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묻지는 않은 셀프 Q&A (2)
1. 순례길의 밥은 어떤가요? 정말 악명높게 맛없나요?
악명을 들었었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어요. 근데 카미노에서 지나치거나 숙박하는 마을들이 대개 작은 시골이다보니 식당들이 별로 없거나 다양하지 않아서 선택의 폭은 거의 없는 편이에요. 순례자 메뉴 (오늘의 메뉴menu del dia) 를 시키면 대개 샐러드, 감자튀김, 퍽퍽하게 구운 소나 돼지고기를 먹게 되는데, 매일 대동소이 하다보니 먹다 보면 조금 질리기는 해요. 그리고 음식이 대부분 미지근하게 서빙되어 한국의 뜨거운 온도감이 그리울 때가 많아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고기 질이 좋고 와인이 매우 맛있습니다! 매일 식사와 함께 한잔 하는 와인에 적응이 되는지 이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비노띤또(레드와인) 한잔을 먹어야 싹 내려가는 기분. 그리고 순례길 후반 갈리시아 주에 오게 되면 이제 유명한 문어요리도 종종 맛보게 되고 한국 된장국 비슷한 것도 있고 맛있는게 많아집니다.
2. 식사량이 늘었나요?
에피타이저, 메인, 디저트랑 물이나 와인이 같이 나오는 오늘의 메뉴가 우리나라 사람 양에는 많다는 설이 있는데, 낭설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요. 매일매일 운동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환갑 넘은 어르신들도 1일 1고기를 외치며 뻑뻑한 고기메뉴도 매우 잘 드시게 됩니다.
걷고 나니 양이 늘어나서 이제 고기 3인분 정도는 가볍게 먹을수 있을 듯. 고로 안그래도 좋지 않은 연비가 더 나빠졌으며 스스로 많이 먹여야 하게 되었습니다.
3. 한식은 없나요?
산티아고에 한식당이 있고, 그 전까지 프랑스길 경로상에 한식당은 없는 듯 해요. (마드리드에 오니 한식당이 넘쳐나던데 왜 꽤나 대도시였던 부르고스나 레온조차 한식당 하나가 없는 것일까요?)
기억나는 한식 식당은 먼저 로르카에 한국 여사장님이 계시는 알베르게가 있는데 한식을 하시는 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뭔가 한식 스멜이 나는 무언가 있지 않을까? 메세타에는 Castrojeriz에 Albergue Orion에서 비빔밥 라면 김밥등을 먹을수 있다고 하는데 역시 직전에 햄버거를 먹어서 가보지는 못했구요. 그리고 라바날 델 카미노의 Albergue Nuestra Señora del Pilar는 라면이랑 신부님이 전수해 준 김치까지 먹을 수 있는 곳 입니다. 여기도 갔더니 전날 단체가 다 쓸어가서 김치 구경도 못했지만...
라면은 꽤나 쉽게 발견이 됩니다. 대도시가 아니더라도 규모 있는 도시의 중국 마트에서 한국 라면은 보통 팔더라구요. 한식 냄새가 그리울 때 라면만한게 또 없죠. 근데 걷는 동안에는 그렇게 그립던 한식이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나니 딱히 아쉽지 않아졌답니다. 역시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한 것. 결국 순례길 내내 한식당을 한번도 못갔네요!
4. 밥을 해먹을 기회가 많이 있나요?
코로나 전까지는 취사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제가 걸을 때는 (2022년) 아무래도 코로나 시국에 부엌을 닫은 뒤 여전히 주방을 오픈하지 않아 취사가 안되는 숙소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 숙소들은 주방 집기나 레인지는 치워놓고 간단히 전자레인지 정도 이용할 수 있게 합니다. 빵이나 간편식을 데워 먹을 수는 있어요. 기회 있을 때마다 가능하면 해먹고 싶었는데, 숙소에 주방도 있어야 되고 일찍 도착해서 장도 볼 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기회가 많지는 않았고 총 대여섯 번 정도 해 먹은듯? (그래도 부지런히 해 드시는 분들은 쌀 가지고 다니면서 가능하면 밥 지어서 드시더라구요.) 메뉴는 간단히 라면이라든지, 토마토야채볶음이라든지, 고기를 사다가 구워먹는다든지 정도를 한 것 같아요. 불고기나 삼계탕을 한번 해먹어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5. 점심식사 시간이 난해하다던데?
