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꽃
과꽃
감나무 가지 끝에
구름 한 장 걸어놓고
과꽃이 피었다.
텅 빈 마당에
하늘이 내려와 앉으니,
누나가 남겨둔 편지 같은
과꽃이 피었다.
그땐 몰랐지
그 여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세상이 바뀌고
사람은 떠나고
잊은 줄 알았으나
끝내 잊지 못한
고향의 바람 같은 과꽃이 피었다.
이제 나는 그 자리에 없으나,
꽃은 나를 기억하더라.
피고 지는 것을
잊고 살았는데
꽃은 잊지 않았더라.
바람이 심고
시간이 기른 꽃,
나만 늙어가는 것을
꽃은 알고 있더라.
고향마당 한가운데 서서 웃던,
소박한 누나 같은 얼굴로
과꽃이 피었다.
과꽃을 보면
누구나 흥얼거리던 노래,
그 노래를 부르며
떠나온 고향 바람을 만났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너무 오래 가슴에 묻혀
화석이 된 추억 한 조각,
자줒빛 물들여 감춘 상처 같은
과꽃이 피었다.
과꽃 한송이
조심스레 꺾어 책갈피에 눌러두었는데
책도 꽃도
찾을 길 없고,
하늘은 먼 길의 주소가 되어
보랏빛 꽃잎 위에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흔들리고, 지고, 다시 피는
추억은
지는 법이 없다.
잊지 못한 것은
꽃이 아니라,
바로 너였다.
꽃말
믿음직한 사랑, 추억
이름
국화 + 꽃의 합성어로 국화를 닮은 식물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추정.
한자 이름은 고의(苦薏). 당국(唐菊), 당국화. 추금(秋錦). 취국(翠菊). 추모란(秋牡丹) 등
과꽃에 대하여
과꽃(영어: Callistephus, China aster)은 국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다. 원래 한반도 북부와 만주 동남부 지방에 자생하던 풀이었으나, 18세기 무렵 프랑스·영국 등지로 건너가 프랑스·독일·영국 등지에서 현재의 과꽃으로 개량되었다.
여름에 자줏빛·붉은빛·남빛·흰빛 등의 꽃이 피고 관상용이며 원예 품종이 많으며 함남·함북 등지에 야생종이 있다.
일본에서 조선국(朝鮮菊) 또는 대명국(大明菊)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이 다시 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요즈음 유럽으로부터 개량된 과꽃이 들어와 아스터라는 이름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둘 다 국화과(Asteraceae)의 꽃이며, 아스터는 더 큰 범주의 국화과 꽃들이고, 과꽃은 그중 한국에서 익숙한 특정 종을 지칭한다.
과꽃 전설
옛날, 백두산 아래 작은 마을에 추금이라는 젊은 과부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 집 앞마당에는 죽은 남편이 정성껏 가꾸던 하얀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추금은 그 꽃을 바라보며, 남편 닮은 아들만 의지해 살았는데, 추금의 미모가 워낙 고와서 마을의 중매쟁이들이 부잣집 첩 자리를 권했다.
살림이 어려운 터라 마음이 흔들릴 법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하얀 꽃들이 하나둘 자줏빛으로 변하더니, 죽은 남편이 환생해 돌아왔다.
추금은 다시 과족과 함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백두산에 큰 가뭄이 들어 농사를 못 짓게 되자, 식구들은 자줏빛 꽃 몇 포기를 싸들고 만주로 이주를 했다.
겨우 자리 잡고 살던 어느 해, 장성한 아들이 뒷산에 나무 하러 갔다가 독사에 물려 죽고 말았다.
부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아들을 꽃밭에 묻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세월이 흘러 추금은 다시 남편과 의지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벼랑 끝 꽃을 꺾어주려다 그만 떨어져 죽고 말았다.
추금은 놀라 쓰러졌다가, 깨어보니 이 모든 게 꿈이었다.
그제야 마음을 다잡고, 아들을 위해 열심히 살기로 했지만 아름다운 추금의 소문이 만주까지 퍼졌다.
만주의 오랑캐 두목이 첩으로 삼겠다며 추금을 잡아갔다.
하지만 추금은 완강히 거절했다.
그 사이 무과에 급제한 아들이 병사를 이끌고 달려와 어머니를 구해냈다.
신기하게도 그 두목의 집은 추금이 꿈에서 살던 바로 그 집이었고, 마당에는 꿈속에서 보던 자줏빛 과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추금과 아들은 그 꽃을 캐어 고향으로 돌아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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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과꽃〉 - 어효선 작사, 권길상 작곡 (1953)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과꽃 예쁜 꽃을 들여다보면
꽃 속에 누나얼굴 떠오릅니다.
시집간 지 온 삼 년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나요
〈과꽃〉동요는 1950년대 전쟁 후의 상실과 기다림을 어린이의 언어로 담아낸 동요로, 작사가 어효선과 작곡가 권길상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1950년대 초반, 한국전쟁 직후 황폐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시집간 지 온 삼 년 소식이 없는 누나’라는 가사는 단순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만이 아니라, 전쟁 이후 가족과 생이별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로 시작되는 〈꽃밭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사가 어효선과 작곡가 권길상이 함께 만든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동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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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 완당(추사) 김정희가 지은 과꽃 -秋牡丹(추목단) 한시
秋牡丹(추모란)
紅紫年年迭變更(홍색 자색 바꿔가며 해마다 꽃이 피니)
牡丹之葉菊之英(모란의 잎에 국화의 꽃봉오리일세)
秋來富貴無如汝(가을 오면 너처럼 부귀로운 것이 또 있으리)
橫冒東籬處士名(동쪽 울타리 처사라는 그 이름은 아무래도 맞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