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묘와 함께 삽니다
이사를 했다. 2년 만이었다.
급하게 한 이사였고 그다지 좋은 의미의 이동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차피 내게 집이란, 혹은 거주지란,
삶이라는 방랑 중 그때그때 머무는 여관방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
잠시 익숙해졌다가 또 떠날 곳.
때문에 이번 이사에 대해서도 별다른 의미가 부여될 리는 없었다.
그러나 2년짜리 전세계약을 하며 생각했다.
이 계약이 끝나고 또다시 이사를 할 때
그때도 보리와 함께였으면 좋겠다고.
2년 전의 이사가 애기와 함께하지 못한 첫 이사였듯이,
보리와 함께하지 못하는 첫 이삿날도 올 것이라고.
보리가 없는 첫 이사를 하게 될 미래의 어느 날,
나의 이사는, 아니, 나의 삶은, 온 사방이 무채색일 거라고.
13살 7개월의 보리는 이삿날 많이 힘들어했다.
얼마나 고단했으면 밤에는 도롱도롱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하지만 3일쯤 지나자 꼬리를 꼿꼿이 치켜세우고 낯선 집 구석구석을 탐색하며 완전히 적응했다.
5년 전 애기가 떠났을 때도 그랬다.
3일쯤 울더니 이내 울음도 그치고 밥도 다시 잘 먹었다.
딱 그 정도 시간이면 적응하는
생전 하악질 한 번을 할 줄 모르는 순둥하고 착하디 착한 나의 둘째 고양이, 보리.
이사를 계기로 새삼 알아졌다.
내겐 시간이 많지 않구나.
보리가 내 곁에서 숨 쉬는 지금의 모든 순간들은
다가올 미래의 되돌리지 못할 기적이구나.
그러니 이 기적의 현재들을 선물처럼 환대하리라.
느끼고 기억하고 간직하리라.
내 늙은 고양이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지금도.
나의 '예기애도'는,
내 손 닿는 곳에 현존하는, 반짝이는 기적인 것이다. 지금.