개화병이 들었다 말하는 이유를 실감 나게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대나무가 식물학적으로 풀로 분류되는 이유는 꽃을 피우고 나면 죽기 때문입니다. 초본은 꽃을 피우고 생을 마감하기에 온 에너지를 쏟아 후손 생산에 올인합니다. 이에 반해 목본은 여러 해를 살기에 올해 여의치 않으면 다음 해로 미루는 해거리도 하며 자식 생산에 목숨 걸지 않지요. 오래 살자면 생존과 번식에 에너지 분배를 균형 있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나무는 무더기로 꽃을 피워 풀의 본성에 충실하니 씨 또한 얼마나 많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나무 씨앗으로 흉년에 아사를 면했다는 기록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씨를 보지 못했습니다. 진 꽃을 살펴도 껍질만 무성한 쭉정이였답니다.


대나무가 꽃을 피우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니 개화를 막을 답(答)이 없답니다. 답을 한자로 풀면 쪼개진 대나무 두 쪽을 합한 것처럼 꼭 맞아야 합니다. 대나무꽃을 보고 검색하니, 24년 남해군 10여 개 읍. 면에서 대나무 집단 고사 현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꽃이 피는 원인을 파악하고 있지만 여전히 무성한 가설에다 기후위기설도 추가됩니다. 김해 수로왕비릉 옆의 민가 뒤에도 꽃이 펴서 거멓게 변한 죽은 나무와 아직 푸른빛인 살아있는 나무가 섞여 있습니다. 일시에 꽃이 피고 죽는다는 설보다 시차를 두고 일어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꽃이 왜 피는지 아직 정답(正答)을 모르니 더 신비감을 부추깁니다. 희귀해서 대꽃을 보면 길상이라고도 하고 대숲이 망하는 결과이니 흉조라고도 합니다. 제가 보기엔 후자에 가깝지만 죽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니 어찌할 수가 없지요. 『천년 도서관 숲』에서 개화 원인을 추측한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 환경 조건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한 환경 가설

- 영양이상이나 생리적 변화로 인한 영양 가설

- 기생 병균이나 해충 때문이라는 병균 가설

- 60년, 120년의 주기 가설 등이랍니다.

대나무는 뿌리줄기로 연결되어 있어 대숲 전체가 한 유전체를 공유한 복제 군체입니다. 한숨에 피고 일제히 같이 죽는 운명공동체일 수밖에 없지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

'오우가'에서 고산 윤선도는 생물학자 이상의 관찰력으로 대나무 정체성을 물었습니다. 속이 비어 나이테가 없으니 죽순의 두께 그대로 키만 키웁니다. 죽순은 포개진 가제트 팔을 뽑아내듯 마디마다 생장점이 있어 직진 코스로 빠르게 자랍니다. 죽순에 모자를 걸지 말란 말이 있을 정도로 하늘을 향해 달려 60일 전후로 다 자랍니다. 이후에야 단단하게 굳어지며 연둣빛 밝은 녹색 피부가 해를 거듭할수록 노리끼리하게 변하면서 노년을 향하지요. 속이 비었으니 해마다 나이테로 기록할 수 없고, 꽃 피워 번식을 마치면 죽으니 식물학적으로 볏과 식물 풀입니다. 나무처럼 여러 해를 살며 단단하니 쓰임새로 보면 나무입니다. 풀이면서 나무이기도 한 두 속성을 다 가졌지요.


어릴 때 집 주변에 대밭이 있었습니다. 대밭 뒤로 산이 이어져 낮에도 무언가 숨어있을 거 같아 가까이 가지 않았습니다. 해가 지면 시커먼 소굴처럼 보여 더 무서웠지요. 비가 오면 대밭에서 빗소리는 왜 그렇게 크게 나는지, 바람 불면 귀신이 곡하는 소리로 들렸답니다. 대밭 쪽으로는 일부러 눈길도 주지 않았으니 대나무와 아무런 추억거리도 만들지 못한 채 이사를 했고 어른이 되었습니다. 대나무 문화를 배우고 익히면서 다시 보게 된 안타깝고 아쉬운 나무입니다. 그때 사이좋게 지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좋은 체험의 기회를 날리고 이제야 책으로 죽은 공부를 하고 있으니 대나무를 대할 때마다 가슴이 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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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이 피어야 할 자리에 꽃봉오리를 맺었으니

광합성 부족으로 결국 굶어 죽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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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분이 꽃에 집중해 노랑노랑 생기를 잃어가는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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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과식물의 꽃 구조를 가진 솜대꽃은 옥수수수염의 미니버전

바람에 꽃가루가 잘 흔들리게 매단 수술

치간칫솔모처럼 꽃가루를 붙잡기 좋은 암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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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기로 뭉쳐난 꽃차례는 어수선하고 복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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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지면 남은 녹색 잎도 탈진해서 갈색으로 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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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녹색과 죽음의 갈색 대비

은행잎이 피어나는 봄철에 생을 마감하는 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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