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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호 May 28. 2021

7화

쇼생크, 오줌을 참은 채로 갇히다


아버지와 그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둘이 이별할 즈음 이따금 할머니가 집에 찾아오곤 했고, 그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공허함에 짓눌린 어깨를 이고 집에 들어오면 부엌에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를 반겼다. 정말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 무렵부터 그 집에는 기이한 것이 존재했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그것은 현관 앞에도, 거실에도, 화장실에도 가득했다. 아버지와 있어도, 할머니와 있어도, 혼자 있어도 나를 가득 짓눌렀고, 그녀와 있어도 그랬다. 처음에는 돌아온 그녀를 본 순간 어리석게도 나는 그것이 사라졌다고 착각했었으나 그녀가 몇 번을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고서야 그것은 나타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이곳에서 사라진 적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그것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길 바랐다. 분명 그래서 그것이 없는 척 그리 행동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녀도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는 그것은 분명 존재했다. 그러니까 그건 보이지 않았다기보단 차마 보지 못하는 것에 가까웠다. 아직 너무 어리석어서거나 너무 연약하거나 너무 두렵거나 혹은 너무 잔인해서. 어떤 이유에서든지 차마 볼 수 없던 것이었다. 어쨌든 그 무렵 그녀와 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나마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 덕분에 지금도 나는 그 시절 내게 그리고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어느 순간부턴 저녁 시간의 집이 쓸쓸하리만치 고요해졌다는  정도.


퇴근한 아버지가 발을 세면대에 올려 벅벅 씻는 소리.

그녀가 끓이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그 시간엔 나는 제 몸만 한 청소기를 들고 집구석구석 돌아다녔다. 뉴스가 흘러나오는 텔레비전 앞을 지나 다양한 꽃과 낮은 나무가 자리한 베란다 앞에서 돌아 현관으로, 내 침대와 책상이 자리한 작은방으로 들어왔다가 나와서 부엌으로, 의자를 빼고 식탁 밑까지 구석구석 청소기로 훑는다. 그녀의 온기 가득한 뒷모습을 훔쳐보고 안방으로, 화장대 하나와 커다란 침대와 붙박이 옷장뿐인 안방은 내게 완전하고 성스러운 느낌마저 느껴지게 했다. 나는 함부로 들어와선 안 되는 영역에 들어선 죄의식을 느끼며 얼른 빠져나온다.

나는 가끔 그 장면을 꿈꾼다. 언제나 그렇듯 힘 있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현관에 나타나는 장면으로 시작해, 곧장 안방 불이 켜지고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거는 아버지의 손이 보인다. 정겨운 청소기 소리가 울린다. 그리고 아버지는 반바지와 러닝셔츠만을 걸친 채로 나타나 화장실로 들어간다. 그녀는 묵묵히 두부를 썰고, 된장을 한 숟갈 푹, 퍼낸다. 이번 주에 예보된 태풍에 대해 수차례 설명하는 텔레비전 소리가 청소기 소리 너머 아득하게 들린다. 거실 모퉁이에서 그 정경을 조망하듯 바라본다.

페이드 아웃.


중학교 2학년, 아버지와 함께 제이가 있는 마을로 이사 갔다. 아버지와 함께 왔고, 아버지는 떠났고 나는 그곳에 자리했다. 인천공항이 들어서고, 멀지 않은 곳에 조성된 작고 조용한 신도시였다.

이사한 뒤 나의 저녁은 청소기 소리 대신 브리티쉬 팝송으로 채워졌다. 아버지는 원래 다니던 직장을 위해 회사 근처에 원룸을 구했고,―그의 짧은 변명으로는 그렇다― 어린 나는 방이 세 개나 딸린 집에 혼자 살게 되었다. 그리고 제이는 항상 그런 내가 부럽다고 했다.

