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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Kim Sep 23. 2021

솔직하면 손해를 봐야 하나?

플레이오프, 그리고 정정당당함에 대하여

이전 글 (한국 사회인 야구 in USA)에서도 언급했지만, DMV Korean Baseball League (https://dmvkbl.wordpress.com/)는 Washington DC, Virginia, Maryland 지역에 있는 유일한 한국인 아마추어 야구 리그이다. 외국 생활을 견뎌내는 동지들의 모임이라 그럴까? 팀이 다르면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한국의 일반 사회인 야구 리그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서로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는 건 보통이고 많이 본 사람끼리는 서로 형 동생 하면서 가깝게 지내는 분위기라 처음에는 상당히 신기해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소속된 Angels 팀은 이곳의 강호 중 하나다. 교회 팀으로 시작했지만 외부 인원도 어느 정도 섞여서 지금의 구성이 되었고, 다들 성격도 좋은 데다 야구에 워낙 열심이라 연습이든 시합이든 출석률이 아주 좋다. 작년 리그 결승에서 1점 차로 석패한 까닭에 올 시즌을 대비해서 작년 겨울부터 거의 매주같이 연습 및 시합을 소화했고, 공/수/주 가리지 않고 멤버들의 기량이 많이 발전했기에 당연히 올 시즌 목표는 우승이었다. 그간의 노력이 빛을 본 걸까? 올해는 8승 1무 3패라는 최고의 성적으로 리그를 마무리했고, 나는 홈런왕 타이틀까지 차지하여 경사가 겹쳤다. 당연히 분위기는 최고에 달했고, 플레이오프를 대비해서 한주에 두 차례씩 연습을 하며 칼을 갈고닦았다.

11게임 뛰고 2개 넘겼으면 뭐 나쁘진 않지





플레이오프부터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원래 시즌 시작 전에 7팀 중 6팀만 playoff에 참가하도록 정했는데 갑자기 6-7위전이 추가되었고, 플레이오프에는 선출 (선수 출신, 학창 시절 야구부에 소속되었던 사람을 지칭)이 1명만 포함될 수 있다는 규정은 은근슬쩍 '제한 없음'으로 바뀌었다. 어차피 우리 팀이야 1위니까 6-7위전을 한다 한들 영향은 없겠지만 문제는 선출 규정의 변경이었다. 선출이 1명인 우리 팀과 달리, 2~3명의 선출이 있는 팀이 모든 선출을 라인업에 포함시킨다면 어떤 경우에도 만만하게 볼 수 없다. 게다가 준결승 상대팀인 T 팀은 언제부턴가 최고 90마일까지 던지는 현역 학생 선수를 영입했고, 그는 나오는 타석마다 안타를 쏟아내고 마지막 이닝에서 강속구를 뿌리며 모든 팀의 최고 경계 대상이 되었다. 


준결승전이 열린 9월 19일, 심판을 맡은 D 팀의 감독은 서릿발 같은 태도로 '항의는 감독만, 라인업과 다른 선수 나올 시 무조건 아웃 처리' 등 엄격한 규정 적용을 경기 전부터 강조했다. 1년 농사를 마무리 짓는 플레이오프니 당연한 일이다. 경기가 시작되었고, 지난주 내내 서부 출장을 다녀온 우리 팀 선발투수는 초반에 감을 찾기가 어려운지 연거푸 장타를 맞아 경기가 크게 기울었다. 게다가 상대팀 선발투수는 과거 유명 고등학교에서 선수 활동을 한 A 씨. 나이가 있어 아주 강한 공을 던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리그 상위권의 구속에다 정교한 컨트롤, 여러 개의 변화구까지 상대하기 쉽지 않은 투수였다. 체력 문제가 있는지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인지 시즌에는 보통 2-3이닝만 던졌는데, 준결승전에선 1회부터 6회까지 100개가 넘는 공을 던지며 호투를 펼쳤다. 특히 나에게는 120에 가까운 전력을 다한 직구와 다양한 변화구를 섞여 던졌기에 어찌어찌 안타는 3개 쳤지만 제대로 맞은 타구는 하나도 칠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 팀 타선이 워낙 강하기에 꾸역꾸역 조금씩 점수를 뽑아내며 조금씩 초반에 잃은 점수를 만회해 가는 와중이었다.


아마 5회 정도였던 것 같다. A 선수가 3유간을 뚫는 안타를 쳐서 무사 1,3루의 위기가 찾아왔다. 갑자기 포수를 보던 우리팀 감독이 배트를 주워 들더니 심판에게 어필을 하기 시작했고, 심판도 배트를 보더니 바로 아웃 판정을 내렸다. 리그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장면이라 경기장의 전원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선출인 A가 허용되지 않은 배트를 들고 타격을 한 것이 적발되었던 것이다. 선수 출신과 일반인은 엄연히 기량이 다르기에 리그에서는 선출들에게 반발력을 낮춘 배트를 쓰도록 강제한다. 하지만 은근슬쩍 일반 배트를 쓰는 선출들이 없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시즌 중 우리 팀 상대로 다른 팀 선출이 일반 배트를 들고 나왔다가 심판에게 적발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설마 리그도 아니고 플레이오프에서 이런 장면이 나올 줄이야? 


원칙대로라면 전 타석의 모든 결과 (2루타, 볼넷, 안타)가 모두 아웃 처리되는 게 맞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걸 다 되돌릴 수도 없어 해당 타석만 아웃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규정이 제대로 적용되어 그가 퇴장되었다면 (규정상 1회 위반 시 타석 아웃, 2회 위반 시 퇴장) 만들어지지 않았을 점수가 최소 4~5점이고, 그가 6회까지 투구하면서 막아낸 점수는 그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 A가 고의로 부정 배트를 들고 나왔는지 실수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최소한 심판진이 경기 전에 배트에 대한 규정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면, 혹은 타석에서 선출들의 방망이를 체크했다면 어땠을까? 패배한 우리 팀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크게 남을 수밖에 없다.  






보통 경기에 지면, 그것도 플레이오프에서 지면 당연히 아쉬운 감정이 크게 일지만 우리 팀의 감정은 아쉬움보단 분노에 가까웠다. 그가 부정 배트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혹은 사용이 일찍 적발되었다면 승부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감독은 리그에 공식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리그 임원들은 논의를 거쳐 'A 선수의 결승 1차전 출전 금지 + 모든 선출은 타석마다 배트 확인 의무화' 조치를 내렸다. T 팀이야 최고 전력이 못 나오게 되니 중징계도 이런 중징계가 없겠지만, 내심 재경기도 기대했던 우리 팀에서는 꽤나 아쉬운 결과다. 결국 이렇게 되면 부정 배트 사용의 큰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구제는 전혀 없고 결승에서 기다리는 팀만 좋은 일이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 팀은 교회 기반 팀이기도 하고 성격이 좋은 사람들만 모여 있기에 다들 속임수 따위는 생각도 안 하고 Good Sportsmanship의 기치 아래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는 것을 모토로 삼고 열심히 연습해 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승부를 위한 꼼수와 부정행위 아래에 쉽게 없어진다면 누가 열심히 노력하려고 할까? 일 년 내내 연습하는 것은 어렵지만 주변에 널리고 널린 학생 야구선수나 선수 출신을 영입하여 라인업을 강화하거나 부정 배트를 들고 타석에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정정 당당한 힘 싸움에서 지고 나면 '아쉽다, 더 열심히 해서 다음엔 이겨야지!'라는 후련한 기억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이번 준결승은 다른 이유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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