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점 Apr 12. 2022

나는 누구일까?

나만의 북극성을 발견하고 웃고 싶은 나


디자이너가 되다


현재 5년 차 프로덕트 디자이너다. 고객이 서비스에 들어와 목적을 달성하고 나가는 과정을 설계하여 고객 경험을 향상하는 일을 하고 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적어보자면 고객 분석을 통하여 문제를 정의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 다양한 UX 전략 기획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UX : User Experience, 고객 경험 / UI : User Interface,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자이너가 되기 전에는 매뉴얼에 따라 주어진 것들을 잘 처리하면 되는 회계 업무를 했었다. 그저 정해진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짧은 교육을 받고 반복 업무를 통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무료한 하루를 반복하다가 내가 너무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회의감이 들어서 창의성이 중요한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디자이너가 되었다.


편집 디자이너로 처음 입사한 IT 회사에서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나의 성장이 회사의 성장이고 회사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수당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집에서 일했다. 빠르게 성장하고 싶었고 디자이너로서 인정받고 싶었다. 전공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뒤처져 있다는 불안감도 있었다.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 많았지만, 이 과정이 곧 나의 성장을 위한 길이라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보냈던 것 같다. 그 결과 열심히 하는 직원으로 인정받고 좋은 처우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지 회의감과 무기력한 감정이 찾아왔다. 즐겁다, 행복하다, 기쁘다, 이런 감정들을 최근 언제 느꼈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다


완벽주의 성향과 인정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도 실수하면 크게 낙담했고 남들의 평가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다.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해도 피드백이 좋지 않으면 실망했다.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잘했다고 하면 좋았던 것 같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내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강했고 더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이런 부담감을 느끼며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한 결과 나름 괜찮은 처우를 받았다. 잠깐은 열심히 산 보상을 받은 것 같아서 좋았지만 그 기분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더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강박을 한 스푼 더 얹어주었다.


이상했다. 신입 때에 비해서 더 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더 다양한 지식을 쌓았지만, 오히려 갈수록 부족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알아야 할 것도 많았다. 너무나 방대한 지식에 무엇부터 학습해 나가야 하는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사수도 없었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무언가 해내면 해낼수록 요구는 더 커졌고 관리해야 할 범위는 넓어졌다. 오히려 신입 때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연차가 올라갈수록 자신감은 떨어졌다. 항상 나의 부족한 실력이 들킬 것 같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던 것 같다. 아, 그 많던 포부는 어디 갔을까.


그러다가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삶은 이렇게 피곤한 것일까, 남들의 평가에 신경 쓰고 항상 잘 해내기 위하여 나를 채찍질하며 사는 것이 좋은 삶인가. 분명 실력적인 성장도 하고 처우도 좋아졌지만 속은 엉망이었다. 내 삶에 나는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시선 속에 존재했다.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바로 나였다.


내 인생을 살고 싶었다. 지금 이렇게 사는 것은 나로 사는 것이 아니며 좋은 삶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했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음에도 이런 생각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저 일하고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주체적으로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아도 도무지 답은 나오지 않았고 막막하기만 했다.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은데....'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 사는 삶이 반복되었다. 종종 동기 부여 영상을 보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고 위안도 받았지만,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또 다시 정신적인 방황은 계속됐다.


누군가 행복하게 사는 방법 좀 알려주면 좋으련만. 아니,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그냥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족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웠으니까.


2021년 8월에 답답함이 극에 달했던 것 같다. 실제로 퇴사 면담도 했었다. 조금 더 버티다가 마음 병으로 쓰러질 것 같아서 살기 위해서 퇴사하기로 했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노션에 일기를 쓰곤 했는데 그때의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기록을 남겨두어서 다행이다.)


