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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Apr 02. 2021

만약에

말 줄여버린 마음: 빈 말의 의미




만약에

/ 담쟁이캘리




언제고 유유히 흘러야 하는 네가
잘은 모래를 덮고 잠자코 앉은 나에게 다가와
닿을 듯 말 듯 넘실대던 그 어느 날부터
가설로 빗은 수없는 모래알들이 만약이 되었는지 몰라


만약 우리가 만(灣)을 이룬다면
한 시도 잠들지 않는 망망대해 저 끝
수평선에서부터 달려와
한적한 적막에 사는 나에게 닿는다면


모래사장 위로 알알이 흩어진
만약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그칠 줄 몰라
어떤 날 섣부른 파도가 힘겹게 쌓아 올린
모래성을 흩어버릴지라도,


바다에서 육지로
쉬지 않고 넘실대는 너를 가만히 그려봐


네가 나의 일상으로 들어와
선을 넘는다면, 과연 우리들은
만(灣)을 이룰 수 있을까




* 만(灣) : 바다가 육지로 들어와 있는 형태




만약에 바다와 육지가 연인 사이라면, 둘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일까. 바다가 결코 잠들지 않는 이유가 모래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둘 사이의 인연을 만(灣)에 빗대어 써 봤어요. 글쓰기 할 때마다 사전을 많이 찾아보는데, '바다가 선을 넘어 육지로 들어와 있는 형태'를 뜻하는 만(灣)이라는 단어가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한 번 시로 써 보고 싶었어요.

약간은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글이 된 것 같은데, 아무 말하지 않는 바다와 육지를 두고 제 스스로 해피 혹은 새드로 결정되는 엔딩을 짓고 싶지 않았어요. 만약 진짜 새드였다면 바다는 지금처럼 쉬지 않고 흐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쓰다 보니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해 '~할 수 있을까'로 끝낸, 어쩌다 보니 주제에 충실한 글이 되었네요. 모두 좋은 밤 보내세요 :)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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