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의 '인생의 베일'을 감명 깊게 읽고'작가들은 자유로운 언어의 마술사와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채롭고 다양한 인생을 베일에 싸인 신비한 여정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지나고 나면 꿈과 같지만, 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니 신비의 베일을 거두며 지나는 한 폭의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초년의 베일을 거두고 들어서니 아이로서는 버거운 거리의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네요. 그래도 돌징검다리가 있는 실개천처럼 예쁜 자연으로 표현해 주고 싶어요. 점점 올라갈수록 힘들었네요. 실개천이라고 휙 옆으로 뛰어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처음 들어섰을 때는 참방참방 물속을 걷기도 했어요. 곁에 날 지켜주는 어른이 계셨으니까요. 엄마의 손을 잡고 의지해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7세부터 제 인생의 새로운 베일을 또 거두어야 했습니다.
제 인생의 베일은 그렇게 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60년 생을 목전에 두니, 베일 속 수만 가지 삶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베일은 거두고 보아야 분명한 실상을 볼 수 있습니다. 베일 너머의 흐릿한 실상으로 이런 삶이라, 저런 삶이라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신은 얄궂게도 베일을 먼저 치십니다. 당신만이 모든 진실을 아시게끔 말입니다. 어쩌면 인간의 자만과 오만, 교만을 경계하셔서일까요.
혼자만 인간을 들여다보시며
'너 어떤 인간이야?' 하며 감시하시는 듯합니다.
신의 뜻도 몰랐지만, 삶에 대해 무지했던 저는 참으로 고단했습니다.
처음부터 분명하게 보여주시면 우리네 인생이 좀 더 행복할까요? 제 인생도 좀은 나았을까요?
아니면 교만함에 진실을 이용하여 오히려 악이 더 난무했을까요.
그는 신의 뜻이니 저는 알 수 없습니다.
인생에서의 소재들... 마음, 삶, 인간, 얼굴, 생각 등은 모두 신이 내린 베일입니다.
어쩌면 섣부름을 경계하여 신중하게 살라는, 또는 신의 뜻을 경건하게 받들라는 경외감의 커튼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베일은 게싱 게임 같은 즐거움도 줍니다.
베일을 거두면서 자신을 깨닫고 알아갑니다. 곁에 있는 사람의 존재, 진리인 사랑의 가치, 나 자신조차도 베일을 거두면서 알아갑니다.
인생의 베일은 수없이 많고 죽는 날까지 지속적으로 만날 것입니다. 제 인생에 남은 베일은 얼마일까요. 내가 거두어야 할 베일의 색은 어떤 색일까요? 어떤 재질일까요? 자못 궁금합니다.
우리는 그 앞에서 주춤,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신은 그렇게 경외의 베일을 드리우셨습니다.
베일을 거두고 진실을 마주하여 깨우친 인간은 신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옆의 사람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베일을 들추어 험한 실상을 만나도 '넌 베일 속에서 무엇을 했냐'라고 다그치지 않습니다.
단지 베일을 감각하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한 자신을 꾸짖습니다. 성찰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살아온 날의 베일 속 이야기는 제게 후회와 성찰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살아갈 앞날의 베일 앞에서는 겸손함과 신중함의 태도를 갖게 합니다.
인간에 대한 존중, 내면으로의 자아 성찰로 온전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생의 종착점에 닿았을 때 저는 지금보다 훨씬 온전한 인간이 되어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 모든 것, 생각들이 삶에서 배운 지혜이며 태도적 가치입니다.
온전해져 가는 저의 이야기를 글로 담습니다.
베일을 벗은 진실과도 같은 거짓, 거짓과도 같은 진실 등 다양한 이야기, 누구나 공감하는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그 속에서 가슴 벅찬 감동과 보석 같은 지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