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핑크팬더 Ep.07
2025 서울마라톤 (2/2)
2025년 3월 16일 일요일 8시 날씨는 흐리고 비가 내리는 종합운동장에서 서울마라톤 10km 핑크팬더의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새벽부터 내린 비와 바람은 추위에 유독 약한 핑크팬더에겐 큰 악재였다. 조금만 추워도 입술이 파랗게 질려버리고 마는 핑크팬더이다. 긴팔, 긴바지, 바람막이까지 무장을 했지만 어떨지 의문이었다. 부디 무탈하게 후회 없는 결과를 얻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운 좋게 결승점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여기서 비 속을 달리는 핑크팬더를 기다린다. 우리가 예상한 기록은 55~58분으로 향후 50여 분간 이 한자리에서 망부석처럼 서있는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키면 금세 이 자리는 사라질 생각에..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내 옆과 뒤에는 어느덧 나처럼 멋지게 완주하고 돌아올 러너를 기다리는 연인, 가족, 친구, 동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펜스 안쪽에는 스텝들이 우천으로 인해 버려진 우의를 수거하느라 분주히 움직인다. 내 앞에 버려진 우의들을 수거하러 스텝 한분이 오는데 비 맞으며 축축한 우의를 수거하는 모습을 보자니 나도 잠시나마 팔을 걷어올리고 우의 수거작업을 돕는다. 어찌 안 도울 수 있을까~
“이 비만 안 왔으면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죠?ㅎ”
“그러게요. 비가 야속하네요~ㅎㅎㅎ”
우천 속 치러지는 대회가 잘 운영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관계자, 스텝들의 수고가 있었다.
대회가 15분이 지났을 무렵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가 갑자기 굵어진다. 바람도 더욱더 거세게 불어댄다. 우두커니 서있는 내 몸에도 살짝 한기가 몸에 들어온다. 이 비바람 속 핑크팬더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강했던 비바람은 곧 잦아들었다.
대회 30분 넘어가더니 안내멘트가 들려온다. 10km 남자부 1등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본인이었다. 32분대 기록이었다. 아식스메타파리를 신고 있었다. 잠깐의 인터뷰(?)를 마치고 내 앞을 지나치는데, 바다 건너온 선수에게 축하를 해주고 싶었다. “콩그레이츄레이션~” 엄지 척!(‘축하해요’ 일본말 ‘오메데토’로 말해주고 싶었는데 순간 생각이 안 나서..ㅎ)
그도 미소를 보이며 엄지 척 “땡큐” 화답을 해주며 쿨하게 뛰어서 대회장을 퇴장한다. 아마 결승지점에 들어와 그를 응원해 준 사람은 내가 처음이지 않을까? 축하해요~ 이웃나라의 선수~
1등이 들어오고 잠시뒤 2위 3위 선수들이 차례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선수들이다. 10km 입상하려면 32분 전후로 들어와야 한다. 3분대 페이스, 정말 빠른 페이스다. 엄두도 못 낼 페이스다. 소리를 지르며 바로 바닥에 뻗어버리는 분도 있었다. 다 쏟아부은 것이다.
40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골인지점을 통과하는 러너들의 밀도가 높아져간다. 다들 있는 힘껏 달려 들어온다. 턱밑까지 헐떡이는 숨, 찡그린 표정, 비와 땀에 젖은 몸, 다들 최선을 다한 모습이다. 핑크팬더도 지금쯤이면 7부 능선을 넘어 달리고 있을 텐데..
50분이 넘어간다. 대회는 중반부에 접어들었다. 결승점을 통과하는 러너들의 밀도가 최고점에 도달한 느낌이다. 마치 아프리카 수천 마리의 누떼가 몰려오듯이 우르르~ 러너들이 떼 지어 결승점을 통과하고 있다.
흰 모자와 검은 바람막이를 입은 핑크팬더도 이들 틈사이에서 통과할 것이다. 나는 핑크팬더의 그 순간을 위해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결승점을 향해 오는 흰 모자 검은 옷을 입은 러너들이 너무 많다? (어라?) 이들 사이에서 핑크팬더를 과연 찾을 수 있을지 당황스럽다. 거기다 결승점 앞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들까지 결승점 지점이 병목화가 되면서 시장터처럼 바글바글한다.
