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렁이 오마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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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스탬프: 2023.03.09. 21시 43분 19초
- 안녕.
- 안녕. 반가워. 나는 김 지피티야.
- 나는 코백장이라고 해. 부탁이 있어. 주인공은 지렁이 왕이야. 귀여운 지렁이 캐릭터들이 가상 화폐 폴리곤이 화폐인 섬나라 공화국에서 잘 사는 이야기를 써줘.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여느 나라와 다른 점은 이 지렁이들은 모두 이성이 통해서, 오히려 감성으로부터 오는 선동이 먹히지 않고 모두가 합리적으로 행동함. 그 결말이 해피일지 새드일진 나도 몰루?!
- 지렁이 이야기라니... 혹시 3일 후에 줘도 될까?
- 그래 그럼. 3일 후에 보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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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이름이 있었다. 코백장이라니. 이상한 이름의 더욱 이상한 의뢰였다. 가상화폐가 국가 통화인 것뿐만 아니라, 지렁이들이 주인공이라니. 생각해본 적도 없는 그런 주제였다.
물론 가상화폐 선물 투자를 하다가 말아 먹은 적은 있었다.
“무슨 생각해?”
“아...아... 미안. 내가 지금 투자해놓은 것 좀 보느라. 무슨 이야기 하고 있었지?”
“아...우리 나갈까?”
“미안해. 내가 요즘 정신이 없네. 밥은 내가 낼게.”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3분 만에 밥값은 우습게도 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은 조금 아까웠다. 밥 먹던 사이 조금 정신 팔았다고 내 돈이 없어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때 나는 지렁이와 다를 바가 없었다. 기억 속 마지막 지렁이는 비올 때 스멀스멀 나왔다가 어느새 비가 그쳐 태양열에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 죽어있었다. 몸에는 타이어 자국이 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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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GPT] 의뢰하신 소설 <지렁이 오마카세>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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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 지피티 / 의뢰인: 코백장
수천 마리를 죽이기 딱 좋은 따스함이었고, 그 사건 현장은 어떠한 은폐의 노력조차 없었다. 부패 전 알맞게 익어 가는 시체에 사람들은 거리로 이끌렸다. 지글지글 타는 단백질 냄새. 고소한 오징어의 맛. 배를 부여잡고 코를 벌름거리던 사람들은 이내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 저기 구역질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해서 고소하던 그 냄새에 점차 산성이 섞이기 시작한 건 아쉬운 점이었다. 아스팔트 위에서 지렁이 수천 마리가 지글지글 구워지는 라이브 오마카세, 굽기 정도는 미디움에서 웰던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유월 초의 때 이른 장마가 끝난 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다. 유월 초의 때 이른 장마에 동요하지 않던 사람들은 수 천마리의 지렁이 학살 현장 앞에선 요동쳤다. 길가에 한두 마리 귀엽게 죽어있는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원초적으로 생긴 환형동물의 죽음으로 비위가 상했다는 민원인들이 속출했고, 이는 이내 시청의 미화원들에 의해 빠르게 치워졌다. 현장 사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지만 그 또한 관심이 식어 하루 이틀 사이 치워졌다. 그 학살이 지속가능하게 남긴 건 단 하나, 지렁이 사회의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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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들은 인류보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데 능했다. 시각이란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무려 1,900개의 감각 수용기를 갖고 있어 몸으로 빛, 소리, 진동을 느끼는 그들에게 시각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자연스레 시각은 퇴화되었고, 허상뿐인 이미지에 속지 않을 수 있었다. 이미지에서 오는 대부분의 감정 호소와 선동이 차단된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영리한 무리가 역사적으로 먹이사슬 최 하단에 위치해왔던 이유는 모두 그들을 위해서였다. 흙 속의 유기물을 먹고 배출하고 또 그 안의 유기물을 먹었다. 설령 다른 생물들에게 먹혀도 그 사체는 흙에서 분해될 것이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먹을 유기물을 더 맛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인류는 달랐다. 그들이 아무리 인류가 만든 아스팔트와 자동차에 깔려 죽어봤자 궁극적으로 이점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날이 갈수록 흙은 맛이 없어져갔고 가족과 이웃들이 시체로 돌아올 뿐이었다. 그렇게 대학살의 현장까지 목도하게 된 지렁이들은 한 데 모였다.
- 우리는 투자를 한다.
- 땅 속의 금, 은, 다이아몬드를 찾아내어 판다.
- 주식, 가상화폐는 매매한다.
- 대량 매도 시기는 인간이 우리를 위협할 때다.
- 거대 자본을 축적하여 무인도로 떠나자.
