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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쓰는 사람 28화

어떤 기다림

#물의침묵 #주제사라마구 #마누엘에스트라다 #살림어린이

by 수키
타이밍을 놓쳤을 때, 찾는 것과 기다리는 것 어떻게 해야 할까?


방송대를 다니고 졸업을 할 때쯤 고민에 빠졌다. 이 공부를 더 할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고민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나는 왜 더 공부를 하려고 하는지, 내가 현재 상황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맞는 건지 스스로에게 명분을 찾으려 애썼다. 결론을 쉽게 내릴 수가 없었던 나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단골이 된 지금의 동네 책방에 다닌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어쩌면 이곳은 내가 나의 삶의 답을 찾기 위해 떠나온 곳일지도 모르겠다. 책에 관심이 있고, 아이에게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고, 그러려면 어떤 그림책을 읽어야 할지 내가 선택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책을 어느 정도로 좋아하는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독서 모임을 만들고, 동네 책방에서 그림책을 보고, 글쓰기를 하고, 도서관을 다니며 내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문득 ‘내가 만약 계속 공부를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랬다면 나는 지금 이 시간에 책방에 갈 일이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행복함을 느끼지 못했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공부를 이어가지 않은 것이 잘한 일이었다는 결론이 났다. 열심히 책을 읽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그저 책이 좋아서 읽는다고 큰 목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저 책을 읽으며 지내는 일상의 평온이 한편으로는 불안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어쩌다 보니 지역에서 진행하는 교육봉사로 아이들과 그림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회성 결여와 소심한 성격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하던 나는 1년 전에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을 왜 지금은 할 수 있게 되었을지, 어떤 변화가 생긴 건지 궁금해졌다. 교육봉사를 가기 전이면 늘 긴장한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고 책을 결정하고 나면 수십 번을 읽어 본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수업 장면을 떠올리며 40분이라는 시간에 맞춰 처음 시작부터 마지막 인사까지 스크립트를 작성한다. 이렇게 작성된 내용을 입에 붙게 하기 위해 틈만 나면 읽어댄다. 내가 처음 보는 아이들 앞에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전보다 용감해져서가 아니라 해야 한다는 책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꿈이 국어 선생님이었다. 그저 책 읽는 것이 좋고, 받아쓰기를 잘해서 생각해 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꿈은 오래 지니지 못했고 나는 국어 선생님이 되지 못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으나 ‘왜 꼭 국어 선생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라는 의문이 든다. 그때 꿈을 무턱대고 정하지 않았더라면 꿈이 내 삶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를 때까지 책을 다양하게 즐기면서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림책 《물의 침묵》에서 낚시를 하러 간 소년은 잔잔하던 물속에서 물고기가 찌를 문 순간 짜릿함을 느끼지만 금방 물고기에게 자신의 낚싯대를 뺏기고 만다. 하지만 소년은 ‘괴물에게 진 빚’을 갚는다며 다시 낚싯대를 만들고 물고기와 전투를 벌였던 그곳을 찾아간다. 침묵하는 물을 바라보며 잊을 수 없는 슬픔을 느끼지만 자신이 놓친 그 물고기를 누군가가 잡기를 바란다. 소년이 생각했던 복수는 할 수 없었지만 앞뒤를 재지 않은 무모함이 용감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무언가를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주저하게 될 때면 타이밍이 아니라며 뒤로 숨었던 적이 많다. 하지만 그 타이밍이라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때를 의미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엉뚱하고 바보 같은 행동일지라도 직접 부딪치며 경험하는 실패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가 머뭇거린 시간은 타이밍이 아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것은 아닐까. 도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그전에 마음이 먼저라는 것을, 그 마음이란 것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얼마 큼의 진심인가에 대한 각오일 것이다. ‘하고 싶음’과 ‘할 수 없음’의 사이에서 망설임과 도전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인데 타이밍이 아니라는 핑계로 더 이상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도전하는 것에 있어서 많은 생각과 계획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생각과 계획이 없을 때 나만의 경험이 축적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삶의 답을 찾게 된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다림이라는 터널을 지나고 보니 모호했던 것들이 점점 선명해지는 것을 깨닫게 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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