“결승점을 통과하신 분들은 서둘러 앞으로 이동해 주세요!” 스텝 안내에도 쉽사리 정리가 되질 않는다.
가려진 시야 틈 사이사이로 결승점을 향해오는 흰 모자, 검은 옷이 보일 때마다 눈알을 굴리며 체크를 해보지만 핑크팬더는 보이질 않는다. 나의 당황스러움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시간은 이제 55분을 넘어 58분을 넘어간다. 슬슬 후반부에 접어든다. 내가 못 본 걸까? 아니면 핑크팬더가 아직도 달리는 중인 걸까? 당혹감과 초조함으로 두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에, 벨소리가 들린다. 모르는 번호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곰돌씌 어디야? 나 지금 안쪽에 들어와 있어!”
핑크팬더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 이유는 대회참가로 핑크팬더의 폰을 내가 보관을 했기 때문이었고, 혹시나 우리가 마주치지 못하게 된다면 다른 분에게 폰을 빌려 전화를 하기로 대회참가 전에 얘기를 나눴었다. 전화를 하기 위해 핑크팬더 배번표 안쪽에 내 폰번호를 적어두었다.
“핑크팬더! 통과했었구나!? 지금 그리로 갈게!!”
결승점을 통과한 핑크팬더와 엇갈리고 말았다. 난 서둘러 결승점 밖으로 나와 대회장 안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흰 천막아래 비를 피해 핑크팬더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0km를 달려온 핑크팬더를 꼬옥 앉아주었다.
“수고했어! 핑크팬더!!”
비바람 속 추위를 뚫고 온 핑크팬더, 나는 곧장 롱패딩을 꺼내 핑크팬더에게 건네주었다. 결승점으로 돌아오는 후반부 세차게 부는 맞바람에 몸이 밀려 힘들었다고 핑크팬더는 말했다.
그리고 핑크팬더는 결승점 중앙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나를 찾으려 했으나 밀려오는 러너들 탓에 서둘러 안으로 발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펜스에서 기다린 나도 많은 인파 속에 가려서 핑크팬더를 발견하질 못 했다. 결승점을 통과하는 핑크팬더를 찍지 못한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보는 수밖에..
이제 가장 중요한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핑크팬더의 서울마라톤 10km 기록은 53분 09초, 518 페이스였다. 와~ 너무 잘 뛴 게 아닌가? 예상기록을 훌쩍 상회한 기록이었다. 나는 한참을 좋아했다. 핑크팬더는 자신보다 더 기뻐하는 내가 웃겼다고 했다.
핑크팬더는 지난 JTBC마라톤에 준하는 52분대 기록을 기대했는데 53분이라 아쉬웠다며 무덤덤한 척 미소를 짓는데 그간 부상과 휴식, 부족한 훈련량을 생각하면 아주 좋은 결과이고 다음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기록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그간의 시간이 퇴보가 아닌 현상유지는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쉬움을 드러낸 핑크팬더지만 내심 이번 10km를 뛰고 나서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이다. 그간 부상에 대한 우려와 부담을 떨쳐낸 듯했다. ‘나, 핑크팬더 다시 뛸 수 있다!’라는 걸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 (속으론 분명 좋았을 거야.)
한껏 들뜬 우리는 비 오는 대회장 투어를 했다. 기록증 촬영을 하고 싶었지만 긴 대기열에 포기하고 대회 부스를 돌면서 서울마라톤 전리품들을 수집했다. 에너지젤, 에코백, 음료 등.. 열심히 수집수집!!
그렇게 비바람 속에 치러진 핑크팬더의 2025 서울마라톤은 마무리가 되었다.
대회장을 떠나 뒤풀이를 하러 가는 점심때가 되니 거짓말처럼 비는 그치고 하늘은 개인다.
참 아이러니 하지만 이른 아침 비바람 속에서 대회를 마치고 맑게 개인 하늘아래 대회 마무리, 뒤풀이를 하는 것만으로 행복한 마무리라 생각한다. 끝이 좋았으니 된 거다.
핑크팬더의 2025년 첫 마라톤대회는 해피엔딩이었다.
핑크팬더의 2025 서울 마라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