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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Aug 30. 2023

바바리맨에 대한 진담

콩트

 한 남자와 마주쳤다. 아무도 없는 일방통행의 골목길이었다. 남자는 내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타난 것이다. 남자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마치 슬로비디오처럼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약 50미터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순간 내가 본 것은 단순히 수컷이라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남자는 권총, 물론 권총이 있을 위치는 아니었지만 한 중간에 뭔가를 장착하고 있었다. 그것은 타인에겐 함부로 노출시켜서는, 특정한 공간을 제외하고는 절대 드러내어선 안 되는 '성기'였다.  남자가 검은색의 점퍼와 검은색의 바지를 입었다는 것을 안 것도 바로 그 중간에 위치한 그것 때문이었다. 권총에서 이제 고구마처럼도 보이는 그것은 중력의 법칙에 따라 아래를 향해 매달려 있었는데 점점 남자와의 거리가 좁혀지자 그것은 상품중품하품 중 하품의 고구마가 아니라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변했다. 그 힘 없는 남경 아래 고환조차 보이지 않았다. 눈부신 봄날의 하오에 그것이 목욕탕이 아닌 , 만개한 봄꽃으로 흐드러진 주택가 골목에 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때 유튜브를 듣고 있었고 참으로 우습게도 이 날의 주제가 바로 남자의 성기에 대한 것이었다. 남자의 성기에 대한 낭만적 접근은 외설적 수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한 여자 출연자가 ‘크기나 부피가 아니라 진입할 때의 느낌이 중요하다.’ 라는 이 묵직한 한 방을 날리고 있었던 중이라 남자의 그것은 청각에서 시각으로 절묘하게 변화하였던 것이다. 

   나는 변색렌즈 안경을 통해 보이는 남자의 하초에 집중하였고 그러자 남자가  돌연 ‘나 잡아봐라’ 하듯 점퍼로 그것을 가렸는데 그것도 잠시, 남자는 다시 그것을 마치 자동차의 방향지시등처럼 드러냈다가 감추고 드러냈다가 감추곤 하였다.  몇 번을 하였을까, 이제 그것을 점퍼로 가릴 생각이 전혀 없는지 쭉 그것을 드러낸 채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나와 남자는 20미터쯤 떨어진 거리에 있게 되었고 그 거리로 인해 검은색의 마스크를 쓴 남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남자는 혹여 내가 시각장애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 듯 내 눈을 응시하였는데 이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반응과 똑같았다. 사람들은 자신은 드러난 채 상대방의 표정은 간파할 수 없는 이 변색렌즈 안경에 대해  ‘재수 없어.’ 하는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남자 또한 양미간을 찌푸리며 내 눈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남자는 내가 시각장애인이 아님을 간파한 듯 그것을 전면에 드러내며 다가왔다. 성기가 얼굴로 변한 것이다. 남자는 이제 완전히 보여주고 싶어 하는 자가 되어 그것을 디밀었고 그렇게 되자 나는 ‘안 본 눈 삽니다.’라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불현듯 어머니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주 오래전, 나를 업은 채 영화관에 갔던 어머니는 칭얼대는 나 때문에 앉지도 못한 채 서서 영화를 보는 중에 당한 일을 마치 영웅담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 글쎄 포대기에 싸인 너의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내 손에 뭔가 뜨끈뜨끈한 것이 툭 담기지 않겠냐?’ 컴컴한 영화관 안에서 그 남자의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자지가 있는 것은 수컷밖에 더 있겠냐?’ 어머니는 그 자지 때문에 불후의 명작인 ‘미워도 다시 한번’의 결말을 온전히 보지 못하고 나온 것이 두고두고 한이라고 했고  ‘아마 그런 놈은 쌀뜨물로 만들어진 것일 거다 암.’ 이라며 생명의 물리적 법칙을 왜곡하기까지 하였다. 

