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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 May 10. 2024

태연이라고 다 좋을까

언니는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에요.

등교할 때 같은 버스를 타는 남학생이 있다는데요.

자기를 좋아한다고 해요.

고백받았냐고 물어보니 꼭 말로 들은 건 아니지만, 자기랑 눈을 마주친 순간 알았다네요. 자기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고........     

머리가 있다고 사람이 다 생각을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봐요.

어느 날부터 눈이 마주친 그 남학생을 의식해서 머리에 촌스러운 핀도 하고 입술에 빨간색을 바르고 다녀요. 두꺼운 입술이 더 두꺼워 보여요. 거울을 보면서도 모르나 봐요.     

며칠 전에는 저랑 같이 길을 가는데 같은 학교 남학생을 만난 적 있어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오빠를 계속 보는 거예요. 뚫어져라. 그 오빠는 정말 무서웠을 것 같은데 잠시 언니를 보는 것 같더니 지나갔어요. 방금 그 오빠도 자기를 좋아한다네요. 눈이 마주친 남자는 다 자기를 좋아한다고 해요.  자기를 좋아하는 남학생은 부끄러움이 많은 친구들이라 자기에게 아직 말을 못 걸고 있다고. 어쩌겠어요. 자기 인생 자기가 알아서 사는 거지.     

언니는 밖에서 엄청 친절한데 집에 오면 딴 사람이에요.

아픈 엄마에게도 짜증을 내고 화를 내요. 동생인 저에게는 심부름이란 심부름 다 시키고 성질내요.      

기범이네 집에서 떡볶이를 배부르게 먹었는데 언니도 떡볶이 먹고 싶다고 분식점에 같이 가자네요. 가기 싫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푸근한 아저씨의 사진이 있는 카페 음료를 사 준다기에 따라 나왔어요. 언니가 늘 미친 상태는 아니랍니다. 가끔 맛있는 것도 사 줘요. 기분 좋은 상태일 때요.  

분식점이랑 카페가 옆에 나란히 있어요.


“해로, 너도 미숫가루 음료 먹으려고 왔어?”

아, 왕재수 태연이를 만났네요.

“안녕”

무슨 상황인가요?

태연이를 무시하고 음료만 주문하고 가려는데 언니가 태연이에게 인사해요.

언제부터 이렇게 상냥한 목소리를 가졌던가요?

언제부터 이렇게 인사를 잘하는 사람이었던가요?

“네 안녕하세요.”

왕재수와 미친 중학생이 언제부터 아는 사이라고 인사를......

“해로 친구구나. 예쁘게 생겼네.”

아, 잊고 말하지 못한 게 있어요. 언니는 남들에게 과잉 친절에 예의 있는 인간이에요. 거기에 아는 척하는 병까지 추가입니다.

보통 중학생 언니들은 동생 친구를 모른 척하던데....... 별종. 미친.....          



엄마랑 아빠와 함께 마트 왔다가 음료수 먹으러 카페에 갔는데 해로를 봤어요.

인사를 하고 보니 조금 전 기범이 집에서 헤어지고 입었던 옷 그대로네요.

해로 언니를 만날 줄 알았으면 예쁜 원피스 입고 오는 건데. 놀이터에서 만난다고 해서 움직이기 좋은 치마를 입고 왔는데 엄마가 마트 간다고 해서 그대로 나왔어요.     

어릴 때부터 예쁘다고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에요.

유치원 때는 '엄마 닮으면 예뻤을 텐데'란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엄마가 예쁜 옷도 많이 사주고 머리도 예쁘게 묶어 줬어요.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어요.

처음에는 제 이야기인 줄 몰랐는데요. 어른들이 제 뒤에서 하는 말들이 비슷했어요.

“태연이 엄마가 정말 예쁘게 옷을 잘 입히는데 저 정도네요. 돈이 많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렇네요. 나중에 커서 수술시키면 되니까요. 호호호호”

같은 이야기를 학교 입학해서 2학년 올라올 때까지 들었어요.

엄마들이 모이는 모임에서 친구들이랑 놀고 있으면 구석 어딘가에서는 항상 듣는 이야기.

옷이랑 예쁜 액세서리가 많아요. 예쁜 여자 인형. 작고 귀여운 인형. 아빠가 외국 출장 가서 사 오는 특이한 학용품. 장난감...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해요.

아빠 닮아서 못생겼다고 하는데 크면서 엄마 얼굴도 좀 있다고 하네요.

친척들이 와서 해주는 말들이에요.

그럼 크면 수술 안 해도 되겠지요.

얼굴 수술한다는 건 무서운 이야기니까요. 이제 10살인데 10살도 안된 아이에게 어른들은 너무 심한 말을 하는 거 아닌가요?

더 이쁜 옷을 입고 다닐 거예요. 친구들에게 없는 것들을 가지고 있어요.

남들 가지고 있지 않은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에요.

이번 방학에는 엄마 아빠랑 미국으로 여행 간대요.

가까운 곳은 가봤는데 미국은 한 번도 안 가봤어요.

아주 멀어서 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대요.

 친구들이랑 댄스 동아리 만들었거든요. 방학 때 연습해서 무대 공연하기로 했단 말이에요.  미국 가면 친구들이랑 연습하고 놀 시간이 줄어요. 아이참....

by 빛날 (왕관을 쓴 자 무게를 견뎌야 할까요?)

작년 가을 학교 발표회 시간에 친구들이랑 아이돌 댄스를 연습해서 무대에서 공연했어요.

인기가 정말 많았어요. 무대 의상도 엄마가 다 준비해 줬어요. 우리 집에서 연습을 했는데 엄마가 많이 가르쳐줬어요.

 연습할 때마다 맛있는 간식을 준비해 주셨어요. 친구 엄마들도 같이 와서  봐주시고 밥도 먹고 놀다 갔어요. 정말 재미있었는데.   

이번에는 엄마 도움 없이 우리끼리 댄스 동아리 만들기로 했거든요. 3학년이니까요.

미국 말고 가까운 다나라 가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 생각을 바꿀 있도록 생각을 해 봐야겠어요.


'띠링' 문자가 왔어요.

"네가 가지고 있는 그거...."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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