제일 어려운 부분이에요. 대부분의 식당이 오후 2~6시까지 또는 더 길게 쉬는 시간을 갖기 때문에 숙소 도착해서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 대개 식당들이 문을 닫아 있어요. 운좋게 12시쯤 지나치는 마을에 식당이 있다면 그때 해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아무래도 타이밍 맞게 마을이 나오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고, 그 시간 즈음이면 도착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경우도 많아 얼른 도착부터 하자란 마음으로 건너 뛰는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제때 점심 챙겨먹기가 어려우므로, 전날 간단한 샌드위치를 준비해 놓거나 오전에 바에서 쥬스랑 토르티야 등으로 요기를 좀 해야 합니다.
6. 물은 얼마나 지고 걷나요?
걸어보니 길 중간에서 물을 공수하기는 쉬운 편이더라구요. 실제로는 더 먹게 되지만 아침에 딱 1L 짜리 생수 하나 준비해서 출발하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떨어지기 전에 분명히 가게도 만나 보충할 수 있고 그렇습니다. 물은 가게에서도 팔지만 바에서도 팔아요.
7. 바(bar)에서는 무엇을 먹을 수 있나요?
바는 정말 오아시스 같은 소중한 순례자들의 쉼터입니다. 메뉴판은 따로 없지만 적당히 이야기 하면 많은 것을 먹을 수 있어요. 커피, 맥주, 음료수, 간단한 식사까지! 저도 몰라서 먹던 것만 먹었지만 이름을 조금 공부하면 도움이 됩니다. 아래 메뉴 정도는 거의 모든 바에서 주문 가능할 거에요.
- 카페 콘 레체 cafe con leche (스페인 식 진한 라떼)
- 에스프레소
- 코르타도 cortado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살짝 넣은 더 진한 라떼)
- 토르티야 tortilla (스페인 식 계란찜)
- 아구아 agua (물)
- 주모 데 나란자 zumo de naranja (오렌지쥬스)
- 세르베자 cerveza (맥주. 비어라고 해도 대부분 아심)
- 비노 띤또 vino tinto (레드와인)
- 비노 블랑코 vino blanco (화이트와인)
- 깔리모쵸 calimocho (레드와인에 콜라 섞은 칵테일)
- 띤또 데 베라노 tinto de verano (레드와인에 레몬에이드 섞은 칵테일)
특히 마지막에 쓴 여름의 자주색 이라는 뜻의 띤또 데 베라노는 초반에는 몰랐지만 중간에 알게 된 보급형 샹그리아 같은 칵테일인데, 이름도 멋있고 가볍고 청량하게 먹기 좋아서 순례길 후반에 많이 시켜마셨군요.
8. 스페인 마트는 어떤가요?
마트 물가는 우리나라보다 많이 싸게 느껴집니다. 특히 과일하고 고기, 와인이 엄청 싸요. 마트에 가면 주로 걸으면서 먹을 간식을 보충하게 되는데 과일은 복숭아, 자두, 오렌지 같은 류가 가방에 넣기도 좋고 걸으면서 수분이랑 영양보충 하기도 좋았던 것 같아요. (납작복숭아 참 맛있었지...) 바게트 빵이랑 햄, 치즈 사다가 숙소에서 샌드위치 간단하게 만들어 놓고 다음날 점심을 해결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전자렌지에 데우기만 하면 되는 스페인 식 즉석밥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종류에 따라 우리나라 밥이랑 꽤나 비슷한 녀석도 있어요.
9. 순례길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은?
로그로뇨의 양송이 핀초스, 감자 타파스Patata bravas, 부르고스의 홍합 타파스, 멜리데의 문어. 역시 주로 큰 도시들이 맛있었네요.
10. 맛도 맛이지만 정이 가는 카미노 베스트 메뉴는?
보이면 시켜먹었던 파드론페퍼랑 레드와인,
걷기 위해 수 없이 아침에 먹었던 카페콘레체와 토르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