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볼 수 없는 쇼츠들의 대환장 파티
십 대 아이를 가진 엄마들의 흔한 농담. 사춘기와 갱년기가 한 판 붙으면? 승자는? 하하하, 그냥 웃지요다. 승부를 가리는 걸 좋아하는 민족답게 끝이 궁금하겠지만 이게 어디 승부를 가릴 노릇인가 말이다. 하루 걸러 속이 쓰리고 가슴이 산산이 부서진다. 오늘 하루는 무사하게, 평안하게 지나면 음, 행복이다.
무슨 말인가. 늦둥이 십 대와 나의 하루 하루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고 나도 한 때 십 대였다. 엄마랑 매일 전쟁을 치르다 이십 대 땐 방까지 얻어 아예 집을 나갔다. 어쭙잖게 어른 흉내를 내며 독립을 부르짖었지만 한 달 천하로 끝났다. 엄마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워 있다는 올케 언니의 전화 한 통에 쉽사리 무너졌다. 그럼에도 엄마와의 전쟁은 짧은 휴전을 뒤로 하고 지난하게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올챙이 적 시절을 망각하고 요즘말로 생까게 되고야 마는 꼰대로 전락한 내 모습에 돌아서서 한숨을 쉰다.
하루 하루가 이런 패턴을 반복하며 퍼즐을 놓아간다. 화면을 터치하면 우리의 눈과 혼을 쏙 빼는 쇼츠 영상들로 넘쳐난다. 쇼츠를 많이 보면 뇌가 녹는다는 험한 말들이 난무하듯 내 일상은 과격한 쇼츠들로 퍼즐을 이루어간다. 말 한마디를 건네면 뾰족한 칼날이 내 가슴에 슥 들어온다. 고등학교엔 가야하니 공부 좀 해라, 편식하지 말아야 건강하지, 치실은 꼭 하고 자라…. 가능한 잔소리를 줄이려고 애써보지만 기어이 튀어나오는 파편들을 감당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내 성정도 한몫하는지라 두 인격체가 붙으면 전면전이 되고야 만다. 이란과 이스라엘 전이 우리집 거실에서 벌어지고야 만다.
내가 쓴 책이지만 아껴두고(쟁여두고) 꺼내지 않았던 『엄마, 밥 잘 먹을게』를 펼쳐본다. 내 칼날에 수없이 아팠던 엄마를 떠올리며 청승맞게 눈물을 머금어본다. 그래, 지구는 둥글고 인생은 공평하다. 따지고 보면 너도 나도 잘못은 없다. 갱년기와 사춘기란 굳이 거창하게 명명한 자연의 호르몬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을 뿐인 걸. 너와 나의 몸과 마음 안에. 요가도 해보고 명상도 해보지만 우리가 감히 자연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인정하고 승복하는 수밖에. 너와 나의 찬란한 생의 전환기는 현란한 쇼츠들로 우리의 혼을 잠시 빼놓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름답고 신비로운 명화가 될 것인데. 엄마의 엄마와 엄마가 그랬듯이. 내 속엔 그 아름다운 명화들로 가득 차 지탱해왔음을 너는 아직 모를텐데.
마흔 언저리에 귀하게 와 준 네가 언제쯤 쑥쑥 자라 제 앞가림을 할까 한숨을 내쉬곤 했다. 벌써 내년이면 고등학생이구나. 큰 아이는 제 앞에 놓여진 길에만 집중하느라 동생에겐 통 신경을 쓰지 않는다. 동생 낳아달라고 매일 들어와 꼬장을 부리며 거실바닥을 구를 때가 언제냐는 듯 무정하다. 이제 제 삶을 살아가느라 바쁜 모습을 볼땐 대견하기도 하지만. 결혼과 육아를 나보다 일찍 끝낸 친구들이 가끔 부러울 때가 있다. 나처럼 매일 현란한 쇼츠를 찍는 대환장 파티를 더 이상 벌일 일이 없이 평화롭겠지만 어쩌면 지극한 평화로움은 지극한 권태로 이어질지니 그도 마냥 부러워할 일은 아니다.
이제 내 품을 떠나 멀리 날아갈 일도 얼마 남지 않을거라 짐작하면 가슴이 짠하다. 이 복잡한 감정도 널을 뛰다 지쳐버릴 때면 난 완전 늙어버리는 일밖에 없을 텐데 하며 또 청승을 떤다. 다시 볼 수 없는 쇼츠들을 가능한 내 안에 저장해두다가 그도 희미해져갈 때면 나도 자연에 더는 저항하지 않고 하나가 될 수도 있을 날을 기대해 본다. 그래도 선심 크게 쓴다는 듯 다가와 한 쪽 볼을 내미는 늦둥이를 보는 날이면 난 아직도 하늘을 난다. 암 더 럭키스트 맘 인더 호울 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