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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호 May 21. 2021

6화

쇼생크, 오줌을 참은 채로 갇히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그러니까 김포공항에서 계양으로 넘어오면서 지하철은 지상으로 올라온다. 지하철은 낡은 아파트 아래 그것보다 더 오래된 낡은 밭이 여유롭게 지나친다. 그리고 이내 나타나는 신도시의 골프장을 잠깐 흘겨보면 지나친다. 얼마 안 가 육지의 끄트머리에서 다리 위에 올라타 바다를 달린다. 바다 앞엔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공장들이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고, 무료한 바다는 그 그림을 자기 얼굴에 그려본다. 노곤한 공장의 풍경과 그 모습을 가지고 심심한 장난을 하는 바다를 지나서 열차는 드디어 섬에 도착한다.


인천공항 2 터미널행 일반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내방송이 들리고, 이내 온갖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사람으로 가득 찬 에스컬레이터에서 정민이를 발견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물론 밝은 색감의 하늘색 셔츠마저 퍽 지쳐 보였다. 이내 나를 발견한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심히 손을 들며 지친 인사를 건넸다.

“저녁은 먹었어?” 게이트를 나오는 그녀에게 가볍게 물었다.

“아니 아직.”

그럼 저녁 먹을래. 묻자 그녀는 좋아, 하고는 말을 가로채며 은행 건너편에 있는 순대국밥 가게 알아? 거기 가고 싶네 하고 말했다. 시종일관 그녀의 대화법엔 무언가 답답함과 속 시원함이 반복적으로 느껴졌다. 하고 싶은 말은 있지만 먼저 말하고 싶진 않아 묻길 기다리는 답답함이 은연중에 느껴지곤 했고, 결국 스스로 못 참든지 기어코 상대가 물어주든지 어쨌든 그녀가 이야기를 쏟아내면 내 속이 다 시원했다. 어쩌면 꼭 입을 닫고 있는 건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일지도 모른단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 그녀의 마음을 몰라줘 결국 자존심이 무너졌을 땐 스스로 비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저렇게 무언가 기다릴 땐 무정한 얼굴을 하는구나. 아무것도 없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나는 그녀의 그 행동거지가 퍽 귀엽다고 생각했다.

순대국밥에 소주를 한 병 시키고 정민이는 술을 먼저 달라고 말했다.

나는 종업원에게 술과 잔을 받아 잔 하나를 정민이에게 건넸다. 그녀는 한 손으로 술을 받았다. 그리고 나는 내 잔에 술을 채웠다. 그녀는 그대로 잔을 든 채로 나를 기다렸다.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시 술잔에 술을 채웠다.

“잘 지냈어?”

“그럭저럭.”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피곤해 맨날. 이틀에  번은 야근이고 상사도 자꾸 저녁 먹자고 추근대고 그런데…… 사실……” 가볍게 털어놓으려던 말은 어딘가  걸리더니 쉽게 넘어가지 못하고 툭툭 장애물을 치며 헛바퀴가 돌았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종업원은 펄펄 끓는 뚝배기를 맨손으로 들고 와선 얼른 나와 정민이 앞에 두고 갔다. 정민은 말을 멈추고 익숙하게 앞접시에 고기를 덜어냈다. 나는 숟가락으로  앞에 뚝배기를 휘저으며 정민의 움직임을 가만히 바라봤다. 고기를 덜어낸 뚝배기에 그녀는 부추를 넣고, 들깨 가루를 차례로 넣었다. 나는 다진 양념을 그녀 앞에 가져다 두었다. 그러자 멍한 얼굴로 작업을 하던 그녀는 돌연 나를 바라봤다. 찰나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

“다데기는 안 넣어.” 정민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헤어졌어.” 이어서 정민은 말했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 위로가 좋을까 축하가 좋을까.  들은  다진 양념 이야기만 하는  좋을까. 정민이의 얼굴은 역시 무정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줘야 하는 걸까. 나는 선뜻 입을 떼지 못했다. 유난히 아무 말도  하는  꼴이 상황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혹시 몰라서 말해둔 거야.”

정민이는 서툰 나를 대신해서 상황을 정리해주었다. 덜어놓은 머리 고기를 새우젓에 찍어 먹었다. 나도 뚝배기에 있는 순대는 앞접시에 덜었다. 다진 양념을 넣고, 부추를 넣었다. 그런 자질구레한 작업을 하면서 나는 잠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말하는데, 너 때문은 아니야. 나랑 걔랑 둘의 문제였을 뿐이야.” 정민은 가뿐한 목소리로 한 번 더 상황을 정리했다.

