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EP18. 브런치 독자와의 만남
디자인 활동에 조금씩 재미를 붙이고, 또 간간히 의뢰가 들어오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솔직히 돈은 되지 않았지만,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작업에 몰두했다. 새로운 뭔가를 시작해서 기반을 다진다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여느 날처럼 의뢰 작업을 하고 이것저것 할 일을 하고 있었는데, 저녁에 공방 예약이 잡혔다. 기존에 방문했던 손님이 아닌 새로운 손님이다. 이름을 보니 여자분 같다. 신규 손님이 예약을 하면 굉장히 궁금해진다. 몇 살일까, 어떤 사람일까. 그림은 어떤 걸 고르실까. 테이블을 세팅하는 내내 즐거운 긴장감으로 가득 차는 기분이다.
예약 시간에 맞추어 손님이 들어왔다. 긴 머리의 젊은 여자분이다. 나는 늘 그렇듯이 자리를 안내하고 짐을 받은 후 앞치마 매는 법을 알려주었다. 오일파스텔의 특징에 대해 설명한 후, 연습장으로 연습을 하도록 안내했다. 그리고 다른 손님에게도 하듯 이것저것 물어보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어디에서 왔으며, 왜 왔으며 등을 물어보는데,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내 브런치스토리의 구독자였던 것이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부끄럽고 감격스럽고 기쁜 마음이 동시에 물밀듯이 밀려왔다. 우리는 내가 쓴 글과 나의 개인사에 대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해도 너무나 잘 맞는 기분이었다. 나의 생각과 그녀의 생각이 완벽하게 동일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에게 공감해 주며 그림을 조금씩 완성해 나갔다. 그녀는 제주에 와서 본인이 찍은 사진을 보고 오일파스텔로 그렸는데, 수다를 떨며 작업한 것치고는 작품이 멋지게 잘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작업을 마치고 나니 저녁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내 집 앞에 있는 식당에 가서 닭발에 소주를 한 잔 하며 마저 수다를 떨었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야기하지 못했던 깊은 마음속 이야기를 그녀에게는 술술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울기도 하고, 다시 웃으며 나눈 그날 밤의 이야기.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