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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냐 Apr 03. 2023

러시아인 가정집에서 새해 명절 보내기

한국의 설날처럼 큰 명절인 새해 연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즐길까?

새해는 러시아인들에게 어떤 연휴인고

이번 포스팅은 2023년을 러시아식으로 맞이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러시아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 아닌 1월 7일이다. 러시아 정교회는 율리우스력을 따르기 때문에 서양 크리스마스와는 다른 날을 크리스마스로 정하여 성대하게 맞이한다.


러시아인의 대부분이 러시아 정교회 신자이기 때문에, 이 시즌은 러시아인들에게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다. 그렇기에 이 기간은, 마치 우리나라의 설날처럼 큰 명절이고 가운데 설날 주변으로 하루씩 쉬듯, 1월 7일로 인한 휴일이 다다닥 붙어있다. 1월 1일부터 7일까지 쉬는, 외노자(외국인노동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효자 명절이다.




집에는 2022년 12월 31일에 초대받아, 2023년 1월 1일로 넘어가는 저녁을 함께 보내기로 하였다. 감사하게도 각종 음식을 하고 날 기다려 주셔서, 아주 풍족하게 먹었다. 한국이나 러시아나, 연세가 있으신 가정주부들은 다 똑같은 점은.. 절대 배고프게 가만 두지 않으신다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새해 음식은 뭐야?

전형적인 러시아 가정식 (올리브, 할라제츠 등과 같은 명절 음식을 볼 수 있다.)


차려주신 밥상이다. 왼쪽에 있는 건 러시아인들이 즐겨 먹는 샐러드 중 하나인 마요네즈 샐러드와 샌드위치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새해 명절에 꼭 올라간다는 올리브와, селёдка под шубой (셀료뜨까 뽓 슈바이라고 읽음.) 그리고 샴페인, холодец (할라제츠라고 읽음.) 등을 볼 수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1. 마요네즈 샐러드 - 그냥 배추, 오이, 맛살, 마요네즈로 만든 샐러드. 상상 가능한 맛이다.


2. 해산물 샌드위치(?) - 빵 위에 크림치즈를 올리고 그 위에 연어 혹은 생선알을 올린 음식. 비린 맛을 안 좋아한다면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나는 유독 비린 맛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이상하게.. 묘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었다. 우유 살짝 넣은 아메리카노와 먹어보라고 하셨는데, 그러니 비린 맛도 안 느껴지고 맛있게 먹을 수가 있었다.


3. 올리브 - 새해 명절 때는 올리브, 귤 같은 걸 먹는다고 하는데, 긴 겨울을 나면서, 부족했던 비타민을 채운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나는 올리브만 딱 먹었지만, 원래 새해에는 '올리비에'라는 올리브로 만드는 샐러드도 즐겨 먹는다고 한다. 옛날 비교적 싼 완두콩을 평소땐 먹다가 명절엔 특별히 비싼 올리브를 먹는 게 전통이 되면서, 올리브가 주요 명절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올리브와 샌드위치. 저 샌드위치는 우유 살짝 넣은 아메리카노와 먹어야 맛있다고 하셔서 그렇게 먹어봤더니 비린맛이 덜 하고 맛있었다.


4.  селёдка под шубой (셀료뜨까 뽓 슈바이) -  슈바(шуба)는 러시아어로 모피코트라는 뜻이고, 셀료뜨까(селёдка)는 청어라는 뜻인데, 직역하면 '모피코트 덮은 청어'라는 뜻이다. 맨 밑에 청어 필레를 깔고, 삶은 감자와 당근, 양파를 올린 다음 맨 위에 핑크 모피코트를 덮듯 비트를 올린다. 이 샐러드는 모스크바 한 상인이 발명했다는 썰이 있는데, 20세기 초 선술집에서 싸우는 것을 보다가 지친 그는 '프롤레타리아' 스러운 청어와, '농민' 스러운 감자, 비트를 하나로 만들어 그만 좀 싸워라~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진짜 유래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런 재밌는 썰이 있다고 한다.