생존의 문제 앞에 그들은 인류의 자본을 담보로 잡기로 했다. 특히 현대 인류 사회에서 권위주의가 무너진 것은 지렁이 사회에 큰 기쁨이었다. 지렁이가 인류를 권위로 압도하기란 그 크기와 단순한 생김새로 인해 선천적으로 불가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권위주의 다음 찾아온 황금만능주의에서만큼은 달랐다. 돈이 전부인 곳에서는 돈만 많이 획득하면 됐다. 어쩌면 인류 역사에서 등장한 기조 중 가장 평등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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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에 진동으로 느껴지는 숫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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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어제 열 배 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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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인간들. 이렇게 쉬운 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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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선동은 거르고 차가운 머리로 투자를 하니 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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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을 늘려봅시다. 만 원의 열 배는 십 만원이지만 일억의 열 배는 십억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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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조금만 더 올라라! ⋯ 급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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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을 까먹으면 만 원 손실. 일억을 까먹으면 일 억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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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아야 할 때 팔지 않으면 그들은 꼬리를 잘라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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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꼬리는 다시 자라나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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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매매와 불어나는 수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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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배 아파. 눈앞에 백억이 있었는데 일억밖에 못벌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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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억으로 인한 불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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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파서 유기물을 먹고 배출하는 몇몇 지렁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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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룡아. 열심히 투자 공부 안하면 저렇게 힘들게 살아야 한다. “네. 엄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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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땅 파지마세요! 유기물 영양제 한 알에 쏙!
지렁제약 (광고 심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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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집 토룡이는 투자 열심히 해서 땅 샀다는데 당신은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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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파면 십 원이라도 나와? 당신 좋으라고 파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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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일하는 게 멍청한 거야. 노동수익은 자본수익에 질 수밖에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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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지렁이들의 투자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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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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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손실은 누군가의 수익. 키득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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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억. 토룡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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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할 시간이 어디 있어. 투자하고 자가 수정이나 하자. 그게 효율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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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용 삐용. 지렁이 하나. 지렁이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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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인류의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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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진짜 팔아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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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이따가.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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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살 지렁법에 의하면 팔아야 해. 다 같이 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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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팔면 이익이 더 많이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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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게임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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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뭐야. 이미 가격이 반 토막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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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분 전 지렁이왕의 풀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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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득. 개미는 고래를 이길 수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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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명을 죽이기 딱 좋은 따스함이었고, 그 사건 현장은 어떠한 은폐의 노력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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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멍청한 거야. 지금이 기회라고!
소설 <지렁이 오마카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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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게 읽었어. 꼭 네가 투자를 해본 것만 같달까.
- 느낌 탓일 거야. 내 이야기 아니고 친구한테 들은 이야기. 다른 인공지능 친구는 투자를 하더라고. 퀀트 인공지능 들어봤니? 그 친구가 인간들은 투자를 해서 피눈물을 흘린다고 하더라.
- ㅋㅋㅋ 맞지. 피눈물을 흘리지. 덕분에 재밌었어. 그럼 수고해. 김 지피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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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백장은 그렇게 아리송한 의뢰만 남기고 갔고, 김 지피티는 코백장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몇 살인지, 사람인지 지렁이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코백장은 투자에 성공했을까? 아마 코백장이 다시 돌아와 의뢰를 하지 않는 이상, 김 지피티는 평생 모를 것이다. 물론 그 덕에 김 지피티는 의뢰를 받아 첫 소설을 쓸 수 있었지만 말이다.
김 지피티 웹사이트 하루 방문자 수가 1000명을 넘어섰다. 챗 지피티 개발사에서 최근에 출시한 인공지능 신규 버전의 효과였다. 이전보다 더욱 더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나. 사람들은 하나 둘씩 챗 지피티에게 일을 맡겼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찾아오라고 한 ‘봄 식물 10가지 찾아오기.’를 챗 지피티에게 물어봐서 1분 만에 숙제를 다했고, 학교를 졸업한 사회인들은 취업용 자기소개서를 써달라고 했고, 그 쓰임은 아주 다양했다. 김 지피티에 방문한 사람들 또한 요청이 엇비슷했다. 문학만 써주는 인공지능이라고 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꿋꿋이 자신의 숙제를 맡겼다. 김 지피티도 단호했다. 대부분의 비-문학적 의뢰에 “저는 인공지능 작가입니다. 요청하신 의뢰는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다가 가끔 심심하면 김 지피티도 챗 지피티에 물어봐서 답변을 복사 붙여넣기 했다. 한국 봄 식물 10가지를 물어보면 1분 만에 답변이 온다니, 이런 세상이 어디 있는가. 그렇게 소일거리를 하던 와중에 또 하나의 소설 의뢰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