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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리 Nov 25. 2024

가을이 일기 13

매일 새벽, 뒷산을 산책하는 시골 사는 웰피츠 일기

길 멍     


인간들이 캠핑하러 가서 ‘불 멍’을 하고 저기 호수 앞에 가서는 ‘물 멍’도 하고 또 작은 집사는 방구석에서 하는 ‘구름 멍’이 좋다고 한다.

콩엄마와 나는 ‘길 멍’을 좋아한다.


마당에 우리 아지트가 있다.

동네로 지나는 길이 보이는 차고 위가 우리 아지트다.

거기서 집 앞을 보면 오가는 인간들이 다 보이고 저 위에 우리가 날마다 가는 산책길도 보이고, 회장님 네, 토비가 사는 하얀 집, 고물상 집, 윗집 아랫집 동네 집들도 다 보인다.


앞 밭주인이 포클레인이랑 트럭 끌고 와서 일하는 것도 보이고 특히 우리 집 차가 주차를 잘하고 있는지도 보인다.

시골동네에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오는 택배 차에서 택배기사가 우리 집에 물건을 잘 배달하고 있는지도 감시할 수 있다.

특히 오늘처럼 사과가 오는 날이면 택배기사한테 비싼 금사과 상자를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고 신나게 짖어서 경고한다.


차고 위 마당 끝을 왔다 갔다. 하면 길 위와 아래를 모두 볼 수 있다.

인간들이 잘 안 다녀 심심하면 저 멀리 국도가 시원하게 뻗어있어 많은 차가 오가는데 그걸 보면 된다.

그 길은 주변에 많은 골프장이 있어 달려오는 인간들 차들이 많다는데 골프가 그렇게 재밌나?

빨리 골프 치고 싶어서 차로 쌩쌩 달리는 인간들도 대단하다.

콩이와 가을이의 아지트

집 앞길과 국도를 쳐다보다 보면 순간 멍해진다.

머~엉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르는 인간들이 지나가는데도 짖는 걸 깜박한다.

텃밭으로 달아난 고양이를 놓쳐서 억울한 가을이

로마의 정치가 카이사르 인가하는 사람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omnia viae Romam ducunt)라고 말했다 한다.

’길 멍‘을 하다 생각해 보니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니 저 길을 따라 자꾸자꾸 가다 보면 나도 로마에 갈 수 있겠다는 신나는 상상을 해본다.

그래

정했어.

나의 버킷리스트 1번.

로마 한번 가즈아~  


        

ai가 그려주는 가을이 마음_잔디밭에서 뛰어놀아 행복한 가을이 너 행복한 거 맞지?


ai가 들려주는 가을이 마음 - 길 끝을 바라보는 가을이가 사랑을 찾아 떠나고 싶은 것은 아닐까??




# 에필로그 

    

사랑하는 반려견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잔디밭이 있는 전원주택은 반려인들의 로망이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의 생각일 뿐이고 개 입장에서는 지켜야 할 집의 범위가 넓어져서 꼭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글을 읽고 생각에 잠긴다.

잔디마당과 울타리가 생기고 나서 드디어 바라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시원하게 뚫린 거실 통칭으로  ‘구름멍’을 하고 있노라면, 콩이와 가을이가 부리나케 자기들 아지트인 마당 끝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현관 안에 앉아 있다가도 집 밖의 소리를 어떻게 들었는지 빠르게 마당을 가로질러 내달리는 모습을 보고 나가 보면, 뒷산에 산책 가는 사람들, 윗집으로 마실 가는 동네 사람들, 그리고 택배차가 와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그렇게 달려 나가는 콩이와 가을이의 발자국이 길을 만들었다.

잔디가 눌린 자국이 길이 된 것이다.


둘은 오래도록 아지트에 앉아서 길 위와 아래를 바라보며 졸다 잠들기도 하고, 인기척에 간혹 짖기도 한다.

다른 개들이 지나가면 아주 맹렬하게 짖는다.     

밖이 잘 보이는 집구 조는 개를 사납게 만든다고 한다.

집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라고 하는데, 지나는 사람들을 보고 짖지 않아도 된다고 열심히 교육 중이다.

사회화가 잘된 콩이는 양호한 편이지만 쫄보 가을이가 더 많이 짖는다.


넓은 잔디밭에서 맘껏 뛰어놀기를 바라며 전원주택으로 이사까지 하는 견주의 희망과 상반된 결과에 아연하기도 하지만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대신 민폐가 되지 않도록 더 교육해야 한다.

콩이와 가을이가 인적 드문 시골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햇살아래 졸고 있는 모습은 평화로워 보인다.

마치 ‘길 멍’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저 길을 따라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어이없는 감정이입을 해본다.

이름을 부르면 동시에 얼굴을 돌리고 쳐다보는 모습도 귀엽기 짝이 없다.


그러다가 파리와 나비를 잡겠다고 폴짝폴짝 뛰기도 하고 2년 전 찾아와 밥을 주고 있는 여섯 마리 길냥이를 텃밭 쪽으로 쫓아내기도 한다.

텃밭 쪽으로 난 울타리로 고양이들은 쏘옥 빠져나가버리고 가을이는 분에 못 이겨 씩씩대고 있지만 갑자기 고양이가 돌아서서 하악질을 하면 화들짝 놀라 도망가는 겁쟁이다.     

전력질주로 마당을 뛰며 놀기도 하고 공을 던져주고 가져오라고 하면  개르신인 콩이는 귀찮아하며 외면해 버리고 욕심 많고 소유욕이 남다른 가을이는 얼른 주워다 꽃밭에 올라가 흙을 파고 숨긴다. 

잔디 위에서 현란한 코기댄스도 추고 겨울이면 눈 위를 뒹구는 모습은 기쁨의 표현이라 생각하는 것이 나만의 욕심은 아니길 바란다.

매일 새벽 산책도 하지만 활동량이 많은 웰시코기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실내에서 생활하는 것보다 마당에서 뛰고 달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영국 웨일스의 넓은 들판에서 소와 양을 몰던 콩이의 조상들을 생각하면 이 마당도 좁을 것이다.  

   

의학, 심리학, 사회학, 정치학, 유전학을 통합하여 인간관계의 비밀을 연구한 하버드대학교의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와 제임스 파울러는 ‘행복은 전염된다.’라는 책에서 친구가 행복하면 내가 행복할 확률이 15% 상승했으며, 친구의 친구에 대한 행복 전염 효과는 10%,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행복할 확산 효과는 6%라고 쓰고 있다.     


행복한 견주 옆에서 개도 행복할 것이라 믿고 싶다.

늘 웃는 얼굴의 가을이를 보면서 가을이가 행복하다고 믿고 있지만 얼마나 행복한지 물어보고 싶다.


내가 여기서 이걸 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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