케이크처럼 예쁜 셀료뜨까 샐러드 (출처 : suomimagazin.ru)


5. 샴페인 - 아시는 바와 같이 샴페인은 프랑스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던 스파클링 와인인데, 러시아에선 소련 시절 1920년대, 부유한 사람들에게 제공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1960년대 소련 정부는 새해 전야에 모든 소련 가정에 샴페인 1병 이상을 제공해야 한다고 정하면서, 그게 굳어져 수십 년 동안 전통적인 새해 음료가 되었다고 한다. 종이에 소원을 적어 재를 샴페인 잔에 붓고 마시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미신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종이까지 먹어가며 소원 비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ㅎㅎ)


샴페인 근접샷. 토끼의 해라고 토끼 그젤(러시아 전통 도자기)을 올려두셨다. 러시아도 이런걸 챙기는거 보면서 새삼 신기했다.
Ирония судьбы (이로니야 수듸비 라는 운명의 아이러니라는 유명한 소련 시대 영화)의 한 장면. 새해 명절이라 샴페인을 먹고 있는 장면이다.


6. холодец (할라제츠) - 이거야 말로 외국인들한테는 제대로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 아닐까 싶다. 고기 푸딩을 먹어볼 줄이야. 내 돈 주고 사 먹으라면.. 굳이 사 먹을 것 같진 않지만, 맛이 없거나 역겹다거나 그렇진 않다. 말 그대로 차가운.. 고기 푸딩? 젤리? 의 느낌이다. 뼈 국물을 3일 동안 끓이면서 글루코사민 등이 나와서 관절염, 암, 폐질환에도 도움이 되는 슈퍼푸드라고 한다. 돼지고기 혹은 소고기로 만드는데, 고추냉이(хрен 흐렌)를 올려서 먹으니까 괜찮게 먹을 수 있었다. 16세기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슬라브 요리라고 한다. 11월 7일은 할라제츠의 날으로, 이 음식을 위한 날이 있을 정도로 할라제츠는 러시아인들의 전통적인 국민 요리인 셈이다.


холодец (할라제츠) 상세 사진. 간 고기와 고기 기름,육수을 넣고 만든 차가운 푸딩이다. (출처 : DR, Dzen)




새해로 넘어가는 12시, 그때부터가 파티시작이다

배불리 밥을 먹고선 서로에게 편지도 써주면서 시간을 보냈다. 러시아인들은 12:00이 되면 방송을 틀어놓고, 푸틴 대통령의 신년사 영상을 본다. 새해부터 굳이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뭐라 할지, 전쟁을 종식할 뭔가 의견을 혹시라도 제시하진 않을까 하여 궁금한 마음에 틀어보았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러다 12시 땡 종이 치자, 나가자는 것이었다. 으잉? 이 시간에 어딜 간다고? 싶었는데 파티는 12시부터 시작이었다. 갑자기 동네 여기저기서 폭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고 2 정거장 가서 공원을 걷기로 했다. 이 시간대에도 연장운행을 했는데, 지하철 이용료가 공짜였다!

지하철 타고 공원 구경 가는 길!


우리가 갔던 공원은 동네 주민들이 즐겨 찾는 공원이었는데,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진짜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었다. 각자 폭죽을 가지고 나와서 터뜨리기도 했는데, 일부 사람들은 박스채로 가지고 와서 나름 크게 폭죽놀이를 하기도 했다. 중국이 폭죽놀이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이 나라 사람들도 정말 좋아하는 가보다 싶었다.


크리스마스 데코레이션 최고 중 최고인 러시아. 날씨가 우중충하고 겨울이 기니까, 데코레이션에 만전을 기하는듯하다.


모스크바 지역 몇 군데에서 마켓을 하는데, 마켓에 가면 이렇게 트리 데코와 회전목마를 볼 수 있고, 뱅쇼(현지에선 글린트베인이라고 한다)와 블린 (러시아 팬케이크)를 팔며, 스케이트장이 있는 곳도 있다. 이 동네도 그런 장소가 있었는데, 이 시간에 스케이트를 타고 회전목마를 타긴 그래서, 데코가 너무 예쁜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평생 볼 폭죽을 산책하는 2시간 동안 다 본 듯했다. 새해를 맞이하며 상기된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새해 분위기를 즐긴 뒤, 2-3시쯤 집으로 갔다.



다음날 아침에 눈 뜨니, 가족들이 보내준 한국의 새해 일출 사진이 카톡에 와있었다. 매해 우리 가족끼리 새해를 함께 보는 전통이 있는데, 해외에 살다 보니 이렇게 카톡으로밖에 함께 할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우리 집으로 복귀. 집에 오자마자 라면을 땡고추 팍팍 쳐서 넣어먹었다. 소주가 더 귀한지라 소주 대신 위스키에 먹었는데, 속이 확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음식을 많이 하셔서 묵는 동안 계속 러시아식으로 먹었는데, 맛은 있었지만.. 집 오자마자 라면 해장을 하는 날 보며 ‘넌 한국인이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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