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 오줌을 참은 채로 갇히다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비구름이 잔뜩 껴있었다. 지상의 불빛을 담은 하늘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곳에선 시궁창 냄새가 났다. 고약한 냄새가 왠지 정겹게 느껴졌다. 밉지 않았다. 며칠 동안 계속 이런 상태였다. 내내 구질구질한 게, 우물쭈물하면서 비는 한 방울도 떨어뜨리지 않고 습한 기운만 이곳저곳에 잔뜩 퍼뜨렸다. 그리고 나는 그런 하늘을 괘념치 않았다. 저 하늘이나 이런 나나 계속 이런 상태였다. 처음 현관을 나서서 잿빛 하늘을 확인했을 땐 다시 들어가 우산을 챙겨 나왔었다. 이틀째 내리는 것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나는 우산을 두고 다녔다. 기상예보는 우산 표시와 함께 60에서 70퍼센트를 유지했지만, 그래 놓고 어제도 내리지 않았고 오늘도 내리지 않았으니 내일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아마도 당분간 비는 오지 않을 거라고. 나는 나름의 어리석은 확신을 품었다. 그리고는 더는 하늘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감흥 없이 그대로 두었던 하늘을 문득 이제야 나는 올려다보았다. 발밑 하수구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가만히 들이쉬며, 나는 어떤 동물의 위장 속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그런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무언가의 아가리 속에 들어가 버린 기분. 막연하게 저 붉은 내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기분.
내 손가락 사이에서 제 몸을 태우는 담배는 조금씩 툭툭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건물 안으로 돌아왔다. 무정한 얼굴의 사람들은 사뭇 장엄한 분위기로 복도를 걸어 다녔다. 그들 위로 쏟아지는 창백한 형광등은 꺼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한쪽 구석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새벽 1시였다. 나는 공연히 제이의 전화를 걸었다.
물속에서 보글보글 기포(氣泡)가 터지듯 전화 연결음이 울렸다. 또로로로…… 또로로로…… 지금 나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심해 속에 있었다. 물이 아닌 무언가가 온몸을 감싸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 감각은 너무나 선명해 벗어날 수 없었다. 이런 건 내가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아니, 지금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뚜렷하고 구체적인 그 어떤 것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정민이와의 섹스, 어제 새벽에 본 축구경기, 맥주 안주. 떠올려봤지만 그런 건 무심코 지나쳐버린 벽에 걸린 장식용 그림들처럼 얼핏 그려질 뿐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지금 나는 어딘가 확실히 차분했다. 아주 위태로운 것 같지만 이상하게 침착했다. 하지만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확실히 이런 상황에 서툴렀다. 이런 감정,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에선 무슨 말을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는 것일까. 글쎄, 극복해야 할 것인가? 분명한 건 이해할 수 없이 막연하지만 분명 나는 지금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깊고 어두운 공간. 내 앞에는 어떤 반투명의 유리가 깨질듯한 위기감을 가진 채 놓여있다. 지금 나는, 그 유리를 깨뜨릴 수 없고 그 밖의 어둠도 감당할 방법이 없었다. 사실 뭐 이대로 두고 지내도 안 될 건 없을 것 같지만, 영원히 해소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지금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감정 없이 나는 너무 극단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너무도 막연한 감정이었다.
그곳, 바로 심해에서, 나는 숨을 토해내듯 제이에게 전화했다.
또로로로…… 또로로로……
나는 제이에게 세 번을 전화했다. 제이는 세 번의 전화를 모두 받지 않았다. 세 번째 전화가 끊기고, 나는 하얀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렇게 잠시 앉아 있었다. 문득문득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시간은 내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아주 잠깐 숨을 고르려고 했을 뿐인데. 그리고서 연락을 할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새벽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벨소리가 울렸다. 제이였다.
“여보세요?”
익숙한 제이의 목소리에 나는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뭐해.”
“자야지. 왜 전화했어.”
“맥주나 마시게.” 맥주. 그건 확실히 그와 나를 연결해주는 유대감이었다. 그에게 장난을 치면서 나는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어 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어딘데.”
“아니, 나 장례식장이야.”
“아, 뭐야 씨발.”
