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학생의 배움의 즐거움
늦까이 프리랜서 강사로서 나는 여러 가지 일을 한다.
강의를 하기도 하고 책도 쓰고 개인 컨설팅도 하면서 프리랜서로서 내가 하는 일은 늘어나기도 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그중 지금까지 거의 6년 가까이 꾸준히 하고 있는 일중 하나인 서울 자유시민대학 학습매니저 일은
내가 배우고 도전받는 일중 하나이다.
그래서 애정을 갖고 하다 보니 지금까지 긴 시간 동안 해온 거라 생각한다.
서울 자유시민대학 학습매니저란
서울시에서 각 대학에 개설하는 시민대상 인문학 강좌 개설과정에
강좌 전반적인 진행을 운영하고 진행하는 일을 한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많은 교수님들과 수강생들 그리고 학교 관계자들과 자주 의사소통을 하고
네트워크를 가지게 된다.
그중에서 잊을 수 없는 수강생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아직도 눈에 선한 아주 특별한 수강생
한 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분의 연세는 무려 92세이시다.
그 연세에 심지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오신다. 어느 날은 연세대, 어느 날은 이화여대,
가까운 대학에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은 내용이나 배우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어디든 오신다.
오실 때마다 매번 바뀌는 둥글고 우아한 챙이 있는 모자를 쓰시고 오시는데 멀리서도 보인다.
옷은 그 어디에서도 한 번도 보지 않은 독특하고 개성 있는 옷을 입고 오시는데 너무도 패셔너블하여
한 번은 내가 여쭤보았다.
"선생님 이렇게 아름다운 옷은 어디서 사시는지 저도 좀 알려주세요"
" 이 옷은 어디 가도 못 살 거예요. 내가 다 만들어서 입는 옷이거든"
나는 순간 "정말요" 어쩜 이렇게 고운 옷을 직접 만드셨다고요? 정말 대단하세요"
나는 잠시 입을 다물지를 못했다.
그냥 집에서 만드는 옷이라고 믿기기엔 너무 전문적인 수준의 옷이었다.
교수님이든 다른 수강생이든 그 연세에 충분히 말씀을 나려 놓으셔도 되는데도
그 선생님은 늘 상대방에게 경어를 사용하신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주셔서"라고 항상 감사 말씀을 잊지 않으신다.
그분이 혹시라도 수업에 안 오시는 날에는 나도 모르게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다른 학교의
매니저님들께 안부를 물어보면 다른 대학에 오셨다고 대답을 해주는데 그제야 안심이 된다.
혹시라도 감기라도 걸리셨는지 다른 편찮은 일이 있으신지 가끔 걱정이 되곤 한다.
내가 담당하고 있던 학교의 시민대학 과정이 끝나는 날 그 선생님께서 세상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나에게 다가오셨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요. 내가 늦게 지각하는데도 항상 잘 알려줘서 고마웠어요"
"이거 내가 만든 부채인데 더운 여름에 한번 사용해봐요 " 라며 부채 하나를 건네주셨다.
부채에는 아담한 산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허공을 날아가는 아주 운치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선생님 이렇게 귀한 것을 선물로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여름에 선생님 생각하면서 잘 쓸게요"
나는 가습 뭉클함을 느끼면서 그 선생님의 따뜻한 손을 한동안 잡고 놓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촉촉하게 물기가 차오르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이런 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크나큰 용기를 갖게 된다.
그리고 내가 힘들거나 슬럼프에 잠시 빠져 있을 때에는 뭔가 부끄러워지고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샘솟는 것을 느낀다.
젊은 시절 취업을 위해서 대학에 가야 하니까 아니면 점수 때문에 어떤 과목을 수강해야 하니까 라는
외적인 이유가 아니라 내가 정말 배우는 것이 재미있고 인문학이 너무 좋아서 책을 찾아보고
자료를 읽게 되는 그런 배움의 동기를 지금 아니면 언제 가져볼 수 있을까?
지금 나는 인생의 가장 정 가운데에 서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을지 내가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갈 생각을 할지 결정할 수 있는
인생의 가장 정 가운데 중심에 나는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