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들의 반란 3(마지막이야기)

설거지 대란

by 수키니피그


그렇게 자유롭기 그지없는 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릇들은 자신들의 몸상태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예전엔 묻어 있지 않던 생소한 음식찌꺼기가 묻어 있기도 하고 그릇들의 이가 나가거나 심지어 금이 가다가 결국엔 깨져버리는 일까지 일어났죠. 무엇보다 부끄러웠던 건 손님에게 서빙되려고 준비되던 그릇들이 더럽다며 돌려보내지는 일이 종종 일어났던 거예요. 그릇들은 곧 깨닫게 되었어요. 너무나도 자유로운 알바가 그릇들을 애벌 세척 할 때 마구잡이로 던져 넣거나 재질이 다른 그릇끼리 섞어 놓아 버려서 그릇들이 서로 부딪쳐 금이가고 이가 나가고 큰 그릇 안에 갇혀 버린 그릇은 제대로 된 세척이 되지 않아 음식찌꺼기가 그대로 묻어 있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을요. 그래도 그릇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자기들이 원해서 설거지하는 사람을 바꾼 거잖아요. 그릇들은 불편했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자신들의 판단이 틀렸다 는 걸 입 밖으로 얘기할 수가 없었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깨지거나 이가 나가서 더 이상 그릇의 역할 을 할 수 없게 된 동료 그릇들이 하나 둘 쓰레기봉투 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릇들은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우리를 함부로 다루지 마세요!"

"우리는 크기도 재질도 다릅니다. 우리를 마구잡이로 섞어 놓지 마세요!"

"우리가 골고루 세척될 수 있게 배려해 주세요."

이 모든 얘기를 들은 알바는 대수롭지 않은 듯 시큰둥하게 말했어요.

"내 자유야... 난 내 방식대로 하는 거야. 난! 나니까~"

"당신은 주인에게 돈을 받고 일을 하잖아요! 당신에겐 우리를 소중하게 다루고 깨끗하게 할 의무가 있어요."

그릇들은 알바에게 책임을 물었어요.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야말로 가관!

" 내 알 바인가요? 내 그릇도 아닌걸요! 난 그저 내 할 일 하면서 시간만 때우면 그만! 내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결국 알바는 자신의 방식이 왜 잘못 됐는지 끝까지 깨닫지 못했고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도 않았어요. 그렇다면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어요. 그릇들은 염치 불구하고 원래 설거지를 도맡아 하던 주인에게 이 사태를 알렸답니다. 그릇들의 이야기를 들은 주인은 당장 책임감 없이 일한 알바를 해고했어요.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그릇들을 모아 놓고 이야기했어요.

"너희를 더 설득하고 이해시켰어야 했지만 때론 어떤 현명한 말보다 직접 경험해 보는 게 더 이해가 빠를 수 있어서 말이야..."

잠자코 있던 몇몇 그릇은 서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말했어요.

"우리는.... 주인님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리가.... 난 언제나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었단다. 저기 저 CCTV 보이지? 하지만 너희의 의견이었기에 너희들이 다시 요청하지 않는 한 계속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야. 난 너희의 의사를 존중하니까!"

곧이어 주인은 자신의 생각들을 차근차근 들려주기 시작했어요.

"모든 일에는 질서라는 게 있단다. 나는 질서를 존중하는 사람이야. 자유와 방종은 서로 공존할 수 없어! 내가 너희들을 다루는 기준엔 질서가 존재해. 질서가 바로 섰을 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자유'야. 질서 없이 부서져 버린 틀 안에선 제멋대로 하는 게 자유라고 착각하는 '방종'이라는 녀석이 있어서 모든 질서를 섞어버리고 무너뜨리고 서로를 다치게 한단다. 제멋대로 섞여있었던 너희들이 금이가고 부서지고 심지어 그릇으로써의 제 몫을 다할 수 없었던 건 질서가 무너졌었기 때문이야."

주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릇들은 점차 깨닫기 시작했어요. 그릇들을 분류하고 설거지의 순서가 매번 일정했던 건 가치에 차별을 둔 게 아니라 서로가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질서 안에서의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걸 말이에요.

일련의 사건들이 지나가고 주인과 그릇들은 원래의 일상을 되찾았어요. 이제는 누가 먼저 세척기에 들어가는지 누가 누구 밑에 놓이는지 누가 누구의 위에 놓이는지 중요하지 않게 됐답니다. 그릇들의 존재 목적은 세척받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정성껏 만든 맛있는 요리를 먹음직스럽고 정갈하게 담아내는 것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었거든요.

"어쩜!!! 테이블웨어가 무척이나 아름답고 깨끗하군요! 그릇이 아름다우니 요리가 더 맛있는 거 같네요!"

어느 날 방문한 입맛 까다로운 손님은 주인이 만든 음식을 맛보며 감탄해 마지않아 하며 그릇들까지 덩달아 칭찬했어요. 그릇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자존감이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지요. 그릇들의 주인은 그릇의 쓰임새를 가장 올바르게 알고 어떻게 다루어야 그릇들이 가장 행복해할지를 너무도 잘 아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오늘도 그릇들은 고단하지만 보람된 하루일과의 끝을 따듯한 세척기 샤워로 마무리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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