2022. 8. 29 일기

과거 일기장을 보면 일의 의미가 없어서 우울하다는 글이 많았다. 그만큼 나는 일의 의미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일이 단순히 주어진 시간 동안 나의 노동력을 팔고 돈을 받는 교환 과정을 의미하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 성장을 추구했다. 회사에서는 추가근무수당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야근을 했다. 퇴근을 하고 집에서 새벽까지 일한 적도 많고, 주말에 집에서 일한 적도 많다. 일하면서 나도 성장을 하고, 역량이 높아지고 또 그 발전된 역량을 회사에서 보여주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서 일석n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갑해졌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는 일이 더 이상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였는지, 퇴사하거나 이직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서였는지 모르겠다. 어디선가 회사에서 10년 뒤를 생각했을 때 닮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묻는 글을 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답은 `없었다`. 그렇다고 회사에 능력이 없는 사람만 있다는 말이 아니다. 회사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정말 일을 잘하고 능력이 좋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많았다. 본받을 만한 사람들은 충분했다. 그러나 더 이상 스스로 성장한다고 합리화하며 매일같이 야근하는 삶도, 주말에는 월요일을 위해서 회의 거리를 미리 준비하는 삶도 싫었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았지만 내 인생을 위해 열심히 살고 싶었다. 지금 인정을 받는 것도 이 회사라는 공간에서지, 회사를 떠난다면 그 인정은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회사의 네이밍이 아니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인정받고 가치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 와서야 생각하지만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내가 곧 성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매일같이 야근했던 그 시간을 나에게 투자했으면 개인적으로 더 성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퇴사를 생각했을 때 나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을까? 라는 생각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각자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았다. 나처럼 속이 쓰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을 쉬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직장인들은 가슴 속에 사직서 한 장은 품고 있다고 하던데, 그저 티가 안 날 뿐인지 뭔지. 여하튼 고민을 많이 했다. 예전에는 이직을 생각했었지만 이직이 목적이어서 퇴사하지 못했다. 어차피 다른 회사에 가도 인간관계는 맺어야 하고 똑같은 일이 또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이 맞지 않는 걸까? 사람이 맞지 않는 걸까?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는 것도 싫고 여러 사람을 모아서 사정사정하고 일정을 조율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싫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바로 진행하고 그 결과도 오로지 혼자 감당하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내가 기획과 디자인을 잘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잘못된 것에 시간을 쓰게 되니까 피해를 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또 무언가 변경 사항이 있을 때 죄책감이 들었다. 사실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나는 피해주는 것을 극심히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여러모로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이다.

서메리님의 <회사 체질이 아니어서요>라는 책에서 작가님은 퇴근했을 때 회사와 개인의 삶에 스위치를 잘 끄지 못하는 사람은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했다. 퇴근하고서도 계속 회사 생각이 난다는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말을 했는데, 그 사람은 퇴근하면 회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작가님과 같았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도, 집에 누워있는 시간에도, 심지어는 꿈에서도 일이 떠올랐다. 그만큼 일이라는 것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었나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일하는 것이 내 스스로의 발전이 아니라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기획서를 작성할 때 논리적으로 잘 작성되었는지, 다른 사람이 보이게 모순되는 곳은 없는지 체크를 했다. 또 이 정도면 많이 고민한 것 같아 보일까, 팀장님이 원하는 것이 이것일까 등등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하는지 모를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업무를 진행했다. 여하튼 결론적으로 나는 일을 하는 시간이 조금 아까워졌고, 월급을 받으며 내 시간을 팔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022. 8. 2 일기

또 다짐한다. 나는 내 인생, 내 이름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 너무 스트레이트로 달려서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을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이 적었다. 그저 빠르게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고, 회사가 원하는 모습대로 열심히 일하고. 수당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일하고, 집에서도 주말에도 일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물론 그에 따라 연봉도 많이 올랐고 회사에서 나름의 인정도 받았지만 갑자기 깨달았다. 삶에 내가 없었다. 항상 잘 보이려고 일을 했기 때문에 일이 잘 안 될 때면 나쁜 평가를 받을까 봐 전전긍긍했고 업무 하나하나, 문서 정리 하나하나 남들이 어떻게 평가할까 신경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 내 생각이 대부분이 옳다고 하는 방향일가? 겨우 이것밖에 생각하지 못 했냐고 생각하면 어쩌지? 생각보다 무능력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어쩌지어쩌지. 어쩌지병에 걸린 것 같았다. 나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 일하고 있었다. 내가 일을 더 잘할수록 더 높은 기대를 할 것이고, 나는 또 그들의 높아진 기준에 맞춰서 노력해야했다. 그 기대감과 현실의 나의 괴리 때문에 괴로웠던 것 같다.

속이 항상 쓰렸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심할 때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우연히 공황장애 증상을 알게 되었는데, 왠지 그 병에 걸린 것 같았다. 물론 글을 쓰는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왠지 알 것 같다 계속 이런 상황을 반복하리라는 것을. 이제는 쉬면서 나라는 사람을 더 잘 들여다볼 때라고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웃을 날이 오겠지?'

의 감정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일기를 찾아보았는데 무엇보다도 이 문장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홀로서기를 꿈꾸다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온 다양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어차피 회사 밖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리라는 것, 월급쟁이로는 내 집 한 채 가지기 어렵다는 것, 나의 회사가 아니므로 종종 위에서 내려오는 의미 없는 일을 하긴 해야 한다는 것, 회사에서는 롤모델이 없다는 것. 이것은 회사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는 충분히 능력 있는 분들이 많았지만 새벽에도 주말에도 회사를 위해 일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분들은 자신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이 과연 '내' 인생일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아마 정년퇴직 후의 현실에 대한 영상을 봐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일 수도 있다. 회사는 개인을 책임져주지 않는구나.