“너도 오든지. 한 잔 하게.”
“거길 내가 왜 가. 내일 마셔 그냥.”
“내일 와 그럼.”
“뭔 개소리야 또,”
“어머니가 죽어서.” 나는 말했다. 정적이 흐르며 수화기 너머에서 제이의 방의 공기가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언제.”
“사실 언제 돌아가셨는지는 정확히 모르고, 오늘 아침에 발견했대. 같이 일하는 친구분이. 일주일은 안 된 것 같다고 했대.”
“어딘데?”
제이의 목소리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의 차분함은 나의 그것과는 달리 의연함에 가까웠다. 나는 장례식장 이름과 서구청 근처라는 것만 간단하게 말했고, 그는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제이는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하얀 티셔츠에 검은 재킷과 검은 슬랙스를 입은 제이였다. 그렇게 나타난 제이는 장례가 끝날 때까지 함께 있었다.
이틀 동안 제이는 내게 아무 말도 걸지 않았다. 나도 그에게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조문객이 그리 많은 편도 아니었고, 언제부터였는지 몰라도 고아로 살아가던 그녀에겐 나 말고 상을 돕는 이가 없었다. 나는 가끔 눈으로 그를 찾았다. 한 번은 테이블 옆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었고, 한 번은 정민이를 비롯한 중학교 동창들이 오자 조의금을 받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조문을 마친 정민이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연락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는 금방 떠났다) 사람들이 사라진 새벽 시간엔 한쪽 테이블에 자리 잡고 편육과 김치만 가지고 가선 소주를 홀짝거렸다.
제이는 조용히 내 곁에 머물렀다. 그의 존재는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별말하지 않고, 가만히 머물러 주는 것. 꼭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하며 나를 토닥여주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 밤이 돼서야 나는 생각했다. 그녀에 대해서. 그녀의 삶에 대해서. 그녀와 나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어린 내게 이야기하던 그녀의 얼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온 그녀의 얼굴. 언젠가 훔쳐본 그녀의 얼굴. 더는 눈을 뜨지 않는 창백한 그 얼굴. 내가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그녀의 모습이 아닌 내가 보지 못한 그녀에 대해서. 내가 잃어버린 그녀의 모습에 대해서. 그리고 자식을 잃어버린 그녀의 삶에 대해서.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소득이 있길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어리석은 내 머릿속에서 대단한 게 떠오를 리 만무했다. 그저 나는 생각했다. 상실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처음 잃어버린 그 순간부터 생각했어야 할 문제였으나 모른 척 외면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바로 상실 그 자체에 대해. 나는 끈질기게 매달렸다. 그건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건 몰입에 가까웠다. 나는 어떤 감정에 몰입하고 있었다. 끝 간 데 없이 오로지 내 마음에 그 감정만 남아있을 때까지, 다른 자질구레한 것들은 모조리 치워버리고 있었다. 그건 아리고, 씁쓸한 것이었다. 또 불안하고 답답한 것이었다. 나는 자처해서 그 고통스러운 감정에 몰입한 것이다. 어리석게 그런 것에 몰입한 이유는, 어쩌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위한, 그녀의 삶을 위한 유일한 위로 말이다. 나는 그렇게 그녀를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제이는 넥타이까지 해선 검은 양복에 구두를 신고 돌아왔다. 그와 닮은 두 형제와 함께. 마지막 조문객이었다. 둘은 그녀에게 절을 했고, 나는 그들에게 멋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형들은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나의 어깨를 툭툭 쳐줄 뿐이었다.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나의 뒤에서 삼 형제는 그녀를 운구해주었고, 화장하는 동안엔 옆에 있다가 한 명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나타났고, 혹은 둘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가를 나타나곤 했다. 납골당에 그녀를 안치하고, 첫째 형의 차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돌아갔다,
나는 혼자 정리할 게 있다고 말하고는 제이를 내리지 못하게 했다. 고맙다. 나의 말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차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는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늘은 어느새 개어 그 위로 흰 조각구름들이 너울거렸다. 숨이 탁 트이는 경치였다. 나는 숨을 내쉬며 몸을 돌려 장례식장에 들어갔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