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 옆집엔 할머니가 살고 있다. 할머니는 두 마리의 강아지를 키웠는데 둘 다 시골 1m 강아지였다. 1m 강아지란 짧디짧은 목줄에 묶여 죽을 때까지 산책 한번 해보지 못하고 반경 1m 안에서만 살다가 죽는 강아지를 말한다. 시골에 많이 있고, 우리 동네에도 대여섯 마리가 있다. 할머니 댁의 앞문을 지키는 녀석은 '해피', 뒷문을 지키는 녀석은 '캐리'였는데, 해피는 작은 믹스견. 캐리는 진돗개였다. 짧고 무거운 사슬에 묶여 더러운 집에서 사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내쉬곤 했다. 해피는 무슨 해피.
언젠가 할머니께 강아지를 키우는 이유를 여쭈자 이렇게 대답했다.
"무서우니까 키우지. 본래 집은 개를 둬서 지켜야 돼."
저 작은 강아지가 뭘 지킬 수 있다고 묶어 두는 건지, 뒷문 쪽엔 우리 공방이 들어와 이젠 사람이 들어올 길도 없는데 캐리는 뭘 지킨다는 건지, 따지고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나이 든 분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려 드는 건 어리석은 일이니까. 목줄이라도 조금 가볍고 긴 거로 바꿔주면 안 되겠느냐고 말씀드려 봤지만 이런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아유 됐어. 이 정도면 충분하지 뭘."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자친구와 함께 깨끗한 사료와 물을 챙겨주고 가끔씩 산책을 시켜주는 것뿐이었다.
어느 날 할머니가 공방을 찾아오셨다.
"해피가 죽었어. 어떡하지?"
해피는 해피라는 이름과 다르게 무섭도록 짖어대는 녀석이었다. 내가 보이기만 하면 죽일 듯이 달려들며 눈이 빠지도록 짖어대는데, 내 팔뚝만 한 길이의 조그만 강아지인데도 진짜 물리면 큰일 나겠다 싶어 무서웠던 아이였다. 저 아이가 왜 죽었을까? 평생 저 짧은 목줄에 묶여 스트레스를 받아 제명에 못 죽고 일찍 죽은 건 아닌가? 본인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 해피가 죽으니 날 찾아와 뭘 어쩌라는 거지?
죽어있는 해피를 볼 자신도 없었고 그래도 키운 사람이 묻어주는 게 도리에 맞다는 생각이 들어 "삼촌 (할머니의 아들) 퇴근하시면 삼촌한테 말씀하시죠"라고 말씀드렸다. 다음 날 개집은 텅 비어 있었다. 삼촌이 해피를 묻어주신 듯했다. '이제 저 집엔 아무 강아지도 살지 않았으면'이라고 생각했지만 며칠 뒤 하얀 진돗개 새끼 한 마리가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앉아 꼬리치고 있었다. 참담한 마음으로 사료를 챙겨주고 산책을 시켜줬다. 해피는 무럭무럭 커 성견의 모습이 되었다.
이듬해 비 오던 날 캐리가 죽었다. 캐리는 우리 공방 쪽에 있던 강아지라 항상 모습을 볼 수 있던 녀석이었는데 평생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만 먹고살아 황태나 개껌, 육포를 던져 주어도 먹을 줄 몰라 입에도 대지 않았다. 항상 무기력한 모습으로 짖지도 않고 가만히 누워 멍하니 있던 캐리. 그 모습 그대로 비 맞으며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이번에도 삼촌이 캐리를 묻어주었다.
'해피는 앞문을 지켜야 하니 데려왔다고 쳐. 하지만 캐리가 있던 뒷문은 이제 우리 공방 때문에 막혔으니 또 강아지를 데려오진 않겠지?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비어있는 캐리 집을 보며 나는 조금씩 안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낑낑대는 강아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이건 분명 새끼 강아지 소리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