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져 마치 카펫처럼 길가를 덮었다. 찬 바람이 불고 부슬부슬 가을비가 오자 낙엽은 힘없이 낙하했다. 해마다 짧게만 느껴지는 가을은 내가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9월의 첫 날이 생일이라 더욱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9월 중순즈음부터 11월 초까지의 날씨를 우리는 '가을'이라고 부른다. 반팔이나 민소매보다는 정중하지만 그럼에도 가벼운 옷차림이 허용되는 계절. 봄에는 새로운 새싹이 움트는 설렘이 느껴진다면, 가을에는 불긋 푸릇하게 물든 풍성한 나무들과 코를 찌르는 은행 냄새, 높고 청명한 하늘로 설렘이 고조된다.
가을엔 어디든 쉬이 떠나면 그만이다. 아마 짐도 다른 계절에 비해 적을 것이다.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은 한낮의 길이 덕분에 어디서든 오랫동안 햇살을 즐기며 거닐 수 있다. 맑은 하늘 덕에 선명하게 보이는 노을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지. 눈을 감으면 한강 물에 비치는 노을과 윤슬이 반짝거린다.
11월이 지나 겨울맞이가 시작되면 부슬거리는 늦가을 비가 내리고서 기온이 뚝 떨어진다.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던 잎들이 우수수 옷을 벗는다. 나무들은 혹여 추울세라 지푸라기로 만든 옷을 껴입고 겨울을 맞는다. 한껏 길어졌던 한낮의 길이는 점차 짧아져 어두컴컴한 저녁이 빠르게 찾아온다. 가을 내음이 지나고 찬 공기가 우리를 감싸면, 왜인지 한껏 우울해졌던 마음들도 차분히 가라앉곤 한다. 어지러운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있자면 곧 들뜬 연말이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다가올 봄의 설렘은 잠시 묻어둔 채.
12월이 되면 나는 벌써 다음 가을을 기다린다. 가을에만 꺼내 입을 수 있는 가디건과, 셔츠, 그리고 몇 번 입지도 않는 트렌치코트를 기다리며, 단풍의 화려함과 대비되어 가볍고 단조로운 가을의 마음가짐들을 생각한다. 누구든 이처럼 가을을 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너무 더운 여름과, 너무 추운 겨울 사이에서 잠깐의 휴식을 선사해 주는 가을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