정민이는 머리 고기를 다 먹고, 밥공기를 뚝배기에 한 번 넣었다. 그리고 밥을 씹으며 국물을 몇 번 떠먹었고, 깍두기를 하나 짚어 아삭, 이로 잘라먹었다. 그와의 이별을 말하는 꼴이 꼭 오래전 일이었거나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한 일인 것 같았다. 정민이는 텅 빈 속에 뭐라도 꾹꾹 눌러 담듯 밥을 먹었다. 그녀는 이따금 술을 마셨고 나는 그녀에 맞춰 술을 마시고 또 술을 따라주었다.
 “일 끝나면 항상 이렇게 늦게 끼니를 때워?” 나는 물었다.

“응. 집에서 뭐 해 먹기는 너무 피곤해서 보통 친구 만나서 먹고 들어가.”

그럼 가끔 우리 모임에 . 항상  시간 즈음 만나.”

“무슨 모임? 너 약속 있었어?”

아니. 딱히 약속이랄  못되고. 뭐랄까, 사교모임인데, 재밌어. 남자도 많고.”

“됐어, 사람 새로 만나는 것도 귀찮아.”

“제이랑 나밖에 없어.”

“제이?”

“기억나?”

정민이는 웃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싫어. 걔는 뭔가 이상해.”

“이상하긴 하지.”

“어릴 때부터 그랬어. 직접 얘긴 안 해봤는데, 좀 허세도 있어 보이고. 아직도 사춘기 같아.”

“제이는 자긴 어릴 때 이미 다 커버렸다고 하던데.”

“하하, 그것 봐. 진짜 싫어.” 정민이는 숟가락을 든 손으로 입을 가리며 크게 웃었다.

“그래도 걔랑은 꾸준히 만나고 지내네. 둘이 안 어울리는데.”

“안 어울려 실제로.”

“그런데 왜 친해?”

그건 제이가 알아.” 제이는 실제로 언젠가 나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기억으로는 모양, 사탕, 통나무  그런 것들을 이야기했던  같은데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제이의 말을 그다지 귀담아듣지 않는다. 그래, 어쩌면 그래서 친한 것일 수도 있다.  녀석은 너무 하고, 나는 너무 많은  놓친다.

걔는 내가 솔직해서 좋대.” 나는 말했다.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너는 걔가  좋은데? 하고 물었다. 글쎄, 나는 잠깐 생각해봤지만 딱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내가 제이를 좋아하는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나도 걔가 솔직해서 좋아.” 하고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정민은 가만히 생각하는가 싶더니 어떤 말인지 이해될 것 같다고 했다.

이후 몇 마디를 나누었고, 어느새 정민이는 얼추 다 먹었는지 숟가락으로 찰박거리는 뚝배기를 휘저으며 장난을 쳤다. 편안한 웃고 있는 정민을 보며 나는 말했다.

“한번 우리 집으로 와. 저녁 해줄게.”

정민은 적이 당황한 눈치로 나를 바라봤다.

“요리를 좋아한다고 했지?”

응. 덜그럭거리며 공연히 휘젓는 숟가락에서 때늦은 수줍음이 느껴졌다.

고마워.” 정민은 말했다.

그녀와 나는 마지막 잔을 그대로 남겨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거리는 물안개가 자욱했다. 상가 단지를 빠져나와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교회 건물이 . 정민은 부모님이 다니는 교회라고 했다. 자신도 중학때까진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놀곤 했다고 말했다.  반대편엔 진갈색의 초등학교가 .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와서 다닌 초등학교가 바로 저기라고 정민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들이  가르기도 심하고, 죄다 깍쟁이들뿐이어서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지금도  시절 정민이에게 손을 내밀어준 민희와 유일하게 가깝게 지낼 뿐이라고 했다. 빨간 뿔테 안경을 쓰고 있던 새초롬한 민희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정민을 따라 초등학교를 지나,  너머 높은 아파트 단지 로 펼쳐진 3층짜리 빌라 단지 입구 도착했다. 제이네 집과는 정반대 방향이라 거의 와본  없는 곳이었다. 여기야. 그녀는 비로소 집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입구에서 나는 정민이와 헤어졌다. 정민이는 물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하얀 안개가 자욱한 길을 다시 걸으, 나는 일단 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씻고, 어떤 요리를 해줄지 고민해봐야겠다 생각했다. 초등학교를 지나고 교회를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퍽 노곤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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