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용 May 09. 2023

특별하지 않아도 특별한 것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서평


 이제는 ‘TV를 보다 보면~’, ‘뉴스를 보다 보면~’ 이런 말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차라리 ‘유튜브를 보다 보면~’으로 말해야만 최근 소식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정말 격세지감을 느낀다. 2008년에 태어난 사람이 연예인을 하는 시대가 오다니! 하기야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언젠가는 올해(작성일 기준 2023년) 태어난 아이들도 할아버지가 되는 날이 오는 건 진리이니, 놀랄 것도 없다.


 그러나 라디오든, TV든, 유튜브든 우리가 이러저러 소식을 듣다 보면 종종 우울감이 밀려올 때도 있다. 그런 종류의 우울감은 대게 이런 생각에서 출발한다. 저 사람들은 다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대체 뭐하고 있는 거지?’ 


“못해서 못하니까 좋은 거예요. 무능해서 귀한 거예요. …” p11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수록작이자 대상작, 이미상 작가님의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은 매력적이고, 여러 갈래 생각을 할 수 있게끔 구성된 소설이다. 작중 모든 이야기를 꼼꼼하게 다루고 싶으나, 글재주도 부족하고, 그러면 너무 스포일러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 본 서평에서는 작중 주요 흐름에 대해서만 다루고자 한다. (고전 문학과는 달리 현대 문학에 대해서는 스포일러에 일종의 강박증이 있다.)


 우리는 종종, 아니 꽤 자주, 평균을 무시한다. 무슨 소리냐면, 우리 삶, 혹은 무엇인가를 1~10 정도로 나눈다고 했을 때, 대략 3정도까지는 와야 평균 아닌가? 하는 위험한 상상을 다들 가슴 속에 품고 있다는 소리다. 


“… 소설에 쓴 모든 문장이 그 ‘한 방’을 위해 쓰이는 것 같잖아요. 그 한순간을 들어올리기 위해 팔을 벌벌 떨며 벌을 서고 있는 것 같잖아요. …” p11

 우리네 삶 모두 ‘한 방’일 수는 없다. 융기한 어떤 지면에 꼭짓점이 아닌 그 부근, 아니면 진원지에서 더 멀어져 잠잠한 평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 누군가 자신에게 오늘에 대해 묻는다면 목경은 이 이미지만 기억할 것이다. 처음에 들었던 두 사람의 대화는 잊고. p14


 본작은 액자식 구성으로 진행된다. 처음에 카페에서 이름 모를 여자 셋이 너무 큰 목소리로 대화하기에 불가항력으로 대화를 엿들을 수밖에 없어 들었던 얘기를 시작으로, 목경은 과거를 회상한다. 고모 장례식을 마치고 나온 후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들의 대화가 안내자가 돼 목경을 과거로 이끌었다. 그만큼 그 대화는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이야기를 닮아 있었다.


“…큰오빠 쌀. 큰언니 보리. 작은오빠 쌀. 아들 둘에 딸 하나. 딱 좋았는데. 내가 기어이 나오고 말았어. 그러니 나는 보리에도 못 미치는 모래 아니겠니?” p15


 고모는 스스로 모래라고 소개했다. 고모는 부모에게서 적절한 사랑을 받지 못했고, 그건 목경도 매한가지였다. 목경의 부모는 밖으로 나도는 탓에 엉겁결에 고모가 목경과 언니인 무경을 왕왕 돌봐줬다.


목경이 정신을 놓기 위해 온정신을 기울이자 서서히 열이 올랐다. 얼마 안 있어 목경에게, 집에서 종종 그러하듯, 은총 같은 고열의 혼미가 찾아왔다. p21~22


 목경은 고모의 환심을 사고 싶었다. 동질감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고모의 동의는 받은 적 없지만, 어쩔 수 없다. 당시 목경은 너무 어린 아이였다. 본작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목경은 고모의 ‘한 방’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고모의 그 일을, 내가 했어요.” p39


 그러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목경은 지극히 목경의 시선에서만 얘기하자만, 무경에게 고모를 빼앗긴다.


“너는 내 딸이구나.” p39


 실제 모녀 관계도 아닌 사이에서, 그렇게 서로 좋아라 했던 사이도 아니었던 것 같던 둘 사이에서 계승식이 열렸다.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 ‘목경은 고모에게 무경보다 더 특별한 존재는 될 수 없다.’ 라는 내용의 판결문을 목경의 귓가에 낭독하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한순간 깊이 닿았고, 고모가 죽기 직전 떠올릴 한순간을 골라야 했다면 언니와의 기억을 택했을 것이다. 이 얼마나 분한가! p42


 목경은 분했을 것이다. 서평에서 따로 서술하지 않았지만, 어린 목경은 나름 분발하고 노력했다. 자신의 자리인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은 살다보면 익히 경험하지만, 어린 나이에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본작을 읽었을 때, 마치 고모에서 무경으로 이어지는 영웅설화에서 조력자인 목경의 관점으로 쓴, 이색적인 소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력자1이 주인공이면 안 되냐는 물음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런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특별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평범한 대중이 이끄는, 민주주의 사회이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가 대부분 특별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진부한 말이지만, ‘나’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유일한 존재라는 의미인데, 이건 분명 특별하다는 말과 같다.


 모호한 말은 확실하게 끝내긴 어렵다. 좀 더 배배 꼬아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본 서평 제목을 다시 활용하면 그만이다. 우리는 목경처럼 특별하지 않아도 특별한 존재다.



 2023 젊은작가상 수상집 중 ‘모래 고모와 무경의 모험 서평’,  2023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코멘터리 북


-작가 : 이미상

-출판사 : 문학동네

이전 07화 폭력을 독점한 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