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2025년 10월 12일 일요일
[녹] 연중 제28주일(군인 주일)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이며 군인 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현세의 생명과 영원한 생명의 샘이시니, 육신의 건강만을 찾지 맙시다. 이 거룩한 날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와 믿음을 주신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며,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끊임없이 구원하심을 깨닫고, 그 구원의 증인이 되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입당송 시편 130(129),3-4
주님, 당신이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님,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이스라엘의 하느님, 당신은 용서하는 분이시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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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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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9
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1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16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18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19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사십 년 가까운 신앙생활을 돌아보며, 식어가는 믿음을 다시 불태워 보고 싶어 묵상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는 일이 오히려 내 신앙을 포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묵상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 또한 어쩌면 구차한 변명일 것입니다.
올해 들어 이상하리만치 감사한 마음이 자주 들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은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버티며 억지로 감사를 고백했었지요.
‘이것도 감당할 만한 십자가로 주셨으리라 믿고 감사합니다.’라고 입으로는 말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왜 하필 저입니까?’ 하는 원망이 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조금 다릅니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감사가 흘러나옵니다.
나병에서 나음을 입고 예수님께 되돌아온 단 한 사람처럼, 나도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른’ 아홉 사람 중 하나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다급할 때는 하느님, 부처님, 어떤 신이든 찾다가도 형편이 나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저 또한 그 부끄러운 아홉 중 하나일 것입니다.
매일 새벽마다 언니와 사랑하는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합니다. 그 시간, 바람과 새소리와 풀잎의 향기 속에서 저절로 감사의 마음이 올라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 자연이 주는 위로, 그리고 가족이 함께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감사합니다.
건강이 허락된 덕분에 늦게 시작한 스쿠버 다이빙을 통해서도 깊은 치유를 경험합니다.
바닷속에서는 성 프란치스코가 어둠 속에서 불렀던 ‘태양의 찬가’가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그 찬란한 환희의 기쁨이 몸과 마음을 가득 채웁니다.
바다는 제 삶을 바꾸었습니다. 그 평화와 고요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의 숨결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pOu0hhetYw
지난 북중 국경 성지순례 때 들었던 동행한 지도 신부님의 이야기가 잊히지 않습니다.
민족화해위원회에서 일하시는 신부님께서 하나원에서 미사를 집전하던 중, 북한에서 탈북한 80대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답니다.
“여기가 정말 성당이 맞습니까?” 여러 번 확인하시던 할머니는, 미사가 시작되자 “이건 성당이 아닙니다!”라고 소리치며 나가려 하셨습니다.
신부님이 이유를 묻자, “미사는 벽을 보고 드려야 하는데, 신부님이 사람들을 보고 하시니 이건 미사가 아니오.” 하셨답니다.
알고 보니 그분이 기억하는 미사는 6.25 이전, 사제가 제단 뒤편 벽을 향해 드리던 옛 전례 방식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변화를 설명드렸고, 할머니는 그 후로 두 번 더 미사전례와 기도문을 이유로 나가려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구교집안에 어린 시절 세례를 받은 독실한 신자였으나,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가족이 ‘반동분자’로 몰려 추방되고 숙청당하고, 혼자 살아남은 고아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생을 많이 하다가 어린 나이로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포악한 사람이라 눈물 마를 틈이 없이 살다가 어느 날 이불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기억나는 기도문은 주기도문과 성모송뿐이었지만, 소리도 내지못하고 마음속으로만 기도를 올리며 평생 하느님께 매달리며 살았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그분이 바로 ‘북한의 지하교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건물이 사라져도, 한 사람의 믿음이 곧 교회인데 북한에도 수많은 교회가 있다는 기적을 발견했다면서 감격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 명 한 명의 북한의 지하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소리 내어 기도할 수 있고, 미사를 마음 편히 드릴 수 있는 지금의 은총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측이심(如厠二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뜻이지요. 다급할 땐 간절히 기도하다가도, 일이 해결되면 금세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 바로 저의 신앙이 그러했습니다. 힘들 때는 주님께 매달렸지만, 평안해지니 신앙이 많이 식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깨닫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고통의 때만이 아니라, 평화의 때에도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기 위해 돌아온 그 한 사람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