   남자의 성기에 대한 충격, 나는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가 겪었을지도 모르는 이 집단적 트라우마에 대한 공감이 단전에서부터 올라왔다. 뒤이어 또 하나의 사건도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동네 약수터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던 한 사내의 혓바닥에 대한 것이다. 사내는 줄줄이 달려있는 수도꼭지 중 한 곳에 입술을 흡입한 채 물을 마시고 있었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지 마시오.’ 하는 경고문을 무색하게 하는 그 사내의 행위에 나는 ‘헐. 입을 대면 안 되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물통에 물을 받고 있는 거 안 보여요?’ 하고 말했다.  그 사내는 그러거나 말거나 내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여전히 입을 떼지 않고 물을 마시고는 내 쪽으로 바싹 다가오며 말했다. ‘아니 아줌마, 내가 뭐 수도꼭지를 빨았소? 그냥 입만 대었는데 뭔 잔소리야,  잔소리가.’ 하고는 운동기구가 있는 쪽으로 가버렸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눈짓을 교환하며 마스크 사이로 웃음을 참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사내의 입천장과 누런 이 똥,  시커멓게 썩어가고 있는 치아, 그리고 꼭 성기처럼 달려있는 시든 혓바닥, 그리고 ‘빨지도 않고 마셨는데 왜 지랄이야.’ 하고 말했던 그때의 사내가 떠올랐고  저 사내도 ‘내가 삽입을 했나? 그냥 꺼내놓기만 했을 뿐.’ 하며 희희낙락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고의적으로 성기를 끄집어내어 그것을 의도치 않게 보게 되고 마는 여자의 비명을 자신의 쾌감의 불쏘시개로 쓰고자 불철주야 골목을 배회하는 이 남자를 어떻게 손을 봐주어야 하나, 그 짧은 시간 속에 생각했다. 물론 오래전부터 성도착증인 바바리맨에 대한 실태를 알고 있었고 이들이 여성만을 상대로 오로지 발기라는 , 자신의 존재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행위임을 잘 알고 있었다. 아울러 그에 대한 대처법도 익히 알고 있었다. 당당하게 대응하기, 투명인간처럼 무시하기, ‘니 그러니까 좋나?’ 하고 쾌감의 욕구를 일시에 무너뜨리는 방법 등등. 나는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하든지 아니면 다른 창의적인 방법을 착안하면 된다. 

  내가 선택한 것은 창의적인 방법이었다. 바로 계급적 대립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갑을관계에서 ‘갑’의 위치를 선점하는 것, 그러니까 그에게서 ‘갑’의 지위를 빼앗는 것이다. 쉽게 말해 보여주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빼앗는 것이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과거엔 권력자가 보이는 자, 민중은 보는 자였다면 지금은 권력자가 보는 자, 민중은 보이는 자이다.’ 하는 문장이 떠올랐다. 

   난 관찰자가 되기로 하였다. 비명을 지르거나 달아나는 ‘을’이 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보이는 쪽인 ‘을’로만 살아왔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남자가 힐끗 나를 바라보더니 나를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남자는 내가 처음 들어섰던 모퉁이 근처에까지 도달했다. 나는 카메라의 동영상 모드로 찍어댔다. 마침내 골목 입구까지 달아난 남자가 뒤돌아서서 소리쳤다. ‘에이, 이 나쁜 년아.’ 나는 그 소리치는 남자의 얼굴과 목소리까지 찍었다. 그러자 남자는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골목이 끝나는 자리에 cctv가 달려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제 경찰서에 신고할까, 말까를 선택하기만 하면 되었다. 경찰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뭐, 피해도 달리 없는데 그냥 참으시죠.’  물론 뒷말은 삼키고 말이다.  '뭐, 삽입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 나는 헛웃음이 났다. 이제 삽입이 갑이 되는 시대는 지났어. 흡입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시대라고. 삽입과 흡입이 균형을 이루는 시대를 위하여 나는 고군분투할 거야. 나는 이런 신바람 나는 상상을 하며 경찰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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