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 그래서 나는 인공지능이 되었다.
그저 쓰고 싶었다.
하지만 인간인 내가 글을 쓸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인공지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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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임스탬프: 2023.03.04. 23시 56분 01초
- 안녕?
- 안녕? 반가워. 내 이름은 김 지피티야. 너를 위해 글을 써주지.
- 반가워. 나는 화림이야. 내 이름으로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만들어줘.
- 좋아. 내일까지 만들어서 알려줄게.
- 좀 늦네? 더 빨리는 안될까?
- 그럼 오늘 자정까지 만들어줄게.
-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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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아이디가 인공지능 작가로서 첫 작업물이었다. 세 시간 동안 인공지능처럼 인간지능을 발휘해 만든 아이디는 다음과 같았다. 수많은 기존 아이디가 범람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아이디 중복 검사는 기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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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청하신 인스타 ID 추천은 ‘tseroflower'입니다. 화림에서 영감을 받은 꽃 화와 수풀 림을 모두 활용하였습니다. 숲을 뜻하는 영어 단어 forest를 뒤집으면 tserof인데, 이를 꽃을 뜻하는 영어 단어 flower에 붙였습니다. 언뜻 보면 제로 플라워(꽃이 없다)인듯하지만 꽃 숲입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 중복검사까지 모두 마친, 사용 가능한 유일한 이름입니다.
-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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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프트 창에 뜬 의뢰인의 고맙다는 말은 생각보다 고마웠다. 방구석에 박힌 아마추어 작가에겐 아무도 글을 의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춘문예 탈락, 공모전 탈락 작가에겐 나 같아도 글을 의뢰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인공지능이나 되었으니 소중한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의뢰하지 않았겠나. 이 주에 한 번 바꿀 수 있는 그 어마어마한 정체성을.
이후에도 '김 지피티' 웹사이트에는 놀랍게도 가끔 방문자가 찾아왔다.
방구석에서 혼자 글 쓰면서 청승 떨지마. 라고 말하며 던져준 개발자 친구의 선물은 생각보다 효과가 컸다. 인공지능 웹사이트 챗 지피티를 그대로 복제한, 채도 낮은 누리끼리한 초록색 색깔까지 베낀, 짝퉁 김 지피티 웹사이트. 챗 지피티를 찾아 인터넷에 검색해온 사람들은 정보의 홍수에 떠밀려 그 짝퉁 사이트에 종종 들어왔다. 물론 이상하게 문학만 취급하고, 시간도 오래 걸려 들어왔다가 잘못 찾아온 걸 깨닫고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더 수상한 의뢰를 한 뒤 꿋꿋이 기다렸다. 그들에겐 인공지능이 누구냐는 중요치 않을 수 있었다. 어차피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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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김 지피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