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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formoflove Nov 21. 2024

결이 맞는다는 것

애써 함께하려고 하지 않아도 함께 걸어 나아가고 있는 것


내가 진짜 나일 때의 모습은 누구도 본 적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사람들과 있을 때의 나는 그들이 원하는 내가 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어떤 이에게는 조용하고 듬직한 사람이었고, 또 어떤 이에게는 가볍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내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건 흔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그들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 채로 그들 사이에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나를 불편해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마치 오래된 옷처럼 몸에 익은 감각이었다. 하지만 사랑은 달랐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런 옷을 입을 수 없었다. 모든 걸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내 모습은, 그들에겐 조금은 생소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온전히 나로 존재했다. 그것이 내가 그 사람에게 느끼는 애정의 방식이었다.


예전에 사귀었던 사람 중 하나는, 내가 친구들과 있을 때 너무 다르다고 말했다. “그냥 왜 이렇게 달라 보이지? 너는 나한테는… 음, 조금 더 차분해.” 그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가 맞았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그녀를 대했다. 친구들과 있을 때처럼 쉽게 웃고 농담하며 대할 수 없었다. 내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녀에게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그녀를 친구들에게 소개해주던 날이 생각난다. 우리는 한 카페에 모였다. 그녀는 긴장한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아 있었고, 나는 묵묵히 사람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날의 나는 유난히 말이 없었다. 그녀도 그걸 느꼈을 거다. “왜 이렇게 조용해?”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물었다. 나는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침묵했던 건 내가 가진 다른 페르소나들이 그녀의 앞에서 한꺼번에 꺼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있기를 원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앞에 두고는 그게 더 어려웠다.


사람들은 가끔 “결이 맞는다”는 표현을 쓴다. 나는 그 말을 종종 곱씹는다. 흔히들 말하는 취향이나 성격의 문제는 아니다. 결이 맞는다는 건,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 관계를 유지하려는 마음가짐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뜻일 거다. 그러나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던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때로 생각한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은 불가능한 걸까. 혹은 내가 그들을 스스로 놓쳐버리는 걸까. 내 주변에 머물던 사람들은 결국 떠나갔다. 내가 떠났든, 그들이 떠났든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게는 항상 무언가 억지로 애써야 하는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애쓰지 않아도 내 진짜 모습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내가 나일 때의 모습, 다른 무엇도 꾸미지 않은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주는 사람. 그런 사람과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환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세상은 나에게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라고, 그저 이상적인 꿈일 뿐이라고 속삭인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쩐지 아직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그런 환상이야말로 내가 사랑을 믿게 만드는 마지막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떤 날, 공원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 중 하나가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내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줄까. 그런 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도, 나는 오늘도 나를 감추는 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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