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3> 변화의 흔적... 정신적 탈피

앗~ 내가 정말 변했다!

by 소망
시간은 흔적을 남기고,
고통은 성장을 남긴다.
- by 소망 -




일상은 흔적 없이, 소리 없이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흐르는 시간은 반드시 흔적을 남기듯, 고통의 시간은 성장의 흔적을 남겼다.



23년 봄.

3개월간, 학생처럼 8시간을 앉아 공부했다. 시험을 치르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집합교육에서 관망하는 태도를ㅡ예전의 나는 낯선 이들께 적극 다가가는 오픈형이었다.ㅡ 유지했고 말수는 적어졌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리는 지극히 멀쩡한 인간이 되었다.


그러다가 정신적 탈피가 일어났음을 확인하게 된 좀은 큰일이 일어났다.


탈피... 일정한 상태나 처지에서 완전히 벗어남.



예전의 나는 이러했다.


결혼 후 호르몬 이상으로 늘 아팠다. 내재된 결핍으로 마음은 늘 외로웠고, 행복하지 않았고, 삶이 그저 고단하기만 해서 죽지 못해 살고 있었다.


매우 자주 아팠다. 딱히 통증이 있는 아픔도 아니고,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도 아닌 심인성의 질환 ㅡ지금은 확실히 안다.ㅡ

파란 하늘을 보며 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나이에 나만 오랜 지병의 환자처럼 누워있어야 하나 싶어 마음은 몸보다 더 아팠다. 몸은 침대 밑으로 늘 가라앉고 심장이 뛰지 않는 것 같았다. 가위에 눌리는 일이 반복되고 몸은 다 자란 닭이지만 병든 병아리 같았다. 겨우 기어 일어나 출근하던 일이 반복되어 불행했다. 그러니 늘 하루를 보내며 다가오는 내일이 불안했다.


그때는 무슨 조화인가 궁금했다. 음식을 먹어도 영양소로 쓰이지 않고 기운이 까라졌다. 오죽하면 노량진에 점집까지 찾아갔었다. 점쟁이는 물이 부족한 나무가 꽃을 피워서 마른 고목이 된 형국이라는 말을 했다. 아이낳아서 그렇다는 말이었다. 에고~ 내 팔자려니 하고 한약으로 버텼다.




나이 50대에 들어서면서 건강 상태가 나아져 살만했다. 이상한 건 늘 약체였는데 업무를 할 때는 아플 새 없이 잘 해냈다.


그러던 내가 50대 중반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찍었다. 우울증의 시간을 겪은 후 변해갔다. 고통이 성장을 이룬 게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정신적 탈피를 이루었다 한다. 나와 깊이 이야기해 보지 않은 타인은 잘 느끼지 못했다. 적어도 나와 같이 예민한 친구가 먼저 느꼈다.




이도 나를 성장시킨 신의 계획이라 믿으니 이어진 사고에도 평온할 수 있었다. 우울증 치료를 위해 다양한 공부를 한 것이 사고 후 빛을 발했다.


여름밤, 외출 후 돌아오던 길. 서둘러 마트를 들러 귀가해야지 하고 차를 파킹한 후 이동하다가 한 스텝이 꼬여 턱에 걸렸다. 부웅~~ 떴는데 기억은 없고 철퍼덕 엎어져 있는 내가 보였다. 두런두런,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손목이 부러졌다. 내 손은 흡사 닭발처럼 꼬였다.


의외의 나?


응급실에 가서 밤새워 기다리는 동안에도 덤덤했다. 나이가 먹어서였을까.

'기왕 벌어진 일' 하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기념으로 사진이나 남길까' 하고 찍어 뒀었다. ㅡ이도 나의 낯선 모습이다.ㅡ


사고에도 담담했다. 예전의 나라면 이미 초죽음이어야 한다. 그리고 애들처럼 울었을 것이다. 몸은 부들부들 떨고 체온은 떨어지고 사색이었을 것이다. 난 솔직히 주사 바늘 들어가는 것도 보지 못한다. 뼈가 부러져 꼬였는데도 덤덤히 보고 사진을 찍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온전한 나는 육체보다 의식이라는 생각, 육체는 실용적인 자동차와 같다는 생각으로 세뇌하던 일이 도움이 되었다.