그리고 생각해보니 나의 롤모델은 회사가 아니라 본인의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자기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분들처럼 회사 명함이 아니라 자기 이름으로 인정받으며 살아가고 싶었다. 일하는 환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하는 내'가 중요한 사람들. 왠지 이런 사람들은 활달하며 도전정신이 강한 것 같아서 과연 내향적인 내가 할 수 있을까 자기 의심도 들기도 했다. 언젠가 이진선 님의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를 읽고 내향적인 사람도 자기 삶을 설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도 한번 해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홀로서기를 목표로 세우는 것에 영향을 준 것들이 참 많다. <부의 추월차선>과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도 가치관을 바꾸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 책들을 보고 지금껏 세상이 규정한 모범 시민처럼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회사에 취업하여 정년까지 일하는 삶. (그렇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을 다닌 것은 아니다) 노년을 위하여 최대한 아끼고 저축하는 삶. 이전에는 평범하게만 보였던 삶이 갑갑하게만 느껴졌다.



'나의 세계를 만들지 않으면 평생 남이 만든 세계 속에서 살아 가야한다.'


이 문장은 경각심을 주었다. 평생 만들어진 시스템 속의 노동자로 살지 않기 위해서 생산자가 되고 싶었다. 또한 기업의 주인이 아닌 이상 누구나 언젠가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했다. 나이가 들어서 준비되지 않은 채 쫓겨나 방황하는 것보다는 도전 기회가 많은 젊은 나이일 때 많은 것들을 시도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마음가짐을 다시 잡으니 아직은 회사에서 경험하고 배울 것들이 있었고, 생활비도 벌어야 해서 바로 퇴사하지는 않았다. 퇴사 면담을 한 후에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서 다양한 혜택을 받은 것도 살짝 도움은 되었다. 하지만 결론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회사에서 배울 것들이 사라지고 내 삶의 설계가 구체화된다면 그때가 적절한 퇴사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기발견의 시작


"나는 누구일까?"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해야 할까?"


그러다가 한달어스의 자기 발견 글쓰기 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현재 자기 삶과 일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를 알고 미래를 설계하도록 가이드를 해주는 글쓰기 프로그램이었다. 딱 나를 위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이 철학적인 질문들에 진지하게 답을 내려본다면 어느 정도 삶의 방향성을 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글쓰기 프로그램은 <사수가 없어도 괜찮습니다>의 저자 이진선 님이 만든 프로그램이다. 이진선 님의 브런치 글은 사수가 없어서 방황하는 나에게 스스로 자기 인생의 멘토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울림을 주었다. 단순히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만 한 것이 아니라 작가님이 삶과 일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글 속에서 느껴졌으며, 그 고민의 과정을 타인에게 진정성 있게 전달하고 싶다는 것도 충분히 와닿았기 때문에 더 인상 깊었던 것 같다.


사실 예전에도 자기 발견 글쓰기 프로그램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내가 준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작하지 못했다. 잠깐 훑어본 질문들이 너무 어렵게 다가왔다. '당신의 삶에 변화를 일으킨 세 가지 전환점은 무엇인가요?', '현재 당신의 전문성은 어느 단계에 위치하고 있나요?'


어쩌면 그때의 나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삶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었으며 홀로서기에 큰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을 후회하기도 하지만 지금이라고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사이에 다양한 습관 만들기를 경험한 것도 새로운 도전에 도움이 되었다. 걱정과 우울에만 빠져있을 시간에 글이라도 하루에 한 편 써보자고 다짐했다. 거창할 필요는 없고 그저 뭐라도 해보는 것이 목표였다. 지금 돌아보면 쓰는 것에만 급급해 좋은 글을 쓰지는 못했던 것 같지만 그래도 글에 가까워졌으며 이전보다 확실히 성장했음을 느낀다. 그리고 100 일 넘게 지속하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칭찬을 해주고 싶다. 100일 정도 1일 1포스팅을 진행하면서 글을 '막' 쓰는 것은 조금 친숙해져서 앞으로는 글을 '잘' 쓰고 싶었다. 자기 발견 질문에 답을 내려볼 준비가 이제는 된 것 같았다. 2022년,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나를 알고 앞으로 나아갈 기준이 되어 줄 좋은 북극성을 발견하고 싶었다.







나만의 북극성 발견하기


고민과 스트레스를 받았던 상황을 일기로 적어보면 문제가 종종 해결되었던 적이 있다. 나름 객관적으로 사건이 발생한 상황과 그 속에서 느낀 감정을 적어보니 지금의 감정은 비합리적이고 더 나은 환경을 위해서 앞으로 이런 선택을 하는 것이 낫겠다는 길이 생겼다. 때때로 느끼는 버거운 감정들은 사실은 스스로도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잘 살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지금의 상황도 현재 나의 상태와 원하는 미래를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기 발견 글쓰기가 나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구체적으로 길을 만들 수 있는 그런 과정이 되었으면 한다.


사실 글을 30일 동안 쓰는 것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수량 채우기용 글은 지양하고 싶다. 쓰기 위한 글쓰기는 이 프로그램을 시작한 목적과 다르니까. 짧더라도 꾸밈없이 나를 알아가는 그런 진지한 글쓰기를 해보자. 누군가가 나를 키워주길, 방향을 알려주길 더 이상 바라지 말자. 나를 책임질 수 있는 것은 나밖에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