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두만강가에서

by 보리

두만강가에서



두만강가에 서면

돌아가지 못한 꿈들이

통곡의 시간이

발목을 적신다.


간도를 흐르는 핏줄

강을 건너다 지워진

무수한 이름들이

물빛아래 흔들리고


누군가의 아들이

돌아오지 못한 이름으로 묻힌 자리

여기서 부는 바람이

저기서 눈을 감는다.

닿을 듯 가까운 강 건너

흐린 그림자 위로

누군가의 눈물을 건너온

노을이 쏟아진다.


저기

철조망 너머에도

이 강을 바라보는 눈이 있을까

그 눈에도

핏빛 노을이 젖어 있을까






술 한잔 걸치신 아버지는

‘두 마 안~강 푸른 물에~’를 부르곤 하셨다.


두만강가에 서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1930년대 도문(圖們),

순회극단 ‘예원좌’가 머물던 여관에서

한 여인의 울음이 밤을 흔들었다 한다.

그녀는 만주 땅에서 항일투쟁을 벌이다

총살당한 남편을 기다리던,

기다림조차 끝내지 못한 여인이었다.


그 사연을 들은 작곡가 이시우는

민족의 한을 담아 노래를 지었다.

그 노래가 바로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이다.


두만강 물줄기는

조국을 잃고, 이름을 잃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눈물이자 유언이었다.


아직 연길에는 수많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후손인 조선족들이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조선족 가이드 동의하에 올린 영상입니디ㅡ.


3대 독자셨던 나의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징용을 피해 가족을 남겨두고 북간도로

홀로

떠나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건너셨을 두만강.

강을 넘을 때,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저 생존을 위한 절실함이었을까

아니면, 끝내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뒷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견딘 침묵이었을까.

두만강은 손 뻗으면 닿을 듯 좁은 강이다.


하지만 그 너머는 사진 한 장 찍기도 어려운 땅이다.

중국 감시원이 사방에 서 있고,

강 양편을 가로지르는 철조망은

분단의 실체이자, 민족의 상처로 보였다.


두만강 도문교에서,

한국 관광객들이 태극기를 펼쳤다는 이유로

이제는 다리 근처조차 접근이 금지되어 멀리서 바라봐야 했다.


누가 이 강 위에 선을 그었을까.

누가 흐르는 강물에

국적을, 이념과 정치적 폭력의 공포를 심었을까.


강을 건너다 붙잡힌 탈북자들이

도살장의 돼지처럼 갈고리로 찍어 끌고 갔다는 증언이 많다.


눈을, 쇄골을, 코를,

마구 찍어 끌고 갔다니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갈고리에 꿰인 채,

등 위에서 숯불을 지피는 고문. 전기고문 등 등

그 지옥 같은 현실은

유엔 인권이사회 보고서에 ‘신동혁 외 240인의 증언’으로 실려 있다.

그 광경이 너무 끔찍해 중국 쪽에서 항의해서

강을 건널 때까지는 못하게 했지만,

강을 건넌 순간 다시 갈고리로 찍어서 끌고 갔다고 한다.

그렇게 피로 물든 다리가 도문교였다.


두만강 건너에도

내가 선자리에도 핏빛 노을이 쏟아지고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이

울며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두만강은 여전히 눈물에 젖어있었다.


조선족 가이드 동의하에 올린 영상입니다.



눈물 젖은 두만강

- 이시우 작곡, 김정구 노래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나간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강물도 달밤이면 목메어 우는데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추억에 목메인 애달픈 하소연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임가신 강 언덕에 단풍이 물들고

눈물진 두만강에 밤새가 울면

떠나간 그 님이 보고 싶구나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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