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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거 Oct 10. 2021

청취자가 된 이유

(feat.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요즘 내가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다. 성공에는 여러 기준과 방식, 방향이 있겠지만 나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만들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그 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래서 그 성공이라는 결과를 얻기 위한 힌트를 찾기 위해, 종종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찾아서 듣고 수집한다. 그들의 말을 평균을 내보면, 결국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말로 귀결된다.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그런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파악해서 집중하면 성공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무슨 색을 좋아하세요?"란 질문에 답하는 것이 가장 어려울 정도로 나에 대해 안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어렵다는 표현보다는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어색한 것 투성인 질문들이 많다. 나에 대한 질문을 마주했을 때의 어색함, 답답함이 너무 컸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나 공간이 주어지면, 최대한 나 이외에 집중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 나에게 집중하지 않기 위해, 나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집중한다. 친구들을 만나기 힘든 상황인 경우, 전화를 하거나 카톡을 해서라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집중을 했다.


그럼에도 혼자 있어야 할 때는 나에게 집중하지 않기 위한 일들을 찾거나 하거나 계획한다. 할 일이 없어지면 무엇이든 집중할 또 다른 일들을 만들어낸다. 무한동력의 힘을 따라 꽤 오랜 시간을 나에게 집중해야 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열심히도 피해왔다.


하지만 퇴사를 하고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일을 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일이 느는 속도가 혼자 있는 시간이 느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또 퇴사를 하면서 일하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서부터 일하는 것이 귀찮아졌고 그로 인해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특별한 성과나 결과물, 외부 활동을 하지 않다 보니 늘 20개 이상의 약속이 적혀있던 월간 캘린더도 깨끗해졌다.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면, 혼자 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는 질문과 마주 서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냥 누워 있었다. 하지만 그냥 누워 있어도 뇌는 돌아가고 생각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잡생각이 꽤 많이 머리를 지나고 나면, 다시금 "난 뭘 하고 싶은 걸까?"라는 대면하기 싫은 질문들이 다가왔다.


예전에 가죽공방에서 카드 지갑 만들기 원데이 클래스를 들었던 적이 있다. 지속적으로 다른 감각에 집중하면 생각 없이 질문의 다가움 없이 지낼 수 있다는 걸 경험해본 것이 기억이 났다. 다만, 누워 있으면서 인터넷으로 가죽 재료를 사고 가죽으로 만들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보는 등 여러 가지를 알아보기에는 너무 귀찮았다.


때마침 옆 집에서 화장실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옆집 변기의 레버가 눌려 물이 내려가는 소리부터 다시 차올라서 '사아아아~'해지는 소리가 온전히 마쳐질 때까지 집중해서 들었다. 


'방금 화장실을 쓴 옆집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그 사람도 자신의 화장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을까? 아니면 오래된 건물의 얇은 벽 때문에 자신의 집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옆집으로 퍼져나간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까? 내가 옆집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들었듯, 아마도 한번쯤은 우리 집 변기 물 내리는 소리도 당연히 들어보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냥 아무 상관없이 본인의 일에만 집중을 하고 있었을까?'


순간 나는 내 머릿속의 말끔함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오롯이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혼자 있을 때면, 내 주변에서 나는 소리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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