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페 아동의 상동 행동에 대해
아동의 자폐 여부를 진단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문가가 아니어도 아이의 '눈 맞춤' 그리고 '상동 행동 여부' 두 가지를 보면 어느 정도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대부분의 자폐인이 타인의 눈을 바라보기 어려워한다는 것은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니 굳이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상동 행동이란 특별한 이유나 자극 없이도 같은 행동을 계속 반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퀴같이 동그란 물건을 계속 돌리면서 홀린 듯이 바라본다던가, 집 안을 계속해서 뛰어서 왕복한다던가,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한다던가 하는 것이 상동 행동의 좋은 예이다. 물론 이런 행동이 자폐 아동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비자폐 아동의 경우 성장하면서 이 같은 행동이 사라지는 반면 자폐 아동은 나이가 들어도 상동 행동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아들 태민이는 만 8세이지만 아직도 다양한 상동 행동을 보인다. 산책을 나가면 돌, 나뭇가지, 풀잎 등을 두 손바닥 사이에 끼고 맹렬한 속도로 비비기도 하고, 신이 나면 마루와 방을 펄쩍펄쩍 점프하며 몇 번씩 왕복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노래를 하루 종일 부르는 거야 그럴 수 있다 쳐도, 같은 질문을 몇 달째 반복하는 걸 듣다 보면 어떨 때는 '이제 그만 좀 하지?' 하는 생각이 절로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랩탑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들 녀석이 펄쩍펄쩍 뛰면서 방과 마루를 왕복한다. 그리고 내 옆을 지나갈 때마다 똑같은 말을 던진다. 벌써 1년도 넘게 반복되는 이 짧은 문장...
"산책, 내일 Tomorrow!!!"
"산책, 내일 Tomorrow!!!"
"산책, 내일 Tomorrow!!!"
"산책, 내일 Tomorrow!!!"
같은 말의 반복도 아이 나름대로의 커뮤니케이션 시도라는 걸 알기에 어지간하면 "응 그래 내일 산책 가자" 혹은 "알았어 태민아" 정도로 받아주지만, 이미 두 시간 전에 더운 날씨를 뚫고 산책을 다녀왔고 이미 경고도 한번 준 상태였기에 태민이의 눈을 쳐다보며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태민아, 너 지금 똑같은 말 아빠한테 다섯 번은 했네!"
보통 이러면 풀이 죽어서 쪼르르 사라지거나 "다섯 번은 했네!"라고 내 말을 녹음기처럼 따라 하는데 (나름의 알아들었다는 신호일 것이다), 오늘은 전혀 예상치 않던 답이 돌아왔다.
얼떨떨한 눈으로 와이프를 쳐다보았고, 함께 실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그걸 다 세고 있었어? 그러면서 똑같은 말을 반복한 거야?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면서 보람을 느끼는 때가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이다. 이전에 할 수 없던 과제들을 해내고, 참을 수 없던 자극들을 버티며, 이해 못하던 질문의 답을 하는 것을 볼 때. 대부분의 부모들은 '네 번 했어' 식의 말대꾸를 들으면 화가 났겠지만, 질문에 대해 제한적인 답변만 가능하던 태민이에게서 이런 반응이 나왔기에 우리 부부는 아이의 의사소통이 한 단계 더 발전했음을 확인하고 기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