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불안을 견디는 일
아이를 믿는 일은 언제나 말보다 어렵다.
특히 아이가 멈춰 있을 때는 더 그렇다.
나는 늘 아이가 ‘다시 시작하기를’ 바랐다.
그 바람은 아이를 위한 듯했지만,
사실은 나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주문이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된 뒤로
내 마음은 늘 불안의 끝을 서성였다.
시험, 수행평가, 친구 관계, 진로.
무엇 하나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이는 말수가 줄고,
내 질문에는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
“괜찮아.”
“몰라.”
“그냥.”
나는 그 짧은 말속에서
온갖 해석을 쏟아냈다.
괜찮다는 게 진짜 괜찮다는 뜻일까,
아니면 나를 안심시키려는 말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요동쳤다.
눈빛을 반짝이며
학교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들이
언제부턴가 말수가 줄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엄마!” 하며 뛰어들던 아이가
인사도 건성으로 하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나보다 키가 커질 무렵부터는
문을 닫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나는 멈춤이 두려웠다.
잠시 쉬면, 영영 멈출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가 힘들다고 할 때마다
나는 대안을 내놓았다.
“그럼 학원은 잠깐 쉬고, 인강으로 해볼까?”
“이 시기만큼은 집중해야 해.”
“지금 멈추면 다시 하기 더 힘들어.”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말들이
결국은 내 불안을 감추는 말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제발 그냥 내버려 둬.”
그 말이 공기 중에 멈춰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그날 밤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달라질까,
저렇게 하면 나아질까,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 경우를 떠올렸다.
남편과도 긴 대화를 나눴지만
결국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남편과도 긴 대화를 나눴지만
결국 답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걱정했다.
나는 아이가 공부를 놓고
미래가 불투명해질까 봐 전전긍긍했고,
남편은 아이의 시간을 믿어주자고 말했다.
처음엔 그 말이 서운했다.
“그렇게 두면 더 멀어질 수도 있잖아.”
그는 나직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는 결국 길을 찾을 거야.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
엄마로서의 너를 믿어.
너는 충분히 했어.
이제 더 이상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마.”
그 말이 오래 남았다.
그의 신뢰가 내 불안을 조금씩 녹였다.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다.
그의 침묵도 나름의 믿음이었다는 것을.
내가 흔들릴 때마다
그는 묵묵히 “괜찮을 거야.”라고 말했고,
그 한마디가
불안한 밤을 버티게 하는 등불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아들을 향한 믿음뿐 아니라
나 자신을 믿는 연습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우리가 쌓아온 시간을 생각하면
길어질 리가 없다고 믿었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한 달이 되고,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이만큼 내려놓았다고 생각하면
또 저만큼이 남아 있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불안과 신뢰 사이를 오갔다.
세 번의 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이제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그동안의 사랑이
‘나의 아들을 사랑한 것’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그냥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
이제는 안다.
사랑은 불안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그 불안을 견디며 곁에 머무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가 멈춰 있을 때,
나는 내 삶을 살아내며 기다리는 법을 배웠다.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출근을 하고,
그렇게 내 하루를 꾸려가며
조용히 아이의 하루를 믿는다.
사랑은 완벽한 확신이 아니라
끝없는 기다림 속에서 피어나는 신뢰다.
나는 오늘도 그 믿음을 연습한다.
불안한 마음을 품은 채,
그 아이 곁에 서 있는 일.
그것이 내가 배운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