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창작기금선정작 -5-
어젠 낮이 너무 무겁고 길이 낡아 너덜거렸다
달리고 싶어
말표 구두약 맥주를 골라 마셨고
비딱한 낮달을 신고 뛰었다
저무는데
목구멍까지 올라온 낯선 길 냄새
비틀거리는 바위가 내게 걸터앉아
달의 뒷면 같은 고요를 저녁 코끝에 골고루 바르고
어둠에 광택을 냈다
기울어진 신발 운반대
앞만 바라봐야 하는 신발들의 풀죽은 코끝
오늘도 그저 그런 골목과
길 건너 빌딩의 견고한 층계를 무심히 지켜보다가
구두 수선점 밖으로 나오던 걸음이 흔들린다
푸른 질주를 잊진 않았지만
손이 발이 되도록 문질러도 제자리
겨우 벗어난 일탈이라는 게
차바퀴가 보도블록 위로 튕겨 준 돌멩이 같은 것
누군가 걷어차지도 않는
반짝거리지도 않는
어김없이 오늘의 발들을 구두 수선대 밖에 확 풀어놓는다
코끝 벌렁거리는데
벌판은 보이지 않고
멀리 급상승하는 승강기의 화려한 불빛
바싹 마른 구두 가죽에 달라붙은 근육들
한 번 더 웅크리는 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