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부: 메타버스의 밤
Chapter 1: 침묵하는 아바타
2025년 10월 15일 새벽 2시. '이터널 스페이스(Eternal Space)'.
전 세계 8억 명이 접속하는 초대형 메타버스 플랫폼의 서버실에서 긴급 알람이 울렸다.
시스템 관리자 김태준은 모니터에 떠오른 붉은 경고창을 보며 얼굴이 굳어졌다. 사용자 신고가 폭증하고 있었다. 모두 같은 사건을 가리키고 있었다.
유명 크리에이터 '실비아'의 가상 갤러리에서 벌어진 집단 난동.
실비아의 본명은 한지원. 27세의 그녀는 메타버스에서 디지털 아트를 전시하고 판매하며 월 3천만 원 이상을 벌어들이는 성공한 아티스트였다.
그날 밤, 그녀는 신작 발표회를 열었다. 200명이 넘는 팬들이 그녀의 아바타 주위에 모여들었다.
그때였다.
검은 후드를 쓴 15명의 남성 아바타들이 갤러리로 난입했다. 그들은 실비아의 아바타를 에워싼 채, 강제로 붙잡고, 욕설을 하거나 음란한 동작을 강요했다. 실비아는 로그아웃을 시도했지만, 그녀의 아바타는 마치 투명한 족쇄에 묶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7분 43초.
가해자들이 실비아의 아바타를 통제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한지원에게 그 시간은 영겁처럼 느껴졌다.
헤드셋을 벗어던지고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 그녀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다음 날, 한지원은 강남경찰서를 찾았다. 하지만 담당 형사의 반응은 냉담했다.
"피해자분, 이해는 합니다만... 현행법상 가상공간에서의 행위는 성폭력으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실제 신체 접촉이 없었으니까요."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 영혼이 강간당했는데!"
한지원의 절규는 차갑게 식은 사무실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사흘 후,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미스터리 수사대'로 연락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저를 믿어주세요. 제가 겪은 건 분명 범죄였어요."
Chapter 2: 보이지 않는 상처
"흥미롭군요."
심리학자 오민재는 한지원의 진술서를 읽으며 안경을 고쳐 썼다.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34세의 그는 범죄심리 분야에서 독보적인 전문가였지만, 최근 들어 개인적인 고민에 시달리고 있었다.
5년 전 자살한 여동생 민서. 그녀 역시 온라인 성희롱의 피해자였다. 민재는 그때 동생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터넷일 뿐인데 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냐'고 말했던 자신을 평생 용서하지 못했다.
이번 사건은 달랐다. 이번에는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지수 씨,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요? 타인의 아바타를 강제로 조종하는 게?"
화이트해커 이지수는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해요. '퍼펫 해킹(Puppet Hacking)'이라고 부르는 기법이죠. 메타버스 플랫폼의 보안 취약점을 이용해서 다른 사용자의 아바타 제어권을 탈취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녀가 손가락을 멈추고 민재를 바라봤다.
"이건 고도로 정교한 프로그래밍 실력이 필요해요. 단순한 트롤들의 장난이 아니라는 거죠."
이지수는 28세였지만, 그녀의 해킹 실력은 이미 전설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어두운 과거가 있었다.
2015년 고등학생 시절, 그녀는 친구의 부탁으로 학교 서버를 해킹했다가 퇴학당했다.
그 친구는 그녀를 배신했고, 5년 전 사이버 스토킹 피해까지 입은 그녀는 세상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지금도 그녀는 사람보다 코드를 더 믿었다.
"범인을 찾아야 합니다."
팀 리더이자 45세의 전직 경찰청 프로파일러인 강태우가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직관은 말하고 있었다. 이 사건 뒤에는 조직이 있다고.
"민재, 피해자 심리 프로파일링을 부탁합니다. 지수, 가해자들의 디지털 흔적을 추적하세요."
Chapter 3: 디지털 추적
이지수는 72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았다.
'이터널 스페이스'의 서버 로그는 방대했다. 수백만 개의 접속 기록 속에서 15명의 가해자를 찾아내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패턴을 찾았다. 가해자들의 아바타는 모두 사건 발생 3시간 전에 생성되었다. 그리고 사건 직후 삭제되었다.
"일회용 계정들이야."
하지만 이지수는 한 가지를 놓치지 않았다. 메타버스에 접속하려면 반드시 IP 주소가 필요하다.
가해자들은 VPN을 사용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그녀는 VPN 서버의 접속 타임스탬프와 이터널 스페이스의 로그인 시간을 교차 분석했다.
48시간 만에, 그녀는 15명 중 3명의 실제 IP 주소를 특정했다.
모두 서울 강서구의 같은 PC방에서 접속한 흔적이었다.
"찾았어요!"
오민재는 한지원과의 상담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한지원 씨는 심각한 PTSD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악몽, 회피 행동, 과각성... 전형적인 성폭력 피해자의 반응이에요. 가상공간에서의 경험이었지만, 그녀의 뇌는 그것을 실제 경험으로 처리했습니다. 신경과학적으로 볼 때, 가상 트라우마와 실제 트라우마 사이에 차이가 없어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동생 민서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가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올 겁니다."
강태우가 끄덕였다.
"방금 가해자들의 위치를 찾아냈습니다. 이제 직접 만나볼 시간이군요."
Chapter 4: 마스터의 정체
강서구 'G-Zone PC방'. 수사대는 CCTV 영상을 확보했다.
