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4> 변화의 흔적... 불안의 정서

치유의 시작은 직시와 앎에서 시작된다

by 소망

고통체의 하나인 불안을 보다


퇴직 후에도 우울증 치료를 지속했고 1년 3개월 간의 치료를 끝냈다. 마음공부를 하며 우울증의 근본 원인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고 그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초감정이 과거 어린 시절의 정서와 관련이 있음을 알았고 모든 감정들의 덩어리가 그리움과 불안이라는 고통체로 묶여 있음도 알았다.


살아온 55년의 세월에 깊숙이 침투해 나를 힘들게 했던 다양한 감정들과 행동의 원인들이 두 고통체였다.


나의 외로움은 그리움이 되었다. 외로움은 애정 의존적인 성격을 만들었고, 관심과 사랑의 부재는 내 마음의 병을 키웠다. 어른이 되었어도 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은 이유는 나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까 전전긍긍, 나에게서 마음이 떠날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고 그는 또 다른 하나의 고통체인 불안을 달고 살게 했다.


내 생활에 오래도록 영향을 끼쳐온 것은 내재된 불안이었다.


내 마음은 치유받아야 마땅했다.


내면의 고통체를 치유하는 데는 나 자신이 가장 중요했다. 가장 좋은 상담가와 조력자는 나 자신이라고 믿게 되었다.


과거는 과거로 아름다워야 하고, 과거 상처로 인해 현재의 내가 불행한 것은 다중 가해였다. 나는 과거부터 누적된 고통체로 늘 불행하게 살았음을 깨달았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현재는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변화시키고자 스스로 치료사와 조력자가 되고자 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 곁에 계셨다.



연재 5편까지는 어린 시절의 정서적 불안이 어른이 된 나의 삶에 어떤 고단한 모습으로 나타났었는지 그 폐해를 돌아보고자 한다.




불안 정서의 모습 하나...


지금도 만나고 있는 초기 직장 시절의 동료에게 예전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물었다.

그녀는 해맑고 밝은 모습으로 나를 기억했다. 그러나 나를 보면서 한 편으로는 그 밝음이 작위 된 듯 보였다고도 했다. 행동도 표정도 밝은데 그 모습 속에서 불안정한 정서가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신뢰한다. 다른 웬만한 사람은 잘 몰랐을 것이나 그녀가 그리 보았다면 맞을 것이다. 그녀는 나처럼 꽤 예민하고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였었다.


과거의 나는 늘 밝고 명랑한 듯했지만, 학창 시절 사진을 보면 눈이 슬퍼 보였고, 다른 친구들로부터 슬퍼 보인다는 소리를 꽤 들었다. 예전부터 우울한 정서가 내재되어 있었다. 직장에서도 밝은 듯 늘 웃었지만, 그 누군가에게는 불안의 정서를 다 들켜버린 것이다.



불안 정서의 모습 둘...


어린 시절 불안의 정서가 가정을 꾸린 후부터 특히 두드러졌다.


늘 내 곁에 있었던 불안의 그림자는 결혼 후부터 정체를 드러냈다. 연애시기에도 물론 있었다. 남자 친구ㅡ지금의 남편ㅡ가 날 떠날까 전전긍긍했다. 애정 갈구형이라 어린애처럼 징징거리기도 했지만, 예뻐해 주는 신랑 덕에 결혼을 했다.


가정생활을 시작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고 낯선 세상을 사는 것이다. 불안이 나타나는 것이 이런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의부증이 있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유아기 때는 사랑을 많이 받다가 1학년이 되기 전에 사랑의 주축인 엄마를 잃은 것이 내게 가장 큰 리스크였기에 분리불안증이나 애정의존증 같은 것은 약간?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있는 것이 맞다.


살다가 내게 싫증을 느끼면 마음도 떠나고 몸도 떠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늘 있었다. 그래서 사랑을 확인해야 했다. 신랑이 좀 무심하다 싶거나, 내 행동에 실망하는 눈치가 보이거나 하면, 걱정이 앞섰다. 그런 불안이 들면 '당신 내게 실망했지? 아마도 당신은 날 싫어하게 될 거야.' 등의 나만의 부정적인 상상으로 신랑을 괴롭혔다. 지금 생각하면 무던한 사람이었으니 망정이지 무지 답답하고 짜증 났을 것 같다.

애정 결핍과 불안증은 늘 내 안에 있었다. 그리고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늘 잘 보여야 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남의 이목에 주시했다. 그로 인해 가정적이던 신랑과의 갈등이 잦았다.


그런 정서에도 불구하고 무난히 살았던 것은 다행히도 난 밝고 친절했으며, 도덕적이고 착했다. 생활력도 강했다. 단 하나 문제는 가까운 사람에게 외면당하거나, 내게 무관심을 보이면 의부증 환자처럼 자꾸 확인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면 오해가 되고 다투게 된다. 나의 문제는 부부 사이에 충분한 갈등 요인이 되었다.



불안 정서의 모습 셋...


불안의 정서는 현재 직장과 가정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다. 현재 생활을 직접적으로 불행하게 만드는 건 당연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초래했다.


실제 생활에서 해야 할 걱정은 15%~ 3% 정도이고 나머지는 기우라고 한다. 이런 상식도 없었던 나는 늘 걱정 100% 속에 살았다. 차를 사니 교통사고 날까 걱정, 아이들이 생기니 보호자인 내 건강이 걱정이었다.

자가용으로 이동할 때는 운전 습관 때문에 꼭 다투게 되었다. 특히 아이 출산 후부터 많이 아팠기 때문에 난 40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이루 말할 수 없다. ㅎㅎ 친가나 외가에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살림이 윤택한 것도 아니니, '만에 하나 내가 죽고 신랑이라도 잘못되면 우리 애들은 어찌 사나'하는 걱정까지 해야 했다. 하하하~~ 지금은 진짜 웃을 일이다. 그러나 그때는 심각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일찌감치 죽으면 아이들 클 때까지 확실하고 안전하게 케어해 줄 최적의 보험을 찾아 가입했다. 죽으면 많이 상속되는 종신 보험.


늘 미래를 준비해야 해서 분주했다, 현재에 머무를 시간이 없었다.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미리미리 챙겼다. 어쩌면 이러한 일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유비무환을 실천하는 것으로 보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만 알고 있다. 불안증이었음을......




글을 쓰는 지금은 내 목을 내가 조르고 있는 것처럼 답답하고 웃음만 나온다.


사실 삶을 사는 그 당시에는 잘못 살고 있는지, 뭘 잘못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내 생활도, 내 생각도 거리 두고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다.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 누적되고 있는지도, 그것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도... 참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모르고 지나왔다. 55세까지 그랬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숱하게 보였던 불안의 정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캐치하지 못하고 살았던 우울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아는데...... 지금 안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은 안다. 불안은 백해무익이다.

불안, 염려, 두려움은 가라.



이제는 내 문제가 분명히 보인다.

나는 치유의 매스를 들고 상처를 과감히 도려내어 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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