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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Jan 22. 2024

출판사 편집자가 빨간펜 선생님이길 바랐다

내 원고에 밑줄 쫙쫙 그어 줄 그분

책을 출간하는 과정 중 가장 기대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편집자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편집자란 무엇인가. 내 글을 객관적으로 봐주며 피드백을 해주어 그것이 좀 더 기획에 맞게, 사람들에게 팔리게끔 만들어주는 존재가 아니던가?! 출판사에서 그토록 기획 출간을 해보고 싶었던 많은 이유 중 딱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이 부분이다. 


늘 피드백에 목말라 있었다. 응원과 위로의 댓글 말고 전문적인 시각으로 날카롭게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찾는 건 매우 어렵다. 브런치나 블로그 등에서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당에, 시간과 공을 들여 나에게 그런 말을 해줄 사람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보면 되는 게 맞았다. 


글쓰기 유료강좌를 찾아다닌 첫 번째 목적이 바로 그거였다. 쓰는 법도 배우지만 매번 주어진 과제를 제출하면 어떤 식으로든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칼럼 쓰기 수업을 들을 당시 선생님이 "여기엔 문맥상 '그리고'라는 접속사 대신에 '그러므로'가 나을 것 같습니다"라고 해준 한마디도 내겐 소중한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내 책 담당 편집자들을 만난다? 야호! 그들은 좋으나 싫으나 내 원고를 몽땅 읽고 피드백을 해줄 것 아닌가! 그런 황송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기대감이 있었기에 출간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원고 퇴고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이후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편집자가 있음을 직접 ∙간접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좋고 나쁨의 차이는 아니다. 나와 스타일이 잘 맞거나 덜 맞는 편집자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출판사의 성향이란 게 사실은 편집자의 성향에 따라 좌우되기도 하는 것 같다는 나름의 결론을 얻기도 했다. 이 글에서는 직접 겪은 편집자들과의 만남을 풀어 보려 한다. 간접 경험은 말미에 다시 소개하겠다.  


첫 번째 편집자 - 작가의 글을 존중하다


어떤 작가는 자기 글에서 토시 하나 수정하면 화를 낸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뭐든 다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2년 전 처음 만난 편집자는 기대와는 달랐다. 내 원고 분량이 적다고 추가로 더 쓸 것을 요구하긴 했으나 원고 자체에 대해서는 다른 말을 해주지 않았다. 끝까지 그랬다. 그때는 책 출간이 처음이라 의기양양했던 것도 같다. 아! 원고가 퍼펙트하구나!  


하지만 아쉬움이 크기도 했다. 배울 만발의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가르침을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내 글이 퍼펙트하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작가의 원고를 존중해서 그런가 보다 하는 마음을 안고 3차까지 교정을 보았다. 수정사항이나 책의 디자인이나 전부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편집자가 의견을 안 주니 내가 더 꼼꼼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임감이 절로 높아졌다. 그래서 (토가 나올 만큼) 원고를 읽고 또 읽으며 교정을 보았다. 그런 경험을 해준 출판사에게 깊이 감사한다.  


두 번째 편집자 - 빨간펜 선생님을 만나다  


이번 밀리의 서재 출간 때 만난 편집자와의 만남은 내가 꿈에 그리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국과 영국의 거리가 있기에 직접 만날 수는 없었지만 원고가 담긴 한글 파일을 주고받으며 내 글에 대한 편집자의 의견을 드! 디! 어! 받을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할 때엔 사보와 잡지를 만들고 기업 홍보팀에서 보도자료를 쓰면서 나도 교정 교열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 다져진 실력을 바탕으로 '주어와 서술어가 맞지 않는 비문 따위는 쓰지 않는 작가다!'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웬걸, 우리의 빨간펜 편집자님은 여기저기 숨어 있는 비문을 귀신 같이 찾아내 수정을 요구했다. 어디 그뿐이랴.  


작가님, 이 단어가 무슨 뜻이에요? 이 문장은 근거가 부족해 보이니 추가로 써주세요, 1부의 끝을 맺는 방식이 너무 생뚱맞아요, 여기 있는 내용을 이쪽으로 끌어당기면 어떨까요? 두 문장을 하나로 연결하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요, 재미있게 읽은 꼭지는 색깔로 칠해 놨어요 등등. 


얼굴도 모른 채 (이름은 알고) 문서로 만난 편집자 덕분에 교정하는 동안 매우 행복했다. 자기가 쓴 글에 대한 사랑에 빠져 미쳐 보지 못한 것을 편집자는 잡아내 주었고 그 의견을 반영하고 퇴고하다 보니 더 좋은 원고가 내 손에 들려 있었다. 제대로 배운 느낌이 팍팍 들었다. 물론 내 의도가 확실했던 부분에서는 수정하지 않고 글을 고수하기도 했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란 


나는 초보작가라 빨간펜 선생님 역할을 해줄 편집자를 원했지만 그렇다고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가 학생과 선생의 관계는 아니다. 그들은 한 팀이 되어 보다 좋은 책이 세상에 태어나길 원하는 마음으로 협업을 하는 관계다. 그 과정에 다양한 성향의 편집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출간 경험이 있는 지인 작가들에게 듣기도 했다. 사람의 성향이 모두 다르듯 짐작컨대 100명의 편집자가 있다면 100가지의 성향이 있지 않을까 한다.  


편집자를 보고 출간할 출판사를 고르는 것은 아니기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는 운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러니 초보작가들은 어떤 편집자라도 만날 기회를 얻어 경험을 쌓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정아은 작가가 쓴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라는 책에서는 뒷부분에 나보다 훨씬 풍부한 편집자를 만난 경험이 실려 있다. 작가가 소설가인 덕에 글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맛깔나고 재미있다. 더구나 작가의 솔직한 경험뿐 아니라 각종 글쓰기 방법론까지 담겨 있기에 한번 읽어 보시라고 적극 추천한다. 


다음 글에서는 원고의 가제가 어떤 방식으로 수정되어 책 제목이 결정되는지 과정을 소개하며 과연 제목은 어찌 잡아야 옳은지 함께 연구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머리 터지게 어렵지만 작가라면 극복해야 할 제목 짓기의 세계! 수요일에 만나자. 




그리하여 이번에 출간한 『이 많은 짐은 다 어디서 왔을까』는 지난 1년간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겪은 좌충우돌의 경험담과 우리 시대의 소유와 소비에 대해 깨달은 점을 기록한 책입니다. 아래 링크를 타고 들어가면 책 소개를 바로 보실 수 있습니다. ^^ 


https://millie.page.link/Hxrk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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