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무게를 처음 알게 된 스무 살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2001년 수능은 만점자가 쏟아져 나온 ‘물수능’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 유례없이 어려웠던 2002년 수능은 내 점수와 함께 스무 살의 계획을 통째로 무너뜨렸다.
만점자도 없었던 수능에서 내 점수는 곤두박질쳤고, 가고 싶던 대학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나는 K대 호텔경영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내 점수로는 택도 없었다. 할 수 없이 점수에 맞춰 국립대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국립대라 당시 입학금 포함 1학기 학비가 100만 원 정도여서 부모님이 상당히 좋아하셨다. 친척들도 학교에 잘 갔다며 축하해 주셨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학교도 아니고 호텔경영학과도 없어서 그런지 별로 기쁘지 않았다. 학부제 학교여서 인문학부로 입학했는데 나는 중어중문학과로 배정되었다. 2학년 때 전공선택을 하는데 그전에는 좋든 싫든 중국어를 배워야 했다.
원하는 학과에 가지 못하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전공을 공부하고 있자니 너무 하기 싫었다.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니 학과 생활도 재미없었다. 신입생이라 참여해야 하는 행사도 많았는데 하나도 가기 싫었다. 신입생 환영회조차 지루했다. 논어, 맹자를 배우는 교양도 정말 싫었고 전공 시간에 중국어 성조 배우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나는 하루빨리 이 학교를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휴학하고 다시 수능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허락해 주시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사고를 치기로 했다. 휴학 ¼선 마지막 날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휴학을 감행했다. 그때가 2002년 3월 말, 대학을 겨우 한 달 남짓 다녔을 때였다.
그 뒤 자취방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 수능 준비를 다시 하기 시작했다. 말도 없이 휴학해서 부모님이 무척 화를 내셨지만, 더 좋은 학교에 가고 싶어서 다시 공부하겠다고 하니 차츰 화가 누그러지셨다. 엄마가 수능 준비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해 주셨고, 4월부터 다시 수험생이 되었다. 정말 열심히 해서 이번에는 꼭 호텔경영학과에 가고 싶었다. 친구들과의 연락을 끊어가며 공부에 매진하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두 달 뒤 2002년 월드컵이 개막했다.
그해 6월, 온 나라가 월드컵의 열기로 들썩였다. 수험생인 나에게도 그 열기가 전달되었다. 몸은 공부하고 있었지만, 정신은 온통 축구에 사로잡혀 있었다. 월드컵 열기로 들썩였기 때문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해 괴로웠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있나 싶어 후회도 밀려왔지만, 반수는 내 선택이니 누구 탓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망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었다. 매일매일 코피가 터져라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11월에 수능을 치렀다. 이번엔 정말 자신 있었다. 하지만 하늘도 매정하시지. 이번에도 수능을 망쳤다. 반수는 왜 했을까. 차라리 학교를 다니며 월드컵이나 즐길 걸 그랬다.
망한 점수로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원래 학교에 복학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 학교로 다시 돌아가 중국어 성조를 배우고, 논어 맹자를 배우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나는 학교를 낮춰서라도 호텔경영학과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점수를 대폭 낮춰 원하는 학과가 있는 사립 대학교에 원서를 쓰기로 했다. 엄마, 아빠는 결사반대하시며 복학하지 않으면 등록금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나는 며칠 동안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원래 학교에 다니며 2학년 때 전공선택 그 전공을 공부할 것이냐, 새 학교에 가서 원하는 호텔 공부할 것이냐. 내 인생이 걸린 문제인 만큼, 나는 신중히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며칠의 고민 끝에 나는 국립대 자퇴서에 도장을 찍었다. 자퇴서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새 학교에서도 나는 호텔경영을 전공하지 못했다. 여기도 학부제라 입학 후 관광경영학과로 배정됐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적성에 잘 맞아 2학년 때 전공으로 결정했다. 학교생활도 정말 재미있었다. 1학년 때는 부 과대를, 2학년 때는 동아리 부회장을 할 정도로 학과 생활을 열심히 했다, 새로 사귄 친구들과도 정말 잘 맞아서 매일 학교에 가는 게 너무 재밌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학비를 지원하지 않기로 하셔서 장학금을 받아야 했다. 시험 기간엔 수험생처럼 공부하며 학점 관리를 했다. 다행히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즐거웠던 4년이 지나고 취업을 위해 원서를 쓸 시즌이 다가왔다.
취업을 위해 토익점수도 잘 받아두고 각종 자격증을 따고, 공들여서 자기소개서를 썼다. 학점도 좋았다. 하지만 학교 간판이 영 형편없어서인지 전공 관련이 아닌 기업들은 번번이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하긴 나라도 우리 학교 학생보단 더 좋은 학교 학생을 뽑을 것 같았다. 입사서류에 학교 이름을 쓸 때마다 4년 전에 괜히 학교를 옮겼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4년 동안 학교 다니면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취업 시즌이 되니 현실의 높은 벽을 넘을 수 없어, 그때 부모님 말씀을 들어 학교를 옮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선택한 일이고 무를 수는 없었다. 그 선택의 책임은 오롯이 내가 져야 했다.
반수는 망쳤지만 나는 내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수의 결과로 번듯한 학교 간판을 포기한 대신 정말 재미있었던 4년의 대학 생활과 소중한 친구들을 얻었다. 대학 친구들은 졸업한 지 20년 가까이 되는 지금도 계속 연락하며 만난다. 인생의 소중한 친구를 얻은 것만으로도 학교 옮긴 것은 성공한 셈이다. 취업 시즌에 반수를 잠깐 후회하긴 했지만, 후회보다는 만족이 더 크다. 다시 시간을 돌린대도 나는 반수와 지금 학교를 선택할 것이다.
20여 년 전, 갓 스무 살이 된 나는 인생의 큰 선택 하나를 내 마음대로 결정했다. 그 선택은 실패로 보였지만, 나를 나로 만드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배웠고, 그 이후로 어떤 결정을 할 때든 쉽게 넘기지 않게 되었다.
인생은 거창한 한 번의 결정이 아니라, 매 순간의 선택이 쌓여 만들어진다. 그 선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는 앞으로도 흔들리더라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하며 나만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