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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Oct 22. 2022

나라는 계절.

불안, 우울, 절망, 희망의 사계절.

불안, 우울, 절망, 희망. 제법 큰 덩치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나를 오르락내리락하게 만드는 감정에 대해 생각한다. 상냥했다 거칠고, 울었다 웃고, 욕망했다 체념하고, 계절이 바뀌듯 돌고 도는 마음에 대해.


평온했던 일상에 불안이 들이닥치면 종일 집안을 종종거린다. 장롱을 열어젖혀 이불을 죄다 꺼내 빨고, 화장실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박박 솔질을 하고, 청소기를 밀고 또 밀어도 모자라면 책장에 있는 책을 모조리 꺼내 다시 정리한다. 전 후가 별반 차이 없는 소득 없는 일에 매달려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달아나지 않는 불안이 우울의 그림자를 몰고 오면 끝없는 자기혐오에 빠진다. 들었던 말과 했던 말, 보았던 표정과 지었던 표정, 나를 스치고 갔던 모든 것들과 내가 했던 사소한 행동을 하나하나 꺼내어 곱씹는다. 우울의 책임을 나에게 돌리고 싶지 않아 누군가를 겨눌 화살을 찾다 보면 언제나 그 화살은 정확히 나를 겨냥하고 있다. '그럼 그렇지 뭐 네가 별 수 있어?' 하는 그런 말들로. 좋은 인간이 되기는 그른 거 같은 유약하고 나약한 마음, 서툰 태도, 안으로 매몰된 시선 따위처럼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주르륵 나열해두고 타협한다. '그래 나는 여기까진가 보다.'


그렇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자기혐오는 언제나 '절망'이라는 무겁고 음습한 곳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 절망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보잘것없어 보이게 만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온종일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보게 한다. 곧 무너질 것처럼 그렇게 나를 방치해 둔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면 집 안에 먼지가 쌓인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고, 빨아둔 옷과 빨아야 할 옷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재활용 바구니 안엔 배달음식의 플라스틱 그릇이 위태롭게 쌓여 있다. 하지만 언제나 난, 그것들이 와르르 무너지기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대체로 그렇다. 무너지면 해야 할 일들이, 감당해야 할 일들이 더 많아진다는 걸 알기 때문 일거다. 삶을 완전히 놓아 버렸을 때 다시 일어서기 위해 발버둥 쳐야 했던 시간들이 상흔처럼 내 안에 남아 있어서.


그럼에도 나는 늘, 벼랑 끝으로 나를 몰고 간다. 계절이 돌듯 나를 둘러싸고 움직이는 감정을 따라간다. 예고 없이 찾아와 대책 없이 나를 삼키고 마는 감정들. 자기 계발서에 등장하는 말들을 따라 작은 것에 만족하고,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보려 노력하지만 내 안에 자리 잡은 우울과 불안은 끈질기게 나를 쫓는다. 그것들의 움직임은 너무 예민하고 섬세해서 끊임없이 나들 들여다보게 만든다. 반추, 반추, 반추를 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도록. 그리고 자주 그런 것들에 기대 무언가를 쓴다.



수백 번의 계절을 통과하고 나서야 알았다. 계절이 바뀌듯 어떤 시간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 잘 웃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자주 불안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그럴 수 있다' 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나를 덜 미워할 수 있다는 것.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조금은 편안하게 불안과 우울의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것. 그러다 보면 파도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달아나려 애쓰지 않고, 지레 겁먹고 도망가지 않고,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란 섣부른 기대 없이 그냥 그대로. 나를 내버려 둔다.


물론 실패하는 때도 있다. 격양된 감정이 그렇게 쌓아온 약간의 의연함과 용기마저 삼켜 버리는 때. 그런 순간엔 내가 아니라 '삶'에 대해 생각한다. 예측가능성을 벗어나는 삶의 불확실성. 인간의 힘으론 어쩌지 못하는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삶의 장면들에 대해. 문제의 출발선에 '나'를 두지 않는 것만으로도 커피물을 끓이고, 창문을 활짝 열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한 발만 나아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우울하고 불안한 나의 성정을 깎아내리는 대신, 극과 극을 오가는 마음과 태도를 하찮게 여기는 대신 '그럴 수 있어'라는 마음으로 나를 지킨다. 잘 웃는 사람, 말랑하고 폭신한 마음을 가진 이들을 더는 선망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의 삶을 흉내 내고 싶어 거울 앞에서 웃어 보이는 멍청한 짓도 하지 않는다. 대신, 우울과 불안 절망의 사이클을 돌고 도는 나라는 계절의 끄트머리도 언제나 '삶(희망)'에 닿아있으니 '괜찮다' 말한다.


늘 행복한 사람은 아니지만 항상 슬픈 건 아니니까. 나는 어둠 속에서도 결국엔 스스로를 애정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마음으로 나의 계절을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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