10월 15일 새벽 1시부터 3시 사이, 15명의 남성들이 PC방 2층 전체를 대관했다. 그들은 헤드셋을 쓰고 메타버스에 접속했다. 리더로 보이는 한 명이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조작하고 있었다.
이지수가 화면을 확대했다.
"저 사람이에요. 퍼펫 해킹 프로그램을 실행시킨 건 저 사람이에요."
남성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25세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성. 안경을 쓰고 검은 후드를 입은 그는 화면 속에서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강태우는 얼굴 인식 프로그램을 돌렸다. 10분 후, 결과가 나왔다.
"정우진. 27세. 한국전자기술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졸업. 현재 무직."
하지만 정우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2년 전부터 주민등록상 주소지에 거주하지 않았다. 휴대전화도 해지된 상태였다. 마치 유령처럼 사라진 사람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뒤져야 해요."
이지수가 제안했다. 그녀는 정우진의 이메일 주소를 추적해 여러 혐오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흔적을 발견했다. '남성연대', '안티페미 전선', '진실의 목소리'... 그는 이 커뮤니티들에서 '마스터(Master)'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여성 혐오 발언을 일삼았다.
오민재가 게시글들을 분석했다.
"이 사람은 여성에 대한 깊은 적개심을 가지고 있어요.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에 대한 증오가 심각합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건 열등감의 투사예요. 자신의 실패를 여성 탓으로 돌리고 있는 거죠."
그때, 이지수가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다.
"선배님들, 이거 보세요. 정우진이 '다크웹'에서 퍼펫 해킹 프로그램을 판매하고 있어요. 가격은 비트코인 0.5개. 약 2천만 원이에요."
강태우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이건 단순한 범죄가 아닙니다. 이건 사업이에요."
Chapter 5: 함정
수사대는 함정을 설계했다.
이지수가 가짜 구매자로 위장해 정우진에게 접근했다. 그녀는 '여성 인플루언서를 괴롭히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정우진은 의심 없이 답장했다.
"프로그램 가격은 0.5 BTC. 사용법 교육 포함. 직접 만나서 거래하자."
만남 장소는 홍대 근처의 한 카페였다.
10월 28일 오후 3시. 이지수는 소형 카메라를 옷에 숨기고 카페로 들어갔다.
강태우와 오민재는 근처에서 대기했다.
정우진은 시간에 정확히 나타났다. 그는 노트북을 열고 프로그램 시연을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을 쓰면 어떤 아바타든 조종할 수 있어요. 메타버스 플랫폼의 보안 허점을 이용한 거죠. 경찰도 추적 못 해요. 완벽한 범죄예요."
"왜 이런 걸 만들었어요?"
이지수가 물었다. 정우진이 비웃었다.
"왜긴 왜요. 돈도 벌고, 세상도 바로잡고. 요즘 여자들 너무 건방지잖아요. 메타버스에서 돈 벌고 잘난 척하고... 누군가는 그들에게 교훈을 줘야죠."
"교훈이요?"
"네. 여자들이 제자리를 찾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이지수는 구역질을 참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침착하게 비트코인 지갑을 열었다.
거래가 성사되는 순간, 강태우와 오민재가 카페로 들어왔다.
"정우진 씨, 당신을 정보통신망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합니다."
정우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Chapter 6: 법정에서
2025년 11월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정우진과 그의 공범 14명이 법정에 섰다. 검찰은 정보통신망법 위반, 업무방해, 재물손괴,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했다. 성폭력 혐의는 현행법상 인정받지 못했지만, 수사대는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오민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피해자 한지원 씨는 사건 이후 심각한 심리적 외상을 입었습니다. 이는 신경과학적으로 실제 성폭력 피해자와 동일한 뇌 반응을 보입니다. 가상공간에서의 경험이라도, 인간의 뇌는 그것을 현실로 인식합니다. 피해자의 고통은 결코 '가짜'가 아닙니다."
이지수는 기술적 증거를 제시했다.
"피고인들은 고의로 피해자의 디지털 자산을 침해했습니다. 한지원 씨의 아바타는 그녀가 3년간 공들여 만든 예술 작품이자, 월 3천만 원의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 도구입니다. 이를 7분 43초간 강제로 통제한 것은 명백한 재산권 침해입니다."
강태우는 법리적 논리를 펼쳤다.
"메타버스는 더 이상 단순한 게임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일하고, 창작하고, 관계를 맺습니다. 그곳에서의 범죄를 방치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무법지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3주간의 심리 끝에 판결을 내렸다.
"피고인 정우진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다. 공범들에게는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서 2년을 선고한다. 이 사건은 가상공간에서의 범죄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법정을 나서며, 한지원이 수사대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저를 믿어주셔서."
오민재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5년 전, 동생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 전하는 것 같았다.
"당신의 고통은 진짜였습니다.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에필로그: 새로운 밤
사건 이후, 한지원은 메타버스 성범죄 피해자 지원 센터를 설립했다.
그녀는 더 이상 춤추는 아티스트가 아니었다. 이제 그녀는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었다.
미스터리 수사대의 아지트.
오민재는 동생 민서의 사진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민서야, 이제 이해해. 네가 얼마나 아팠는지."
이지수는 노트북을 닫으며 미소 지었다. 처음으로 코드가 아닌, 사람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그들은 알고 있었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세상에서, 정의는 양쪽 모두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가상의 눈물도 현실의 눈물처럼 짜고,
보이지 않는 상처는 보이는 상처보다 오래 남는다.
미스터리 수사대 시즌 3이 이어집니다
"본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