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북극성을 발견하고 웃고 싶은 나
2022. 8. 29 일기
과거 일기장을 보면 일의 의미가 없어서 우울하다는 글이 많았다. 그만큼 나는 일의 의미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에게는 일이 단순히 주어진 시간 동안 나의 노동력을 팔고 돈을 받는 교환 과정을 의미하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 성장을 추구했다. 회사에서는 추가근무수당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야근을 했다. 퇴근을 하고 집에서 새벽까지 일한 적도 많고, 주말에 집에서 일한 적도 많다. 일하면서 나도 성장을 하고, 역량이 높아지고 또 그 발전된 역량을 회사에서 보여주면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서 일석n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갑해졌다.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는 일이 더 이상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였는지, 퇴사하거나 이직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서였는지 모르겠다. 어디선가 회사에서 10년 뒤를 생각했을 때 닮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묻는 글을 보았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답은 `없었다`. 그렇다고 회사에 능력이 없는 사람만 있다는 말이 아니다. 회사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정말 일을 잘하고 능력이 좋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많았다. 본받을 만한 사람들은 충분했다. 그러나 더 이상 스스로 성장한다고 합리화하며 매일같이 야근하는 삶도, 주말에는 월요일을 위해서 회의 거리를 미리 준비하는 삶도 싫었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았지만 내 인생을 위해 열심히 살고 싶었다. 지금 인정을 받는 것도 이 회사라는 공간에서지, 회사를 떠난다면 그 인정은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회사의 네이밍이 아니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인정받고 가치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 와서야 생각하지만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내가 곧 성장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매일같이 야근했던 그 시간을 나에게 투자했으면 개인적으로 더 성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퇴사를 생각했을 때 나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을까? 라는 생각했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각자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았다. 나처럼 속이 쓰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을 쉬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직장인들은 가슴 속에 사직서 한 장은 품고 있다고 하던데, 그저 티가 안 날 뿐인지 뭔지. 여하튼 고민을 많이 했다. 예전에는 이직을 생각했었지만 이직이 목적이어서 퇴사하지 못했다. 어차피 다른 회사에 가도 인간관계는 맺어야 하고 똑같은 일이 또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이 맞지 않는 걸까? 사람이 맞지 않는 걸까?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는 것도 싫고 여러 사람을 모아서 사정사정하고 일정을 조율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싫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바로 진행하고 그 결과도 오로지 혼자 감당하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내가 기획과 디자인을 잘못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잘못된 것에 시간을 쓰게 되니까 피해를 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또 무언가 변경 사항이 있을 때 죄책감이 들었다. 사실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나는 피해주는 것을 극심히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여러모로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이다.
서메리님의 <회사 체질이 아니어서요>라는 책에서 작가님은 퇴근했을 때 회사와 개인의 삶에 스위치를 잘 끄지 못하는 사람은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했다. 퇴근하고서도 계속 회사 생각이 난다는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말을 했는데, 그 사람은 퇴근하면 회사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작가님과 같았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도, 집에 누워있는 시간에도, 심지어는 꿈에서도 일이 떠올랐다. 그만큼 일이라는 것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었나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일하는 것이 내 스스로의 발전이 아니라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기획서를 작성할 때 논리적으로 잘 작성되었는지, 다른 사람이 보이게 모순되는 곳은 없는지 체크를 했다. 또 이 정도면 많이 고민한 것 같아 보일까, 팀장님이 원하는 것이 이것일까 등등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하는지 모를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업무를 진행했다. 여하튼 결론적으로 나는 일을 하는 시간이 조금 아까워졌고, 월급을 받으며 내 시간을 팔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2022. 8. 2 일기
또 다짐한다. 나는 내 인생, 내 이름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 너무 스트레이트로 달려서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을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이 적었다. 그저 빠르게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고, 회사가 원하는 모습대로 열심히 일하고. 수당을 주지 않아도 알아서 일하고, 집에서도 주말에도 일하고.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물론 그에 따라 연봉도 많이 올랐고 회사에서 나름의 인정도 받았지만 갑자기 깨달았다. 삶에 내가 없었다. 항상 잘 보이려고 일을 했기 때문에 일이 잘 안 될 때면 나쁜 평가를 받을까 봐 전전긍긍했고 업무 하나하나, 문서 정리 하나하나 남들이 어떻게 평가할까 신경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 내 생각이 대부분이 옳다고 하는 방향일가? 겨우 이것밖에 생각하지 못 했냐고 생각하면 어쩌지? 생각보다 무능력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어쩌지어쩌지. 어쩌지병에 걸린 것 같았다. 나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 일하고 있었다. 내가 일을 더 잘할수록 더 높은 기대를 할 것이고, 나는 또 그들의 높아진 기준에 맞춰서 노력해야했다. 그 기대감과 현실의 나의 괴리 때문에 괴로웠던 것 같다.
속이 항상 쓰렸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심할 때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우연히 공황장애 증상을 알게 되었는데, 왠지 그 병에 걸린 것 같았다. 물론 글을 쓰는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 왠지 알 것 같다 계속 이런 상황을 반복하리라는 것을. 이제는 쉬면서 나라는 사람을 더 잘 들여다볼 때라고 생각했다.
'나의 세계를 만들지 않으면 평생 남이 만든 세계 속에서 살아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