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아동의 민감함에 대하여
자폐가 있는 아들 태민이는 딱지에 굉장히 민감하다. 피부에 상처가 생겼다가 딱지가 앉고 마침내 없어지면 며칠간 "상처!! 상처!!"라고 꽥꽥대며 우리 모두를 매우 지치게 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자잘한 상처가 생기지 않을 수 없고, 그 때 마다 마음이 덜컹 내려 앉는다. '제발 이번엔 좀 조용히 넘어가기를...'
최근 학교 선생님이 좋은 방법을 하나 찾아냈는데, 바로 딱지 위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이다. 딱지가 눈에 안보이게 되어서일까 아니면 밴드가 피부에 주는 자극이 생겨서일까? 뭐가 되었건 아이는 이전보다 상처에 확연히 관심을 덜 주었고, 반창고를 떼었을 때 딱지가 없어진 걸 알아도 이전만큼 심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선생님도 반창고 요법 이후로 아이가 집중도 잘 하고 말도 잘 듣는 등 완전히 새로운 아이가 되었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물론 아들은 가끔씩 "상처 생길거야"를 반복하며 딱지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긴 하지만, 나와 와이프가 "응 괜찮아, 상처 또 생길거야"라고 확인해 주면 대부분 그걸로 끝이 났다. 상처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저녁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하지만 반창고 요법도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번 반창고를 붙이면 떼기를 싫어하는 탓에 반창고는 며칠씩 피부에 붙어있는 경우가 잦고, 이 때문에 각종 피부 트러블이 벌겋게 올라오는 경우가 있다. 게다가 '뭔가 피부에 있으면 반창고를 붙여야 한다'는 규칙이 생긴 탓일까? 반창고가 필요 없는 아주 조그만 딱지나 심지어 각종 점에도 "반창고 붙여 주세요", "Band 붙여"를 외치는 탓에 어쩔 때는 열 개가 넘는 반창고가 아이 몸에 붙어있을 때도 있다. 온 몸에 덕지덕지 붙은 반창고들을 보면서 '혹시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거 아닌가'하는 괜한 걱정이 들 때도 있다. 그나마 얼굴에는 붙여달라고 안해서 다행이지...
태민이를 볼 때면 종종 '미모사'가 떠오른다. 미모사는 외부에서 자극을 받으면 잎을 접으며 움츠리는데, 그리스 신화에서는 식물로 변한 공주가 아직도 부끄러움을 느껴서 닿으면 움츠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태민이도 조그만 촉각 자극에 죽어라 낄낄대거나 싫다고 도망가는 것이 이 식물을 꼭 닮았다. 신화야 재미있게 읽으면 그만이지만, 아이가 이런 조그만 자극에도 미모사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볼 때면 '언제쯤이면 좀 나아지려나'하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지곤 한다.
언젠가는 민감함이 덜해져서 반창고 없이도 괜찮은 날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