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생존 키트 : 배드민턴 속 세상
‘삐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리-’
새벽 5시 반, 자명종이 울림과 동시에 형광등이 켜진다. 잠을 워낙 깊게 자는 탓에 자명종을 못 들을 때가 있어서 내린 처사. 눈부신 형광등과 자명종의 콜라보는 아무리 깊이 자는 사람이라도 화들짝 놀라면서 깰 수밖에 없다. 웬만한 스릴러 뺨칠 정도로 두근거리게 만드는 알람을 끄고 거실로 나가면, 엄마가 나갈 채비를 마친 채 핸드크림을 바르고 있다. 그러면 나는 한껏 잠긴 목소리로 “벌써 준비 다했어?”라고 아침 인사를 건넨 뒤 고양이 세수를 한다. 그런 다음 푹신푹신한 스포츠용 양말을 신고, 수건과 물통이 든 가방을 챙기고는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선다.
우리는 함께 배드민턴을 치는 사이다. 엄마는 배드민턴 10년 차, 나는 1년 차. 일주일에 세 번, 많게는 다섯 번 체육관에 간다. 새벽 6시 반에 하는 배드민턴은 내 일상의 가장 대표적인 루틴이다. 대단한 재능이 있다거나 열정이 넘쳐서 다니는 건 아니다. 운동은 해야겠는데 습관이 안 돼서 작심삼일을 반복하던 와중, 엄마가 같이 배드민턴을 하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얼떨결에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엄마는 매일 새벽 6시에 출발해 자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사설 체육관을 가는데, 당시 새벽 말고는 엄마가 따로 다니는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나도 새벽형 인간이 되어야 했다.
잠이 워낙 많고 깊게 자는 탓에 새벽 운동은 고문이나 다름없었지만, 막상 적응이 되니 새벽 운동에 장점이 많다고 느꼈다. 해가 채 뜨지 않은 고요한 새벽에 일어나 씻고 나가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 여전히 아침이니까. 하루가 길어서 생산적인 기분이 든다. 백수에겐 참으로 중요한 감정 중 하나이기에, 적어도 화,목요일에는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찍 잠에 든다. 잠을 설치면 그날 운동은 망하기 때문.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운동 그 자체다. 배드민턴이 나와 맞지 않으면 아무리 새벽 운동이 좋아도 금방 질리기 마련이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행히 나는 배드민턴과 잘 맞았다. 셔틀콕과 배드민턴 채만 있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은 운동이기도 하고, 고등학생 때 친구와 점심시간마다 친 기억 덕에 금방 익숙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재미있다. 친구들과 재미 삼아 쳤던 소위 ‘약수터 배드민턴'에서, ‘레슨 받는 배드민턴’으로 넘어갈 때의 그 짜릿함! 배우지 않은 배드민턴은 라켓에서 ‘통' 소리가 난다면, 코치에게 배우는 배드민턴은 라켓에서 ‘뻥’ 소리가 난다. 아주 찰지고 힘이 넘치는 소리 말이다.
게다가 배드민턴에는 꽤 다양한 기술이 있다. 위로 멀리 보내는 ‘하이클리어'와 배드민턴의 꽃이라 불리는 ‘스매시', 힘 조절로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기술인 ‘헤어핀'과 ‘드롭', 일직선으로 날카롭게 들어오는 ‘드라이브'와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푸시'까지. 좀 더 들어가면 ‘크로스 헤어핀'이라던지 더 많은 기술들이 있지만, 보통 배드민턴을 배울 때 이 여섯 가지 기술을 기본적으로 배우게 된다.
초심자라면 라켓 잡는 법부터 스텝을 밟는 연습으로 몸을 적응시키는데, 코치마다 가르치는 방식이 다르지만 내 경우 코치님께서 상당히 빨리 가르쳐주셔서 배드민턴에 금방 재미를 붙일 수 있었다(예전에 엄마가 만난 코치는 같은 자세만 1년을 넘게 반복해서 가르쳤다고 한다). 무튼 나는 코치님 덕분에 하이클리어부터 스매시, 드롭 등 기본적인 기술들을 3개월 만에 배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다행이지 싶다.
엄마의 지극히 주관적인 정보에 따르면, 배드민턴계에서는 ‘3’이라는 숫자가 아주 중요하단다. 3일, 3개월, 3년 차 이때가 가장 힘들다고 해서다. 3일은 보나 마나 근육통 때문이다. 첫날 레슨을 받고 나면 다음 날 몸이 안 움직이는데, 둘째 날은 오기로라도 가지만 셋째 날이 되면 오기고 뭐고 근육통 때문에 죽을 거 같다. 3개월은 개인적인 경험에 따르면 ‘멘탈' 때문으로 보이는데, 혹여나 같이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면 3개월 차부터는 슬슬 실력 차이가 보여서 비교를 하다가 멘붕이 오기 십상이다. 3년은 아직 안 겪어봐서 모르겠지만, 엄마 말에 따르면 ‘매너리즘'이 온다고.