“빌어먹을 삼 형제.”
 고등학생 시절 그는 짜증이 그의 가족만의 유대감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짜증은 그 집의 가족력이다. 3권을 읽는 형보다 4권을 읽는 내가 늦게 읽어서 형은 짜증을 낸다. 씨발. 내가 스펀지밥을 보면서 먹으려고 따라놓은 콜라를 형이 벌컥벌컥 들이켠다. 그러면 제이는 짜증을 낸다. 이런 개새끼가. 어쨌든 그렇게 살다 보니까 이제는 서로를 알고 있다. 아닌 척해도 저것이 지금 단단히 짜증 났구나. 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것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러면 제이는 맥주를 마시러 나간다. 가끔 눈치챌 틈도 없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울컥 성을 낼 때도 있는데, 뭐 그래도 이젠 제이는 그 짜증을 담담하게 받아준다.

“글쎄. 배려라고 말하긴 싫고, 그냥 그래. 습관 같기도 하고. 어쩔 땐 서로 웃겨주기도 해. 따로 그러자고 한 건 아닌데, 같이 살면서 터득한 거 같아. 나름 우리들의 방식대로 같이 사는 법을 배운 거지. 짜증 낸다고 같이 싸워버리고 나면 그 분위기가 아주 엿 같거든. 같은 공간에 있는데 괜히 말도 안 하고 피하는 게, 그러고 있는 놈들이나 그걸 보고 있는 놈이나 얼마나 불편한데. 이왕이면 웃으면서 넘기는 게 좋은 거야. 나 좋자고 하는 거지. 나 좋자고. 뭔 말인지 알아? 그런 게 유대감인 거지.”

짜증. 같이 사는 법. 결국은 나 좋자고 하는 게 바로 유대감.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그런 게 있어. 아버지가 말없이 용돈을 건네면 나도 어떤 게 느껴지곤 해.” 그러니까 어쩌면 침묵은 나와 아버지의 유대감이 아닐까. 나는 굳게 닫힌 아버지의 입술을 떠올렸다. 가로로 단단히 닫힌 그 구멍. 그곳에서는 어떤 것도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오직 겸허히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수밖엔 없다고. 우리로선 그럴 수밖에 없다고. 아버지는 내게 가르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아버지 담배 좋아하거든. 꼭 나도 펴보라고 권하는 것 같달까.”

그리고 나는 그녀를 생각한다. 나와 그녀의 유대감에 대해서.

“뭔 개소리야 씨발. 너 담배 피우냐?” 어쩐지 냄새가 나더라니.

그날 나는 제이에게 담배 피우는 걸 들켰다.               


영국의 밴드 음악은 2001년에 시작됐다. 2001년 7월 5일, 비틀스가 “Let it be”를 발표했다. 그 무렵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이어서 Sum 41이 “Still Waiting”이 발매했는데 전혀 다른 장르라고, 가히 시대를 초월했다고 봐도 무방한 노래였다. 음. 그것 이전에 더 좋은 노래가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 음악들에 영감을 받은 뮤지션들은 잇따라 밴드 음악을 내기 시작했다. 레너드 스키너드의 “simple man”, X-japan의 “we are the world”, 라디오헤드의 “high and dry”가 대표적이다. 현재는 2021년에는 nina simone의 “feeling good”이 빅히트를 쳤다. 현재 각종 빌보드 차트를 휩쓸었다. 하지만 이 밴드 음악의 역사 중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하나 꼽으라면 단언컨대, 레너드 스키너드의 “simple man”이다.


소박하고 겸손한 사람이 돼야 한다.

너 자신이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

수수하고 검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들아, 할 수 있다면 날 위해

그렇게 해주지 않으련?


부자가 되기 위해 돈이나 추구하는

그런 욕심은 버려야 해

필요한 것은 모두 마음속에 들어 있단다.

네가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어.

얘야,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만족하는 삶을 사는 거란다.


너무 걱정하지 말 거라

너 자신이 누군지 발견할 거야

그 무엇보다 너 자신의 마음에 따라 살아

그리고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단다.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거야.


소박하고 겸손한 사람이 돼야 한다.

너 자신이 사랑하고 이해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해

수수하고 검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들아, 할 수 있다면 날 위해

그렇게 해주지 않겠니.


뭐, 심플하니, 좋은 가사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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