남편마저 집으로 보내고 긴 밤을 혼자 대기했다. 어른, 이 나이의 나는 혼자서도 담담히 일을 처리해야 하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ㅡ이 사고를 겪은 후 어린 자아를 탈피해 어른 자아로 성장했음도 확인했다.ㅡ


당시 치료에 소홀했던 무릎에 든 피멍이 풀리는데 한 달 정도 갔다. 부러진 손 때문에 살펴보지도 못했지만 잘 아물었다.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못쓰니 엄청 불편했다. 그런데 진짜 이상한 건 우울은커녕 긍정적인 생각만 든다는 거였다.


'이 일도 오려니 온 거겠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다리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이참에 왼손도 열심히 써서 우뇌도 발달시켜 볼까.'

'이 나이에 양쪽 뇌 발달로 더 똑똑해지려나...'

'이참에 못 이기는 척하고 일도 안 하고 편히 대접 좀 받아볼까.'

등등.


'더운 여름인데 이게 뭐람!'

'하필 오른손이람. 오른손을 못 쓰니 넘 짜증 나.ㅠㅠ'

'앞으로 평생 아플 텐데...'

'식구들이 제대로 가정을 돌볼 수 있을까. 집안은 난장판이 되겄네.'

'집으로 들어가지 마트는 왜 가려했을까.'

등의 후회, 자책, 걱정, 불안 등. 전에는 분명히 떠오를 만한 부정적 생각들이 올라오지 않았다.


맘이 덤덤하니 몸은 놀랐으나 불안하지도 않았다.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예전의 나라면 상상 못 할 일이었다. 걱정에 걱정, 슬픔에 슬픔, 불안의 불안까지...


문제가 생겼을 때 후회나 자책, 탓하기 등으로 에너지를 낭비할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 방법을 궁리하고 실천하는데 써야 한다는 생각이 이미 굳어져 있었다. 그것은 내면 소통 덕분인 듯하다.


길 가다 진흙에 발이 빠지면 짜증 내고 상황이나 장소 탓하며 성질내기보다 빨리 발을 뽑아 닦고, 털고 씻을 곳을 찾는 게 문제 해결을 위한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난 그동안 듣고 읽고 배운 것을 이 시기에 써먹었다.


오히려 골절 사고로 집콕한 상태에서 건강 챙기기와 마음공부, 묵상 등을 실천하니 마음은 더 안정을 회복했다.



손목의 골절은 수술 후 1년의 시간이 흐르니 편히 사용하게 되었다.

좀은 불편한 흔적일 뿐


이 또한 지나가고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사람을 만날 때에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만났다. 이 마음을 온유하게 하여 ㅇㅇ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하고, 친절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인생의 화려한 절정기로 향하는 조짐이 보였다. 글을 꾸준히 쓰며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기 시작했고 고통이 사라져 갔다.


24년이 되었다. 발침을 위해 또 한 번의 전신 마취로 수술을 했다. 현재 후유증으로 손목과 손바닥에 찌릿함이 불편함을 주지만, 이 또한 재생력을 믿는다.


대신 한의원 침치료를 꾸준히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육체의 불편을 해소해 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봄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3주 동안 해외살이도 했고, 가을에는 이태리를 누비고 다녔다.


해외는 매우 낯선 곳이라 패키지여행도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유여행에도 불안함이 거의 사라졌다. 불안을 주는 낯설은 문자와 언어에 따른 의사소통과 인종의 피부와 머리색뿐이다.

눈에 보이는 문자를 생각에서 지우고, 사람에 대해서는 인류애를 가지며ㅡ그들도 고해 속 인간이라는 ㅡ, 사람 사는 모습은 거의 같다는 생각을 하니 그리 두렵거나 불안한 마음이 사라졌다. 이제는 어느 정도 해외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그만큼 정신적 덫에 걸려 꼼짝 못 했던 어린아이였다. 아픈 병아리, 무기력한 코끼리였다.




지금은?

내 인생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물론 삶이란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고 불행이 있어야 행복도 느낄 수 있기에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 인간은 곧 삶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의미를 찾는 존재라는, 의미와 가치로 행복을 느끼는 존재임을 알기에 불행 속에서 빠져나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에크하르트 톨레가 말하는 지금 순간을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한 순간도 진정한 행복이 없어 슬프기만 했던 55세까지의 전반전은 이제 꼬리를 감추며 사라져 간다. 거의...


이 모든 삶의 여정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감사하다.




To be continued~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