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시작하며
나무로 가구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경기도 파주의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가구 공방을 운영한다. 공방을 운영하는 사람을 공방장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전국에 있는 공방장들 중 젊은 축에 든다.
오전 여덟 시쯤 눈을 뜨고 아침을 먹는다. 샤워를 하고 출근 준비를 하면 오전 아홉 시쯤. 또래 친구들은 이미 출근해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이다. 나는 출근길 지옥철도, 만원 버스도 겪지 않는다. 집과 공방이 바로 붙어있기 때문이다. 면바지 대신 청바지를, 셔츠 대신 작업복을 입고 문을 나선다. 집 문을 닫고 공방 문을 연다. 1초 만에 출근 완료다.
가구 공방의 일을 시작해보자. 먼저 주문받은 가구를 만든다. 지난밤 갈무리해 놓은 여러 부재가 작업대 위에 놓여 있다. 이들을 가지고 오늘 해야 할 만큼의 작업을 하면 된다. 작업 중간 주문 문의가 들어오면 답변을 한다. 간단한 작업은 머릿속으로 견적 계산이 되지만 큰 작업은 설계 후 목재 사용량과 작업 난이도를 고려해 가격을 책정한다. 짬을 내어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공방 홍보를 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새로운 가구를 디자인한다. 배송이 있는 날엔 아침부터 바쁘다. 찍히거나 긁히지 않게 박스와 에어캡으로 잘 포장한 뒤 트럭을 섭외해 배송지로 떠난다. 주문자에게 잘 전달하고 사진도 하나 찍어 기록으로 남긴다. 이런 통상적 업무 사이사이에 소소한 일상이 곁들여진다. 커피 마시며 바람 쐬고, 산책하며 잡초 뽑고, 강아지랑 산책하고, 빗소리 듣고, 쌓인 눈을 치우는 그런 것들.
혼자 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나도 대학 생활 후반전에 접어들자 무얼 하며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막연히 한 생각은 두 가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 좋겠다.'와 '되도록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였다. 직업 탐색을 시작했다. 도서관에선 직업 관련 책을 빌려 읽고 인터넷으론 직업인들의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내가 흥미를 느낄만하고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일할 수 있는 직업 위주로.
한 두 달을 고민만 하며 보냈다. 어떤 직업이든 좋게 보면 좋아 보였고 안 좋게 보면 안 좋아 보였다. 딱히 마음에 쏙 들어오는 직업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생활 정보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어느 목공방을 찾아간 모양이었는데 목재로 가득한 공방에서 뚝딱뚝딱 가구를 만들어 내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가구 공방. 나무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 무엇을 만들지 내가 결정할 수 있고 디자인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혼자 일하므로 직장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으며 정년도 없다. 게다가 어르신들이 흔히들 말하는, 배워두면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기술' 아닌가!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좋은 직업일 것 같았다.
공방 창업을 결심한 후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지금 나는 작업실 테이블 위에 앉아 지난날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나의 공방'을 만들고 운영하기 위해 몇 년을 보냈고 수많은 일들을 겪었지만 사실 아직도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 이 일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맞는지, 내가 바랐던 삶이 이 모습인지,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던 건 아닌지, 고민하며 망설이고 있다. 그 때문에 문득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시간 동안 겪은 경험과 감정을 정리해 놓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쓰일 글들은 사회 첫걸음을 창업으로 시작한, 대담하거나 무모한 한 청년의 이야기다. 목공방을 창업하기까지의 과정, 창업 후 공방의 일상, 가구를 만들며 했던 생각들이 담겨 있다. 그저 ‘세상엔 이런 사람도 살고 있구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셨으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