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븐니 Aug 25. 2021

<명량>과 섬길 수 있는 리더십

이순신 장군의 기지와 리더십 l 칼날 같은카리스마는 이럴 때 쓰는 말

■키워드- 섬길 수 있는 리더십, 일일 지구 부지 외호, 명량해전.


일일 지구 부지 외호 l 이순신 무서운 줄 모르는, 왜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 '일일 지구 부지 외호'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수군통제사 이순신 무서운 줄 모르고 쳐들어오는 왜군에 대한 영화가 있다. <명량>이다. 정유재란 때에 이순신이 활약한 명량대첩을 그렸다. 대학시절, 이순신에 대한 연구를 즐겨하던 교수님이 떠오르면서 이 영화를 보고 가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아리 같은 우리 학생들에게 옛날 조선시대 역사 이야기를 '할아버지가 손자와 손녀를 챙기듯이' 다정하게 들려주신 그 교수님이 떠오르는 가을이다. 영화 <명량>은 이순신의 리더십과 지형적 특수성을 이용하여 본인보다 10배나 많은 적을 물리치는 한 많은 역사의 한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영화에서 선조는 이순신을 좋아할 리 없었다. 그의 공이 왕의 공이 될 수는 없으니까. 백성들은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더 존경했을 것이고, 선조는 그런 이순신이 달가울 리 없었을 것이다. (이순신이 1597년 선조에게 파직된 뒤 옥살이를 마치고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했을 때의 이순신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그래도 이순신은 나라의 재임명이 왔을 때 그 명을 거절하거나, 백성들을 외면하지 않는다. <명량>에서도 그 아들 이 회와의 대화에서 보면 그가 그 당시에 백성들을 아끼고, 나라를 위하는 마음이 어찌나 컸을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명량해전 전에 아들과 이순신의 대화 영화 속 대화 장면이다.


아들: 목숨까지 거두려고 했던 임금입니다.

설령 저 미력한 군사들로 전장에서 승리한들

임금은 반드시 아버님을 버릴 것입니다.

아버님은 왜 싸우시는 겁니까?

이순신: 의리다.

아들: 저토록 몰염치한 임금한테 말입니까?

이순신: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쫓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이 회: 임금이 아니고 말입니까?

이순신: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이 회: 그 백성은 자기 먹고살기에도 바쁠 텐데요.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l 지형적 특성을 바탕으로 많은 적군을 섬멸한 이순신

라고 더 이상의 전쟁 참여는 무리한 상황이라는 판단 하에 아버지를 만류를 한다. 명량해전은 울돌목을 끼고 적군의 몇백대가 되는 병력 앞에서 드는 두려움을 끌어안게 만드는 상황에서 진행된 해전이다. 만약, 울돌목이라는 해류가 빠르고 회오리바람처럼 돌아가는 지형의 특성을 잘 파악하지 않은 장군이 그 해전을 지휘했더라면, 아마 12척의 배는 12분 만에 적의 손아귀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달랐다. 전투가 이뤄질 지형적 특성을 살피고, 병사들의 두려움과 사기저하가 걱정되어 그 두려움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은 말한다. "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비겁하면 반드시 죽는다". 필사즉생 필생즉사다. (必死則生 必生則死) 그 최민식 배우의 눈빛 연기가 과연 칼날의 검처럼 날카로워 마치 이순신이 살아 돌아온 듯한 눈빛을 전해준다.


그리고 이내 걱정한다. 병사들에게 독버섯처럼 커져버린 두려움으로 전쟁에 나가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하게 될까봐 하는 장군으로서의 걱정과 염려. 하지만, 범과 같은 카리스마와 단단한 리더십 아래에 병사들은 그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가고 있었다. 다소, 휘황찬란한 왜군의 갑옷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끝까지 그들이 배 위에서 싸울 수 있었던 건 두려움이 압도할 수 있는 병사들의 사기를 용기로 진작시키고, 병사들에게 몸소 용기의 검이 되어준 이순신 장군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백성들과 병사들을 카리스마로 포용하고, 전쟁터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순신 장군의 정신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배 위의 멀미만큼이나 어지러운, 전쟁터의 공격에도 눈빛 하나 움직이지 않는 그의 단단한 정신력에 영화를 무언가에 압도당하면서 본 적은 처음인 것 같다.


1592 임진왜란 발발 이후, 이렇게 끊임없이 크고 작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 우리의 국토를 지킨 건 이렇게 의연한 장군들과 장수들, 그리고 백성들과 우리들의 협곡들이었다. 혹자는 이러한 전쟁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고도 말한다. 그 징후와 조짐을 잘 포착하여서 미리 막았을 면 좋았을 것이라고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전쟁의 씨앗을 구체적으로 포착하고 적극적으로 준비한 실질적 대책자들은 거의 없었다. 결국 조선의 문화를 존중하여 극진하게 조선통신사를 모시고, 우리의 문화를 존중하던 이들로부터 큰 공격을 받게 된 것을 생각해보면 역사적 힘의 강세는 항상 뒤죽박죽 섞여있어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바닷속 해류(바닷물의 흐름)들의 알력 다툼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영화 속에서 모처럼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나온 진정한 리더가 나와 오늘도 큰 역사적 영감을 얻으며 징비록의  내용을 차용하여 영화 리뷰를 마쳐보고자 한다.

<명량> 스틸컷

이순신이 다시 수군통제사에 부임했을 때 강력한 조선의 수군은 온데간데없고 칠천량 해전에서 도망쳐 나온 배설의 함대 12척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급기야 수군 폐지론까지 거론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수군이 무너지면 호남이 무너지고, 호남이 무너지면 조선이 무너진다는 논리의 상소를 올려 수군을 보전시키고 이후 명량해전에서 빛나는 전공을 세우게 된다.


명량해전은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전투로 평가받는다. 부족한 병력, 턱도 없이 모자란 선박과 물자, 사기는 떨어지고 공포에 시달리는 아군, 이 모두가 이순신을 괴롭히는 악재였다. 그러나 이순신은 명량해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다시 수군을 재건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명량 해전은 칠천량 전투의 패전으로 호남이 뚫리면서 다시 한양이 무너질 뻔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또 한 번 조선을 구해낸, 이순신의 영웅적 활약상이 농축된 전투라고 할 수 있다. 명량 해협에서 이순신은 아군 12척의 배로 왜군의 배 120여 척을 섬멸하는 데 성공했고, 이 전투의 승리로 다시 왜군을 교착 상태에 빠뜨려 더 이상의 진군을 막아 낼 수 있었다.


p.260. 징비록, 류성룡 저 (오세진, 신재훈 박희정 역해), 홍익 출판 미디어 그룹. 2020.



이전 13화 <클래식>과 아련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