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덕후의 슬기로운 언어생활
6. 느림보지만 괜찮아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빅히트를 치면서 한동안 그림같은 몽환적인 영상에 내 눈은 호사를 누렸다. 불편하지 않은 예쁘기만한 비주얼과 재벌(여전히!), 권태기에 빠진 부부가 새로이 사랑에 빠져 영원을 기약한다는 판타지가 적당히 버무려진 (나에겐) 식상한 드라마였다. 현대판 남자 신데렐라 역으로 각광받은 배우 김수현도 예뻤다.(내 나이가 되면 젊은 남자들은 멋진 게 아니라 다 예쁘다!)
나에게는 재벌사위 김수현보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상처와 결핍으로 다져진 정신병동 보호사 강태 역할의 김수현이 더 멋지고 인간적이었다. 뒷북의 고수답게 영화, 드라마도 지나간 것들을 즐긴다. 지나간 드라마 덕후는 울컥하며 오랜만에 이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유년의 공포와 결핍을 고스란히 안고 성장한 두 남녀가 다시 운명적으로 만나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며 서서히 스며든다. 한 마리 야생동물처럼 포효하는 여자가 끊임없이 할퀴고 물고 뜯어도 그녀를 안아주는 남자. 그래, 그런 남자는 드라마에서만 존재하니 이 아줌마가 K드라마에 미혹될 수밖에 없는 거다. 이 두 불완전한 인격체가 안정된 관계를 맺는 과정은 느리다. 직진이나 속도전은 없다. 정신병동과 외딴 성이란 무대 안에서 정지해버렸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 속에서 하루 하루를 보내며 자신도 아픈 남자는 천천히 여자를 기다려준다. 은근히, 은은하게 스며들게 하는 방식은 마초남보다 더 똑똑한 전략일지도.
함께 으르렁거리며 살아온 우리 집 남자. 본색을 드러내기 전 이 남자도 그러했다.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잠수를 탔다. 한 달간을 나는 초조하게, 심각하게 검토했다. 아, 이 남자 아니구나. 나름 결론을 내리고 정리하고 마음을 잡고 나니, 그는 전화를 했다. 그랬군. 작전이었다. 후에 이 남자는 아니라고 잡아떼었지만 누가 알까. 여자를 애태우라고 주위에서 깨똥철학이랍시고 조언을 해준 친구놈이 있었을지. 우리의 관계도 결코 서두르지 않았던 느림보 연애였다. 그래도 그 느림의 철학이 내겐 먹혔다.
성인이 되어서 언어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람들은 초조할 수 있다. 특별히 외국어를 수단으로 유학을 가거나 취업을 준비한다면 느긋이 즐거이 언어생활을 누릴 수 없다. 여유가 없다. 급한 마음에 직진하고 지치고 상처받아 나가떨어지고 다시 승부를 보려 돌진하기를 반복한다.
다행히 중년에 들어서서 누리는 언어생활은 뜻하지 않은 즐거움과 생기를 선사한다. 대신 알레그로가 아닌 안단테다. 느림보 거북이처럼 여유를 부리며 세상 모르게 나만의 속도로 나가는 한걸음 한걸음 살이다. 사람은 특히 중년은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있다. 아니, 있어야 한다. 물론 중년이 되어서도 하루 하루 먹고 살 걱정과 극심한 스트레스로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삶을 사는 이는 언어생활을 할 꿈조차 꿀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이는 한다. 그들은 나이가 무색하게도 늘 섹시하다.
느림보라고 해서 엿가락 늘이듯 세월아 네월아~하며 풍악을 울리란 말이 아니다. 언어생활을 하는 사람은 부지런하다. 느림이 곧 게으름은 아니다. 느림의 속성엔 부지런함과 묵묵함이란 부캐가 동반된다. 명심할 건 소소한 목표와 소소한 만족을 전략으로 삼아야 한다. 소싯적 나는 통역사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품었었다. 영어를 도구 삼아 독립적으로 당당히 살아나가는 여자를 선망했다. 대학을 들어가서 타임지와 CNN 뉴스 잡지를 구독해 매일 읽고 받아쓰기를 했다. 야심차게 칼을 빼들었고 야멸차게 나가떨어졌다. 그러다 내 꿈은 한 계단씩 내려갔다. 외항사 승무원에 도전하기로.(어떻게해서든 집을 떠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에!) 정치, 경제, 국제정세.. 내가 알고 싶지도 않고, 알 수도 없었던 주제를 계속 읽고 받아쓰다 나가떨어지기를 거듭했다. 내 불타는 심장을 기꺼이 내어줄 만큼의 꿈이 아니었던 던 탓도 있었다. 어쨌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였다. 아니, 성찰의 어머니였다. 지혜가 없던 나는 무지하게 잘못된 목표와 접근으로 청춘을 달구며 수련했다. 그래서 청춘인 것을.
중년 덕후의 언어생활은 단순하다. 나에게 맞는 회화책 하나를 선정해서 매일 분량을 정해서 낭독한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나는 여행자로 배회한다. 지구 저편 어느 골목에서 길을 묻고, 먹고 싶은 음식을 자유롭게 주문한다. 통역 앱따윈 필요없다. 오늘은 읽고 싶은 영어소설이나 논픽션을 하나 골라 외로운 영혼의 벗으로 삼는다. 조금씩 맛있는 커피를 마시듯 읽어 나가되 멈추진 않는다. 내 취향이나 수준에 도저히 맞지 않더라도 미련하게 나가며 그 고통을 감내하지 않는다. 그땐 과감이 덮어버린다. 내 흥미를 유발하고 수준에 맞는 아이를 다시 입양하면 된다. 사랑을 주고 받는 가운데 우리는 함께 성장한다. 언어는 그렇다. 살아있는 사람처럼 변덕스럽고 불완전한 존재다. 썸을 타며 시간을 주어야 한다. 글쓰기와 닮았다. 아주 많이. 그대와 나에게 시간을 허락하노라. 그대와 나는 시간과 함께 천천히 숙성해나간다. 우리가 서로 잘 익은 김치와 와인이 되려면. 느림보지만 괜찮다. 중년의 언어생활은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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