다행히 나는 코치님의 빠른 가르침 덕에 3개월을 무사히 넘겼지만, 그렇다고 정착이 쉬운 운동은 결코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떤 운동이든 3개월 이상 꾸준히 해본 적이 없다. 그나마 배드민턴은 지금껏 해본 운동 중 재미있고 심지어 저렴한 편에 속했지만, 그마저도 정착하기가 쉽지 않았다. 첫 번째는 혼자서 할 수 없는 운동이라서, 두 번째는 돈이 있어야만 제대로 할 수 있어서.
엄마를 따라 배드민턴장을 꽤 여러 곳 가보면서 느낀 점은, 내 또래 즉, 20대가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청년들이 없는 줄은 몰랐다. (다들 대체 어디서 무슨 운동을 하고 있는 건가요?…) 워낙 전체적으로 연령대가 높은 탓에 20대 초반에는 막내를 넘어서 ‘애기'가 되곤 했다. 더군다나 엄마와 함께 다니다 보니 사회적 체면을 고려해 거의 늘 웃는 표정으로 다녔는데, 그것이 내겐 은근한 스트레스였다. “딸이 최고야"라는 말을 들을 땐 도무지 어쩔 줄을 몰랐다. 차라리 1절만 하면 감지덕지일지도 모른다. 어떤 분은 대뜸 다가와 “어머, 너가 00씨 딸이니?”라고 묻더니 “몇 살이야?”, “남자친구는 있고?”, “그럼 지금 대학생인 거야?”라는 난감도 최상위 질문 3종 세트를 난사하셨다.
이처럼 배드민턴이 내게 어려운 운동인 이유 중에는 타인과 부대껴야 하는 특성 탓이 크다. 생활 체육에서의 배드민턴은 거의 대부분 단식이 아닌 복식으로 게임을 한다. 그래서 배드민턴은 ‘합'이 중요하다. 나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운동도 아니다. 함께 게임을 하는 파트너가 어디에 서 있는지 끊임없이 관찰하고 신경 써야 한다. 아무리 내가 스매시를 잘해도 옆에 파트너가 없으면 나는 수비를 할 수 없으니 질 수밖에 없다. 설령 단식으로 한다고 해도 나와 함께 겨룰 상대방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없으면 배드민턴을 칠 수 없으니 인간관계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배드민턴이 그나마 운동 중에서 저렴한 편에 속하지만, 제대로 하기 시작하면 ‘장비병'에 걸리기 쉽다. 신발과 라켓의 경우 성능에 따라 가격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또 셔틀콕은 마트에서 파는 초록색 플라스틱 콕이 아니라 대회에서 쓰는 하얀 콕을 써야 한다. 한 통에 10개 정도가 들어있는데 20,000원이라 꽤 비싸다. 게임에서 질 일이 많은 초심자라면 콕을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는데, 하필 백수인 내가 초심자다…
그래도 다행히 엄마 덕에 비싼 라켓과 신발을 물려받았지만, 장비 말고도 레슨비와 체육관 사용료 등을 고려하면 매월 10만 원은 기본이다. 아르바이트를 다닌다거나 매월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 상황이면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지만, 수입이 0원이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물론 돈을 안 들이고 운동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귀차니즘을 달고 사는 내게 운동은 한 번 안 하기 시작하면 큰 결심 없이는 다시 하기 어려운 일이다. 결국에는 억지로 돈을 써야지만 운동을 한다는 게 나의 뼈아픈 현실이었다.
스무 살부터 엄마를 따라 배드민턴을 쳤지만 여전히 실력은 제자리다. 멘탈도 약하고 예민한 성격 탓에 중간중간 그만둔 적이 많아서다. 그만두면 다시 하고 싶고, 다니다 보면 그만두고 싶은 게 운동인 걸까? 이런저런 이유로 백수인 내겐 정착하기 쉽지 않은 운동이지만, 오늘도 나는 수건과 물통을 챙겨 집 밖을 나선다. 클리어로 상대방을 당황시키고 스매시로 강하게 힘을 준 다음, 애매하게 뜬 공을 푸시로 때리는 순간을 맛보고 싶어서. 수입이 없지만 대부분의 일상이 무급 노동인 백수에게 즐거움이란 감정은 귀하다. 그때만큼은 백수가 아닌 배드민턴을 즐기는 스포츠인이 되니까. 이리저리 뛰는 탓에 심장은 정신없겠지만, 그때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사회적 단절을 겪기 쉬운 백수에게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배드민턴장은 또 다른 작은 사회이기도 하다. 어느 아주머니께서 건네주신 군고구마와, 널브러진 셔틀콕을 모아주고 쿨하게 떠나는 이들의 작은 선의에서 온정을 느낀다. 자기가 실수를 너무 많이 했다며 깨끗한 셔틀콕을 건네주는 파트너의 배려는 조만간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 바닥이란 그런 거니까. 모두가 즐겁고 편안하게 운동하려면 서로 조금씩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 작은 사회 덕분에 나는 관계를 배우고, 내 일상을 무너뜨리려는 불안과 우울, 매너리즘을 땀방울과 함께 조금씩 흘려보낸다. 그렇게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